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가는 이건희 기증 전시의 인왕제색도. [연합뉴스]

미국 시카고 미술관(AIC)이 오는 11월 한국실을 3배로 확장 개관하면서 개최하는 대규모 특별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신라 서봉총 금관(보물)이 선보인다. 신라 금관의 해외 나들이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이자 국립박물관 소장 국보·보물 5점을 통틀어서도 역대 10여 차례에 불과하다. 해외 박물관들의 한국 유물 ‘러브콜’이 강화되는 흐름에 우리 쪽 전폭 지원이 맞물린 결과다.

국립중앙박물관 정명희 전시과장은 24일 “시카고 미술관의 한국실 재개관 전시에 국중박 소장품 14건 24점을 대여하는데 여기에 서봉총 금관 및 금제 허리띠가 포함됐다”면서 “메트로폴리탄, 보스턴미술관과 함께 미국 3대 박물관에 속하는 시카고의 위상을 고려한 끝에 결정됐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미국 시카고미술관에 나들이할 신라 서봉총 금관. [사진 국가유산청]

1926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서봉총은 당시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발굴현장에 참여한 바 있다. 스웨덴을 뜻하는 ‘서’와 금관 봉황 장식의 ‘봉’이 합쳐져 서봉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고고학을 전공한 황태자가 일본 방문길에 경주 고분 발굴 소식에 관심을 보이자 일본 측이 그에게 금관을 건져 올릴 기회를 ‘의전 쇼’로 선사했다. 높이 30.7㎝, 지름 18.4㎝의 금관은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장식에 봉황 세 마리가 덧붙여진 화려하고 정교한 자태다.

유럽인이 발굴에 참여했다는 이색 스토리까지 덧입혀져 서봉총 금관은 해외에서도 인기를 끈다. 1957년 말 사상 처음으로 열린 한국 문화재 국외 특별전(‘한국 국보전’) 때도 금관총 금관(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등과 함께 초청돼 워싱턴 등 미국 8개 주요 도시를 돌았다. 이번이 여섯 번째 해외 나들이다.

덴버박물관은 달항아리 특별전을 연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삼국시대 금속유물 전문가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역사문화학)는 “신라 금관은 독특한 형태에다 고대 동·서양의 실크로드 교류사를 보여주는 상징적 유물”이라면서 “근대 서구와 한국의 만남이란 의미까지 있어 해외 학계도 관심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카고 미술관이 사실상 처음으로 대대적인 한국 유물 특별전을 열면서 서봉총 금관을 필수 초청 목록에 포함시킨 이유다.

한국 컬렉션 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시카고 미술관은 이번 특별전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책가도,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도 선보인다. 일부는 특별전 후에도 장기 대여(2년) 형태로 남아 한국실을 꾸밀 예정이다. 앞서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수년간 해외 박물관의 한국실 개편·관리에 인력·예산을 지원하면서 한국 유물에 대한 이해가 커진 데다 각 박물관이 소장한 지 수십년이 된 한국 유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기관 간의 교류가 대폭 늘어났다.

일제강점기 서봉총 발굴현장에 함께 한 스웨덴 황태자(가운데)의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일례로 미국 피바디에섹스 박물관의 경우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 1점과 조선 신부 전통 예복인 ‘활옷’ 1점을 국내에서 보존처리 중인데 내년 확대 개편하는 한국실에 이를 전시할 계획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박선미 부장은 “미국 데이튼미술관의 ‘해학반도도’는 우리 측 보존처리 과정에서 국적이 확인돼 현지에서 관련 특별전까지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3년부터 재단이 벌여온 국외문화유산의 보존·복원 및 활용사업에 따라 10개국 30개 기관 56건에 총 25억 6400만원이 지원됐다고 한다.

유학파·교포 출신 한국인 큐레이터들이 해외 박물관에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과 교류가 활성화된 측면도 있다. 시카고 미술관의 경우 2020년부터 지연수 큐레이터가 한국실 전담으로 근무하고 있어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 특별전)’의 순회 전시가 성사됐다. 국내에서 100만명 이상 관람한 ‘이건희 기증 특별전’은 내년 11월 미국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AAM)을 시작으로 2026년 시카고 미술관에서 열리고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해외 교류전시가 늘어남에 따라 체계적인 모니터링의 확대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독일 훔볼트포럼에서 개최한 한국 민속 특별전은 10여건의 유물이 잘못 표기돼 당시 전시에 협조한 기관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류·대중문화를 넘어 한국 유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데다 공공외교 일환으로 전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면서 “한국실 전담 인력을 확충하는 등 종합적인 지원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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