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사당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황동규(86) 시인은 “다 죽은 것 같은 고목이 새 잎을 내듯 어떤 생명, 어떤 삶도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를 읽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20년 가을, 당시 여든둘의 황동규 시인은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를 펴내며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고 적었다. “내 삶의 마지막을 미리 알 수 없듯이 내 시의 운명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자”면서다. 시는 별난 운명을 살아내 다시 한 권의 시집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말 출간된 시인의 18번째 시집 『봄비를 맞다』(문학과지성사·사진)다.

운명을 뒤흔든 것은 코로나19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늙음이 코로나 글러브를 끼고 삶을 링 위에 눕혀버리는” 사태가 벌어졌고, 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시인은 “사는 게 견디기 힘들 만큼 헐렁해진” 날들에 시를 무기로 싸웠다. 그리하여 탄생한 59편의 시에선 색다른 투지가 팔딱거린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사당역의 한 카페. 납작한 모자를 쓴 노시인이 손을 번쩍 들며 다가왔다.

이번 시집을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한 인간의 기록’이라 하셨는데요.
“80세가 넘은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그야말로 리얼한 공포였으니까요. 주변의 누군가가 갑자기 죽음을 맞고, 후유증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위기가 닥치니 오히려 치열해지더라고요.”
그래서일까요. 밑줄 긋고 싶은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몇몇 평론가들이 저한테 ‘괴짜 노시인’이라더군요. 여든 넘어 계속 시를 쓰는 것도 신기한데, 밀고 나가는 힘이 더 강해진다고요. 제 실력이라기보다는 늙음과 코로나라는 역경이 그렇게 만들었겠죠.”

봄비를 맞다

이런 구절들이다. 시인은 ‘코로나 집콕’ 중 후배가 보내준 꽃이 내뿜는 향기에 “단 한 번 주어지는 한창 삶”의 강렬함을 느끼고(히아신스), 죽었다고 생각했던 고목나무가 연두색 잎을 내미는 것을 보며 “그래 맞다. 이 세상에/ 다 써버린 목숨 같은 건 없다”(봄비를 맞다)고 외친다. ‘그날 저녁’이라는 시에서는 삶의 끝자락을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세상 뜰 때/ 아내에게 오래 같이 살아줘 고맙다 하고/ 가구들과 눈으로 작별, 외톨이가 되어/ 삶의 마지막 토막을 보낸 사당3동 골목들을/ 한 번 더 둘러보고 가리.”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어둡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지금을 반기며 사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40대 후반에 ‘풍장’이라는 시를 쓰면서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이제는 두려운 것이 없어요. 시집 맨 끝에 실린 시에서 ‘살아있는 게 유혹일 때 갑니다’라고 썼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집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고3 때 짝사랑하던 대학생 누나를 생각하며 쓴 시 ‘즐거운 편지’는 교과서에도 실린 ‘국민 연애시’가 됐다.

60년도 더 지난 시인데 요즘 세대의 감수성을 건드립니다.
“실제 편지를 받은 사람은 이 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요. (웃음) 초등학교 동창의 언니라 예순 넘어 한 번 만난 일이 있는데, ‘이제서야 이 시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왜 시가 좋았나요.
“아버지(소설가 황순원)는 제가 법대나 의대에 가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문학과 음악에 푹 빠져 있던 터라 고집을 부려 서울대 영문과에 갔습니다. 작곡가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살짝 음치인 걸 깨닫고 포기했어요. 시가 좋았던 건 문학의 모든 장르 중 음악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66년간 시를 썼는데 ‘즐거운 편지’로만 기억되는 게 서운하지 않나요.
“(새 시집을 가리키며) 늘 새로운 시가 나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며 씁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고 시간이, 역사가 정하는 것이니까요.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만 해낼 뿐이지요.”

노시인은 요즘도 “하루 이틀 건너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은 시를 매만지며 보낸다”고 했다.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시가 내 생명이니 계속 쓸 수 밖에 없다”면서. “이 한세상/ 노래 배우는 새처럼 왔다 간다/ 목소리에 금가면/ 낙엽지는 나무에 올라/ 시를 외우다 가겠다”고 쓴 그는 헤어질 때도 손을 번쩍 들더니 훌훌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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