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기획전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 16일 개막

명화첩 ‘근역화휘’ 3종 11권 전모 첫 공개

위창·간송 감식안 돋보이는 108점 선뵈…“간송컬렉션 형성 과정 들여다 볼 기회”

간송미술관이 가을 기획전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를 16일 개막했다. 사진 위는 고려 공민왕(1330~1374)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양’, 아래는 안견의 작품(왼쪽)과 ‘양’이 함께 전시된 모습. 간송미술관, 도재기 기자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한 고려~조선초기 회화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를 수놓은 명화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드문 기회가 마련됐다.

고려 공민왕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양 그림인 ‘양(羊)’,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안견과 뛰어난 그림 솜씨로 노비에서 화원이 된 이상좌 등의 조선 초기 작품, 윤두서·김홍도·신윤복·김득신 등 유명 작가는 물론 근대 안중식 같은 수 백여년에 걸친 작품들을 동시에 접하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부터 한국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 자료까지 망라됐다.

간송미술관의 기획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혜원 신윤복의 ‘월야밀회’(왼쪽)와 ‘휴가답풍’. 신윤복의 ‘풍속도 화첩’(혜원전신첩, 보물)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간송미술관 제공

위창 오세창이 ‘혜원전신첩’을 살펴보고 작품의 가치, 소장 경위 등을 기록해 놓은 발문. 간송미술관 제공

작가와 시대. 특징은 다르지만 이들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근대 최고 감식안이던 위창 오세창(1864~1953)의 안목·감식을 거쳤고,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하나같이 공들여 입수한 간송미술관(보화각) 소장품이라는 것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관이 16일 가을 기획전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를 개막했다.

‘문화보국’ 정신이 깃든 간송컬렉션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위창의 탄신 160주년 기념특별전으로, 간송컬렉션 중 그의 안목을 거친 52건 108점으로 구성됐다. 간송의 스승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위창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운동가이자 서화가·언론인·계몽운동가였다. 무엇보다 빼어난 안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역대 서화를 수집·연구·고증해 정리해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넘어가던 서화가 귀중한 민족유산임을 모두에게 인식시킨 것이다.

간송미술관이 소장 중인 위창 오세창의 명화첩 3종 11권의 ‘근역화휘’ 전모가 이번 기획전에서 처음 공개됐다. ‘근역화휘’ 전시 모습(사진 위)과 3종 11권의 ‘근역화휘’ 표지들. 간송미술관, 도재기 기자

당대 최고의 감식 권위자였던 위창은 한국미술사 연구에 빛나는 핵심 자료들을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이란 이름으로 편찬했다. 신라 솔거부터 근대까지의 서화가 1100여명의 인적사항과 특징을 정리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고려말~조선시대 주요 화가 작품을 모은 화첩 ‘근역화휘(槿域畵彙)’, 신라의 명필 김생부터 조선말까지 필적·서예를 수록한 ‘근역서휘(槿域書彙)’가 대표적이다.

또 고려 정몽주부터 근대 서화가까지 1100여명의 편지글(간찰)을 묶은 ‘근묵’(槿墨)도 있다. 조선~근대 서화가 800여명의 인장 자료를 모은 ‘근역인수(槿域印藪)’는 위창의 고증·감식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잘 보여준다.

선조와 인목왕후 딸이자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정명공주(1603~1685)의 작품 ‘화정(華政)’. 조선시대 여성이 남긴 전례 없는 대작(146×73.5㎝)이다. 간송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회에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3종 11권의 ‘근역화휘’ 전모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근역화휘’는 서울대박물관본인 천·지·인 3권은 널리 알려졌으나, 간송미술관본은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간송미술관본은 각각 7권, 천·지·인 3권, ‘현대첩(現代帖)’이란 부제가 붙은 1권 등 모두 3종의 ‘근역화휘’다. 7권본에는 189명의 작품 244점, 1권본에는 32명의 38점, 3권본에는 50명의 70점이 수록됐다. 3권본의 경우 서울대박물관 소장본보다 3점의 작품이 더 수록됐다.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작품으로 조선 후기 풍속화의 토대가 된 ‘수탐포어’(왼쪽)와 홍득구의 ‘어초문답’의 전시 모습. 도재기 기자

간송미술관의 조사결과, 7책 ‘근역화휘’는 1916년에 완성돼 현존하는 ‘근역화휘’ 중 가장 이른 화첩이다. 1책의 ‘근역화휘’는 1917년경에 근대 서화가들 작품만을 모아 보충한 화첩이다. 또 간송미술관과 서울대 박물관에 각각 소장된 3책의 ‘근역화휘’는 1920년 이후 위창이 당시 유명 수장가이던 김용진의 서화 수집품을 입수해 꾸민 것으로, 간송미술관 소장본이 서울대박물관 소장본보다 더 앞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간송미술관 소장본에는 위창의 글까지 적혀 있다.

‘근역화휘’에 수록된 작품들은 2층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3종의 ‘근역화휘’, ‘근역화휘’에 수록된 352점 중 46점을 엄선해 선보이는 것이다. 공민왕의 ‘양’, 부분으로만 남아 있지만 인물 묘사력을 잘 보여주는 안견 작품, 유덕장·이정의 대나무 그림, 이상좌·홍득구·윤두서·김홍도와 안중식·이경승·이한복의 등의 작품이다.

1층 전시실은 위창이 간송에게 증정한 서화와 인장, 간송이 수집한 작품들 가운데 위창이 입수 경위와 작품 가치 등을 기록한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간송컬렉션의 숨겨진 소장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가을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관 2층 전시실. 도재기 선임기자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 화첩인 ‘혜원전신첩’(보물)에 수록된 2점, 이인문의 산수화 등이다. 특히 선조와 인목왕후 딸이자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정명공주(1603~1685)가 광해군의 핍박으로 어머니와 함께 궁에 유폐됐을 당시 쓴 서예 ‘華政’(화정)도 나왔다. 특히 ‘빛나는 정치’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화정’은 조선시대 여성이 남긴 전례 없는 대작(146×73.5㎝)으로 한석봉체로 쓰여졌다.

위창이 간송에게 증정한 44과(13과는 안중식이 사용한 인장)의 인장도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또 증정한 서화로는 한나라 당시(164년) 비석인 ‘봉용산비’(封龍山碑)의 탁본 등도 있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고려부터 근대까지 산수화, 인물화, 사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필력을 보여준 서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회화사의 시대별 화풍과 흐름을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간송 전형필(사진 왼쪽의 오른쪽에서 4번째)과 위창 오세창(오른쪽에서 5번째), 간송미술관 가을 기획전 포스터. 간송미술관 제공

간송미술관은 이번 전시부터 성인 5000원, 청소년·어린이 3000원의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 전 관장은 “1971년 ‘겸재전’을 시작으로 50여 년간 무료 전시로 개방해온 미술관을 유료화하게 돼 송구스럽다”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더 잘 보존하고 미술관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내린 불가피한 선택에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전시는 사전 예약(인터파크티켓)으로 진행되며, 12월 1일까지다.

한편 간송미술문화재단은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개관 특별전 ‘여세동보-세상 함께 보배 삼아’를 열고 있다. 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젊은층의 큰 관심 속에 간송컬렉션 유명 작품들의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디어 아트전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를 개최 중이다.

간송미술관전형필오세창신윤복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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