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박물관의 8번 전시실. 서전문화재단 제공

전시실에 들어가자 1930~1940년대 제작된 대형 스피커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가운데 굵은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사가 생산한 영화 음향 라우드스피커가, 오른쪽에는 독일 클랑필름이 만든 유로딘 스피커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사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누가 ‘저게 오디오다’ 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의류수거함이나 거대한 책장에 더 가까워 보이는, 요즘은 거의 볼 일이 없는 희귀한 것들이다. 독일 제품은 나치 시절 히틀러가 선전·선동을 위해 사용했던 것이기도 하다.

‘좋은 오디오’ 청취 경험이 적은 사람도 이런 오디오로 음악을 들으면 ‘소리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 수잔 그레이엄의 노래 ‘아 클로리스’를 두 나라 제품으로 번갈아 재생했다. 각 1분가량의 짧은 청음 시간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스피커로는 노랫소리가 조금 더 맑고 또랑또랑하게 들렸다. 클랑필름 스피커는 상대적으로 조금 무겁고, 울림이 있었다. 1930~1940년대 만들어진 빈티지 스피커로 같은 곡을 ‘비교 감상’ 할 수 있는 건, 오디오 박물관인 ‘오디움’에서만 가능한 일이기도 한다.

오디오박물관 ‘오디움’ 내부 전시실. 서전문화재단 제공

오디움은 서전문화재단이 서울 서초구에 지은 오디오박물관이다. 수십년 간 전세계 희귀 오디오를 수집한 오디오 애호가인 정몽진 KCC 회장의 소장품과 기증품으로 꾸려져 있다. ‘서전’이라는 이름도 미국의 유명 오디오 브랜드인 ‘웨스턴 일렉트릭’의 이름(서부 전기) 앞글자를 따 지은 것이다. 오디움의 개관전, <정음>을 지난 16일 관람했다.

전시명인 정음은 ‘옳은 소리’라는 뜻이다. 오디움이 지향하는 ‘옳은 소리’는 실제와 가장 가까운 소리를 의미하는 ‘하이파이’다. 전시는 1950~1960년대 만들어진 가정용 하이파이 스피커와 앰프가 전시된 1번 전시실에서 시작해 1930~1940년대 영화 음향 시스템이 부흥하던 시기의 1920~1930년대 대형 극장용 혼 스피커 등으로 이어진다.

각 전시실마다 청음 시간이 있으며, 클래식이나 해외 가곡 외에도 팝송이나 국내 대중음악을 틀기도 한다. 전시 해설을 맡은 김영진 오디움 운영지원실장은 “각 오디오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곡들로 선곡했다”고 했다. 이날 전시에서는 토니 오말리의 <마이 웨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백지영의 <무시로> 등이 재생됐다. 7번 전시실의 웨스턴 일렉트릭 혼 스피커는 영상과 동시에 음악과 음성을 내보낸 최초의 영화인 <재즈 싱어>(1927)에 사용되기도 했다.

오디움 외벽의 알루미늄 파이프. 서전문화재단 제공

오디움의 건물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쿠마 켄코가 지었다. 그가 모티프로 삼은 건 숲이다. 오디움의 외벽은 2만여 개의 알루미늄 파이프로 둘러싸여 있다. ‘숲속에 비치는 빛의 변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건물 후면의 긴 계단은 계곡을 의미한다. 오디움의 입구는 전면이 아닌 후면에 있다. 도시의 삶을 살던 관객들이 ‘숲’을 한바퀴 돌아 특별한 공간으로 들어가 마지막에 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게끔 구상했다.

내부에는 ‘오디오 박물관’이라는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건축가의 섬세한 마음도 담겼다. 하얀 궁전 같은 8번 전시실은 공간의 기둥부터 천장까지, 전체를 흰색 패브릭 소재로 감싸져 있다. 켄코는 “소리를 이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부드러운 패브릭 소재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정음>은 무료 전시지만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오디오박물관 ‘오디움’의 전시실 내 1930년 웨스턴 일렉트릭사가 제작한 소형 극장용 스피커 시스템. 서전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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