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한 한강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보수 성향의 임태희 교육감이 수장으로 있는 경기도교육청이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지난해 '유해도서'로 지정해 폐기 처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거센 비난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은 한강 작가의 소설에 대해 폐기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해명에 나섰으나 과거 한강 작가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지정된 전례가 있다는 점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

경기교육청, 지난해 11월 "유해 성교육 도서 조치하라" 공문

채식주의자 등 이상문학상·노벨문학상 수상작품 포함 2528권 폐기

앞서 지난해 보건학문&인권연구소 등 일부 시민단체는 '동성애 유발' '적나라한 성기 표현' 등을 이유로 성교육 도서 141권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1월 관내 초등학교에 "학교도서관에 비치된 일부 유해한 성교육 도서에 대해 선정성, 동성애 조장 등 도서를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다수 민원과 도의회 및 국회의 목소리가 있다"며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교육목적에 적합하도록 조치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냈고, 지난 2월에는 처리 결과를 제출하라고 전달했다.

경기도교육청의 공문을 받은 경기지역 초·중·고등학교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 29일까지 1년간 성교육 도서 총 2528권을 폐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폐기된 도서 중에는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포함됐다. 경기도 내 한 사립고등학교에서도 <채식주의자> 2권을 폐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의 '구의 증명',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등의 문학작품 역시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됐다. 2013년 독일 올해의 과학도서상을 받은 성교육 책 '사춘기 내 몸 사용 설명서'와 영국 교육전문지에서 올해의 지식상을 받은 '10대들을 위한 성교육'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이 재조명되자 경기도교육청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경기도교육청 게시판에는 "노벨문학상 책을 폐기한 무식하고 무지한 처사" "부끄럽고 창피하다" "대단한 교육감이다" 등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교육청 "유해도서 지정 사실 아냐" "1개 학교에서 2권 폐기"

논란이 일자 경기도교육청은 '채식주의자'를 유해 도서로 지정한 바가 없으며 1개 학교에서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2권을 폐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도교육청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특정도서를 유해 도서로 지정하고 폐기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도서에 대해 각 학교에서 학부모가 포함된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판단을 통해 자율적이고 균형적인 관리를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서는 학교도서관운영위 협의에 따라 적합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며 "그 결과 각급 학교에서는 학교도서관운영위를 통해 폐기 도서를 선정했고 한 학교당 1권 정도인 약 2500권이 학교도서관에서 폐기됐다"고 부연했다.

도교육청은 "이 가운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은 1개 학교에서 2권만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도교육청은 초중고 각급학교가 교육적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통해 도서관리를 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5·18 및 4·3 다룬 소설 집필..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지정

민주 강유정 "문화는 행정과 정치가 함부로 손 대지 말아야"

경기교육청이 적극 해명에 나섰으나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한강 작가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지정한 사실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 현재 도교육청의 수장은 보수 성향의 임태희 교육감이다.

지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이 문체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는 한강 작가의 이름이 포함됐다. 이는 한강 작가가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집필한 것이 이유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한강 작가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지원하는 해외문화교류행사 지원의 배제 대상이 됐다. 2014년에는 문체부가 주최하는 세종도서 지원사업에서 '소년이 온다'가 '사상적 편향성'을 지적받고 최종 탈락하기도 했다.

또, 문체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상 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게 대통령 명의 축전을 보낼 것을 건의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는 사실도 당시 특검팀 수사에서 확인됐다.

이에 야권에서는 "문화는 함부로 행정과 정치가 손을 대서는 안되는 영역"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유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정감사 도중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박수치며 기뻐했지만 저는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며 "오늘 노벨 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는 2016년도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분류됐던 작가"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문화는 함부로 행정과 정치가 손을 대서는 안되는 영역"이라며 "국가 예산에, 국가 유산에 꼬리표가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음악이, 영화가, 문학이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며 "정치는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며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강 父 "한강, '우크라 등 전쟁에 무슨 잔치냐'…회견 안한다"

한편 한강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씨는 11일 한강이 수상 기념 기자회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잔치를 벌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작가는 이날 자신의 집필실인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 토굴' 앞 정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창비, 문학동네, 문지 셋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출판사에서 장소를 마련해 기자회견을 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해보겠다고 하더니 아침에 생각이 바뀌었더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딸의 수상 소식에 대해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즐겁다고 말할 수도 없고, 기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늙은 작가나 늙은 시인을 선택하더라. 우리 딸은 몇 년 뒤에야 타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며 "어제도 (발표 일정을) 깜빡 잊고 자려고 자리에 들었다가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기자로부터 전화로 수상 소식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한 작가는 이 기자에게 "무슨 소리냐, 당신 혹시 가짜뉴스에 속아서 전화한 것 아니냐"고 말하며 반신반의했던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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