예술의전당서 ‘얍!얍!얍’ 공연

결혼과 출산 후 ‘어린이 춤’ 착안

어린이를 위한 현대무용 안무가 밝넝쿨(오른쪽), 인정주 부부가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05.17 /서성일 선임기자

수를 춤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사계절과 태양, 바람, 별은 또 어떨까. 무척이나 심오한 현대무용 작품이 탄생할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이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이는 신작 <얍! 얍! 얍!>은 ‘어린이 무용’ 작품이다. ‘수의 춤’ ‘자연의 춤’ ‘시간의 춤’ 같은 제목만 보면 난해할 것 같지만, 지난 17일 예술의전당에서 지켜본 리허설은 유쾌하고 직관적이었다. 어린이가 웃을 정도로 경쾌했으며, 어른이 곱씹을 만큼 의미심장했다. <얍! 얍! 얍!>은 부부 안무가 밝넝쿨·인정주가 8번째로 내놓은 어린이 무용이다. ‘세상의 다양한 존재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춤’을 표방해 응원 구호 ‘얍!’을 제목으로 넣었다. 밝넝쿨은 “어린이를 위한 작업은 어른 세계에서도 가장 즐겁고 아름다운 최상의 것이어야 한다”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을 신조로 삼는다고 말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어린이 무용을 만든 것은 아니다. 무용을 전공한 뒤 사회에 나와 불러주는 공연마다 다니며 열심히 춤을 췄지만, 어딘지 공허했다. 새벽까지 연습한 뒤 돌아와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정오에야 30분쯤 뒤척이며 힘들게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됐다.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 똑바로 선 채 세수를 할 정도로 몸이 나빠졌다. 연인이던 둘은 여러 기관의 연수제도와 카드빚의 도움으로 ‘세계 무용 여행’을 떠났다. 인정주는 “잘 추고 싶은데 안 돼서 답답했다. 해외에서 ‘짜인 동작을 잘해내는 것’보다 ‘나만의 춤’을 추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귀국한 뒤 2005년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를 창단했고, 2008년 결혼했다.

차례로 두 아이를 얻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예술가 부부의 삶도 출산 전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밝넝쿨은 “무용단 창단 때부터 ‘순수한 몸과 자유로운 실험정신’ ‘회귀하는 몸’을 내걸었다. 사회적 이념이나 정서가 장착되지 않은 몸을 상상하니 그게 아이의 몸이었다”고 설명했다.

2016년 내놓은 <공상물리적 춤>은 이들이 내놓은 첫 어린이 무용이지만, 그때만 해도 ‘어린이 무용’이란 말을 붙이지 못했다. 어린이 연극, 어린이 뮤지컬은 많았지만 ‘어린이 무용’은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연습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어 연습복을 입은 채 당시 여섯 살이던 큰아이와 놀아주며 과장된 몸짓을 하는 과정을 춤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부부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어린이 무용의 방법론을 정립해 나갔다. ‘보호자도 즐겁게 동요돼야 한다’는 것도 한 원칙이었다. 공연장에 가서 아이만 들여보내고 부모는 로비에서 쉬는 작품은 원치 않았다. 공연장의 문턱을 최대한 낮추려 했다. 예전에는 성인 관객이 숨도 쉬지 않을 정도로 집중력 있게 볼 만한 공연을 만들려 했지만 달라졌다. 인정주는 “모두 같이 와서 웃는 기억을 남기는 공연이면 좋겠다. 공연장이 화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밝넝쿨은 “어린이 관객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어른의 착각이다. 어떤 장면에선 어린이 관객의 몰입력이 어른보다 훨씬 강하다”고 설명했다.

연습 과정도 달라졌다. 공동 창작을 할 때면 여러 안무가가 각자 아이를 어딘가에 맡기고 오기도 했지만, 이젠 연습실이 곧 ‘키즈 카페’가 됐다. 부모들이 연습하는 동안 아이들은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자전거 타고 똥도 싼다. 밝넝쿨은 “어린이 작업을 하면서 어린이를 소외시키진 말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밝넝쿨·인정주가 안무한 <얍!얍!얍!>.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밝넝쿨·인정주가 안무한 <얍!얍!얍!>.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없던 길을 내고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비주류 예술 장르인 무용도 그렇다. 팬데믹 기간에는 수입이 ‘0’인 나날이 이어졌다. 두 아이가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인정주는 보험 영업을 했다. 고맙게도 여러 사람이 도움을 줬다. 인정주는 “예술가들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 그때 세상 공부 많이 했다. 자존심 생각 안 했다”며 “지금은 더 영업을 하진 않지만, 당시 가입하셨던 분들을 관리해드리기 위해 코드는 남겨뒀다”고 말했다.

인정주는 “처음보다 어린이 관객이 조금은 늘었고, 현대무용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힘들어 하는 성인 관객도 저희 공연은 쉽고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음 작품은 어린이가 직접 무대에 오르는 <꿈의 무용단>이다. 2022년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즐겁고 자유롭게 춤추기 위해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항상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자연을 사랑하며 많이 웃고 신나게 춤추는 어린이라면 함께할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현대무용 안무가 밝넝쿨, 인정주 부부가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05.17 /서성일 선임기자

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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