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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재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

청나라에서 차(茶)를 대량 수입했던 대영제국은 그 대금을 은(銀)으로 지불해야 했다.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린 영국은 막대한 전쟁∙통치 자금이 필요했는데, 은의 유출을 막고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식민지 인도에서 제조한 아편 밀매를 획책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대중국 아편 수출량은 1729년 200궤짝에서 1차 아편전쟁 발발 직전인 1840년 거의 4만 궤짝으로 부풀었다. 2차 아편 전쟁(1856~1860) 이후 강압적으로 청나라에 아편 수입을 합법화하게 한 영국은 1880년에는 무려 10만5507궤짝을 내다 팔았다.

1850년 무렵 인도 파트나에 자리한 아편 공장의 분주한 적재실 모습. 석판화. [출처 웰컴이미지]

아편은 영국 입장에서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반면 청나라는 온갖 수단을 통해 아편 유입과 확산을 막아 보려고 애를 썼건만, 결국 두 차례의 아편전쟁 끝에 종말을 맞았다. 덜 익은 양귀비의 유액을 추출·가공해 만든 향정신성 물질인 아편은 그 자체로 세계사를 바꿔 놓은 행위 주체자였다.

그런 아편을 바라보는 영국 등 아편전쟁 동맹국들과 중국 등 그 반대쪽 양편의 시각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영국 정부와 그에 동조하는 역사가들은 전쟁이 아편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보다 주요한 쟁점은 광저우 조계지에서 외국인에게 부과한 조치, 청나라가 서양 정부의 베이징에 대한 외교적 접근을 거부한 사실 등 청나라의 무례함 탓에 전쟁이 불가피했으며 아편은 그 분쟁과 거의 무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편의 감춰진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연기와 재』를 쓴 인도 출신 작가 아미타브 고시는 세계사 서술의 주도권을 행사해 온 서구 제국주의자의 편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자신에겐 두려움과 적대감, 분노의 대상이었던 중국을 두둔한다. 지은이는 “그 어떤 궤변으로도 대영제국의 부정한 아편 밀매가 오늘날의 기준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준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였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고 단정한다.

현재의 중국이 많은 개탄스러운 관행과 정책을 일삼는 독단적이고 공격적인 강대국이란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중국을 오늘날 같은 모습으로 만든 인과 사슬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유럽 열강들은 역사 기록을 지우고 역사적 현실을 호도하는 데서 놀라우리만큼 성공적이었다”고 비판한다.

『연기와 재』는 저자의 ‘아이비스 3부작’이라고 불리는 『양귀비의 바다』 『연기의 강』 『쇄도하는 불』의 연장선에서 나온 책. 엄청난 분량의 참고 도서와 각종 문서를 철저하게 고증해 펴낸 역작이다. 영국이 20세기 초 마침내 아편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결과마저 중국 시민단체와 외교력 덕분이 아닌 자신의 공적으로 가로채 간 서구 중심 세계사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제국주의 침략에 속절없이 당했던 식민지와 피지배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역사만큼 해석이 주관적인 게 없긴 하지만 건전한 상식인이라면 최대한 객관적 시각에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은 균형추를 잡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아편과 차에 얽힌 역사 스토리를 이렇게 긴박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지은이의 집요한 취재력과 정밀한 글솜씨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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