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딸에 대하여’ 스틸컷

임신 뒤 뱃속 생명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때, 이미 아이를 낳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아주머니들은 심심치 않게 말했다. “서운하지 않느냐”, “아들도 키우다 보면 귀엽다”… 어쩐지 짠한 상대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었던 그들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중년이었는데,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이 기뻤던 젊은 임신부 입장으로선 좀 생경하고도 재밌는 반응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주머니들은 대개 ‘딸이 있어야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35년 넘게 누군가의 장녀로 살아온 입장에서,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성별에 대한 역할이나 고정관념이 꽤 희미해진 시대라고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통상 나이 들어가는 부모에게 ‘금융인증서 설치하기’나 ‘쿠팡 주문하기’같은 신기술을 살뜰하게 알려주거나 드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며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은 딸인 경우가 더 많았다. 비교적 상냥하고 세심한 아들을 둔 시부모님도 언젠가 ‘병원에 가보면 부모님 모시고 온 건 죄다 딸들’이라며 걱정 섞인 말씀을 하신 일이 있으니, 그들 세대에게 ‘딸’이란 변화하는 세상과의 연결고리이자, 노쇠해지는 자신들을 돌봐줄 수호자와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연히 그렇게나 든든한 딸이 돼 줄로만 알았던 자식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어떤가. 학창 시절 내내 공부도 잘하고 성인이 돼서도 처신이 야무지기 그지없어 영락없이 내 노후의 등대가 되어줄 것만 같던 그 아이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노출돼 잘 다니던 대학 강사 자리마저 잃게 된 착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4일 개봉하는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는 바로 그런 딸 그린(임세미)의 삶을 바라보는 중년 어머니(오민애)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딸은 심지어는 살던 집마저 빼 줘야 할 상황에 놓였다며, 동거하던 동성의 연인 레인(하윤경)까지 허락 없이 본가로 데리고 들어온다.

▲ 영화 ‘딸에 대하여’ 스틸컷
▲ 영화 ‘딸에 대하여’ 스틸컷
▲ 영화 ‘딸에 대하여’ 스틸컷

늙어가는 엄마에게, 다 큰 딸이란 존재는 대체 뭘까. 중년의 주인공은 전에 해본 적 없던 고민을 재차 곱씹게 된다. 일하는 요양병원에서 만나는 동료는 번듯한 대학에서 교수 자리까지 올라선 딸을 키워낸 엄마라며 추켜세워주지만, 매일 아침 방문 안쪽으로 한 침대에 다리를 겹쳐 누워 있는 딸과 동성 연인의 모습을 흘끗 바라본 뒤 출근해야 하는 그는 더는 속 모르는 이의 칭찬이 달갑게 들리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괴로웠던 순간은, 병원에 실려 간 딸과 마주한 날일 것이다. 성소수자 영화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된 동료 강사의 상황에 제 일처럼 맞서다가 학교가 고용한 용역 노동자들과 충돌해 상처를 입은 딸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딸에 대하여’가 만약 주인공이 극적인 여정을 거쳐 마음을 바꿔 먹고 딸과 그 동성 연인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올바르기는 하지만 어쩐지 현실적이지는 않은 이야기였다면 이만큼 설득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홀로 생계를 꾸리며 자식을 키워온 중년 여성의 지극히도 일반적인 시선에서 전개된 김혜진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만큼, 영화 역시 원작의 세계가 구현했던 ‘평범한 엄마의 입장’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그는 “너희 결혼은 할 수 있느냐”고 질책해 보기도 하고, 자신의 연인에게 부당하게 대우했다며 항의해 대는 딸에게 “전화 끊으라”며 지독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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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의미는 그럼에도 그가 제 집으로 들어온 딸과 그 연인의 여러 모습을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세밀한 심경 변화를 놓치지 않는 데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끝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건, 딸이 아플 때면 죽을 끓여주고 월세와 생활비가 부족하면 대신 충당해 주며 병원에 실려 갈 만큼 다치는 날이면 두 발 벗고 달려가는 게 바로 딸의 동성 연인이라는 사실이다. 한 남자와 결혼해 자식까지 낳은 뒤에도 홀로 삶을 헤쳐 나가야 했던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건대, 스스로와는 달리 딸이 ‘서로를 아껴주는 누군가와 삶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만큼은 도무지 인정하지 않기 어려운 것이다.

▲ 영화 ‘딸에 대하여’ 포스터(왼쪽)와 책 ‘딸에 대하여’ 표지

영화는 이 세계의 평범한 중년 엄마들에게 질문할 것이다.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겨온 관습과는 달리 살아가는, 종종 타인의 수군거림을 감내해야 하는 동성 동거인을 선택한, 주변에 ‘자랑’하기보다는 어떤 이유에서든 한 번쯤 ‘말을 아껴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딸을, 그래도 망설임 없이 품에 안고 아껴줄 수 있겠느냐고.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 답답한 듯 스스로에게 물으며 끝이 나는 원작 소설보다 영화가 한 발자국 더 나간 지점이라면, 그전까지는 인식하지도 못했던 동성의 연인들이 길거리에서 주인공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시작하는 대목일 것이다. 이제 막 ‘눈에 보이게 된’ 그 딸아이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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