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김형옥은 국창 조상현의 제자로 2004년 발탁돼, 2017년 강산제 조상현류 심청가 이수자가 됐다. 사진 본인제공

“20년 모신 조상현 선생께 부끄럽지 않은 무대 할랍니다.”
명창 김형옥(70)은 1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강산제 조상현류 심청가 완창 발표회’를 앞두고 이런 다짐을 했다. 그는 2003년 스승인 조상현에 발탁돼 20년 간 교육을 받았으며, 2017년 강산제 조상현류 심청가 이수자가 됐다.

공연에서 김형옥은 스승 조상현의 소리를 담아, 4시간 30분의 심청가를 완창한다. 고수는 이태백·김태형이 맡고, 진행엔 윤중강 국악평론가가 나선다. 연출은 중앙대 무용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국립무용단 단장을 지낸 국수호 명인이 담당했다.

김형옥 '심청가 완창 발표회. 사진 공연 포스터

지난달 말 경기도 남양주 진접읍 자택에서 만난 김형옥은 "선생님(조상현)이 건강 문제로 발표회 참석은 어렵지만 문자로 응원을 보내주셨다"며 "'축하하네, 성황리에 끝내기를 내가 제일 원하네'라는 그 문자가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매일 5시간씩 연습”

김형옥은 지금도 스승 조상현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다. 지난해 6월 조상현 곁을 떠나 홀로 공부하면서도, 새벽 3시 30분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5시간씩 노래한다고 한다. 휴대전화엔 스승의 가르침이 녹음돼 있어, "채찍질이 필요할 때마다 듣고 새기는 것을 반복한다"고 했다.

그의 집엔 판소리를 연구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판소리 다섯 마당에 녹아 있는 삼강오륜을 이해하기 위해 논어를 공부했고, ‘적벽가’(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를 잘 부르기 위해 삼국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 그는 “어전광대의 전통을 잇는 유일한 소리를 허투루 배울 순 없었다”고 말했다.

판소리 공부를 위해 삼강오륜부터 깨친 김형옥. 사진 본인제공

이어 “판소리는 할수록 어렵고 깊다. 우리 뿌리와 정신을 찾는 과정”이라면서 “조상현 선생이 80년을 하신 깊이를, 내가 ‘심청가’만 20년 하면서 조금 알게 됐다. 작년 말이 돼서야 선생님 목소리를 터득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목사에서 소리꾼 된 사연

칠순의 나이에도 김형옥이 배움을 놓지 않는 이유는 “늦게 시작해서”다. 그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도 ‘늦깎이 소리꾼’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교 3학년이던 1972년, 전남 영광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을 때만 해도 소리꾼이 되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학비를 벌어가며 어렵게 신학대(1975~82)와 신학대학원(1984~91)을 졸업한 뒤엔 자연스럽게 목사가 됐다.

교회 CCM 밴드를 결성해 드럼을 치는 등 서양음악에 빠졌던 그가 소리에 이끌리게 된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 김형옥은 “2001년 2월, 내 운명을 바꾼 날이 정확히 기억난다”며 “봉천동 밴드 연습실 근처에 판소리 학원이 있길래 문을 열어보니 한 할아버지가 아이 둘을 놓고 소리를 가르치더라. 조금 들어보고 가려고 하니, 할아버지가 ‘수강료 안 받을 테니 배워보기만 하라’며 붙잡으셨다. 이 할아버지가 조상현 선생님의 제자인 방기준 명창이었다”고 말했다.

소리꾼 김형옥은 국창 조상현의 제자로 2004년 발탁돼, 2017년 강산제 조상현류 심청가 이수자가 됐다. 사진 본인제공

김형옥과 27년 인연의 조성철 PG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목사를 하면서도 끼를 버리지 못해 서양음악을 하던 양반이 갑자기 국악을 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직접 보니 이미 소리에 깊게 빠져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김형옥의 매니저 역할은 물론, 이번 완창발표회 주관사로도 함께한다.

그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김형옥은 조상현이 강사로 있던 판소리 대학 과정까지 수강했다. 2005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개최한 ‘귀명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자신의 길을 받아들였다. 그 즈음 큰할아버지가 명창 김종길이며, 부친 또한 명창 임방울과 함께 수학했던 소리꾼 출신임을 알게 됐다. 그는 “소리꾼 집안의 운명이 돌고 돌아 결국엔 제자리로 왔다”고 회상했다.

김형옥의 꿈은 여전히 소리꾼이다. 대중음악과 타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소리로 먹고 사는 예술가로 남고 싶다고 했다. “예술하는 삶이 만만치 않음에도 운명에 이끌려 시작한 일이기에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다만 조금만 더 빨리 판소리의 길을 찾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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