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KBS]

[폴리뉴스 박병규 기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 도시 울산, 그 오른쪽 끝에 동구가 있다. 1972년 현대중공업이 들어온 뒤로 대한민국 조선업의 역사를 연 울산 동구. 이곳의 아침은 유난히 바쁘고, 활기차다. 

수만 대의 오토바이와 함께 출근하는 사람들. 자칫 삭막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다채로운 매력이 숨어 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천혜의 환경, 그 속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바닷길을 따라 오랫동안 따뜻함을 간직해 온 울산광역시 동구로 '동네 한 바퀴'가 275번째 걸음을 옮긴다. 

▶조선소 앞 동네, 전하동 추억의 만화방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해지는 것들이 있다. 변치 않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 소중해지는 장소, 전하동에서 오랫동안 조선소 사람들의 쉼터가 된 만화방을 찾았다. 이곳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옛날 방식대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 그리고, 손님들을 정성스레 맞이하고 편안한 장소로 남아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만화방에는 주인장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 모으기 시작했다는 만화책만 백만여 권, 지금도 희귀본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서비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들통에 한가득 끓여내는 달달하고 시원한 수제 믹스커피와 주전부리 과자는 무료!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만화방 최고의 인기 메뉴는 라면. 양은 냄비에 일 인분씩 끓여내는 라면은 오랜 단골들에게 추억의 맛이자,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오로지 손님들을 위해 추억의 장소를 지키며, 발로 뛰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울산 동구 조선소 앞 만화방이 반갑다. 

▶주전마을의 찰떡궁합 해녀 자매

울산 동구의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몽돌(둥근 돌) 해변으로 유명한 주전마을이 있다. 파도와 몽돌의 연주 소리를 벗 삼아 마을을 걷던 동네 지기, 이만기가 만난 것은 한창 돌미역을 손질 중인 사람들. 윤기 흐르는 돌미역은 주전마을 앞바다에서 김황자(76), 김영희(71) 두 해녀가 직접 채취한 거란다. 두 사람은 팔 남매 중 셋째, 다섯째로 자매 사이다. 각자의 결혼으로 떨어져 살았던 것도 잠시, 요즘은 바다에 들어갈 때도, 잡아 온 것들을 손질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늘 함께하는 단짝이다. 8남매 먹이고 입히기도 빠듯했던 살림 탓에 초등학생 시절부터 물질을 해 왔다는 두 사람. 그 경력만 어림잡아 60년이 넘는다. 초등학교는 겨우 졸업했지만 배움이 짧은 것이 못내 아쉬워 자식들 교육만큼은 원 없이 시켰다는 어머니들. 사시사철 아낌없이 내어주는 바다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어찌 고향 바다가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물질할 때만큼은 경쟁자가 따로 없지만, 물 밖에선 주거니 받거니 손발 딱딱 맞는 찰떡궁합 자매 해녀의 짠 내 나는 삶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본다. 

▶자연의 소리로 느껴보는 힐링 시간! 작지만 강력한 매력의 섬, 슬도 

만개한 샤스타데이지와 바다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곳, 성끝마을에서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지만 강력한 매력을 가진 섬, 슬도를 만나게 된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슬도는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울산 동구의 핫 한 관광지다. 방파제를 따라 섬으로 들어가면 자연을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는데, 갯바위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바다의 거문고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자연이 들려주는 선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사운드워킹. 사운드워킹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생태 감수성을 회복하는 새로운 걷기 여행 방법이다. 바람이 풀을 어루만지는 소리와 파도가 돌을 쓰다듬는 소리까지 모두 빼놓지 않고 들을 수 있다. 2024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강소형 잠재관광지, 슬도의 매력에 풍덩 빠져본다.

▶칼과 망치로 그림을 그린다?! 유일무이 합판 그림 조각가

꿈을 꾸는 데 나이가 있을까. 누구나 못다 이룬 꿈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지만, 그것을 펼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 쉰아홉의 나이에 꿈을 조각하는 이유충(59) 씨가 있다. 낮에는 조선소로, 밤에는 공방으로 출근하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꿈이었다. 녹록지 않은 현실 탓에 미대는커녕 부모님께 그림이라는 단어도 꺼내 본 적 없지만, 회사에 다니면서도 그의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연필과 수첩이 있었다. 그가 막연히 가슴에만 담아 두었던 꿈을 펼치게 된 계기는 버려진 합판 덕이라는데. 얇은 합판에 확대한 사진이나 그림을 붙이고 칼과 망치로 세심하게 조각하면 완성된다는 합판 그림. 1mm 안에서 깊이를 조절해 입체감을 표현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인내심과 끈기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그렇게 화가의 꿈은 유일무이 합판 그림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발전했다. 정년퇴직을 앞둔 그의 꿈은 이제 합판 조각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라는데. 그에게 꿈을 이루게 해 준 합판 그림 조각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든든한 동행, 모자(母子)가 만드는 멧돼지 떡갈비

금계국이 활짝 핀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다 모자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을 만나게 된 동네 지기. 20년 전, 빠듯한 살림에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식당을 시작했다는 어머니 김송배(64) 씨. 식당의 주메뉴는 우연히 먹어 본 멧돼지 고기 맛에 반해 개발하게 됐다는 멧돼지 떡갈비다. 메뉴가 생소해서인지 식당은 개업 초기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인고의 시간 끝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 맛집이 됐다고 한다. 평소 식당 일에 관심을 가졌던 아들까지 이어받겠다 나섰다. 이제 든든한 아들까지 옆에 있으니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가족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어머니에게 찾아온 큰 병이었다. 혹시 자신을 가르치느라 어머니가 무리해서 생긴 일이 아닐까 자책했다는 아들은 어머니가 치료를 받는 동안 더 열심히 일을 하며 식당을 지켜냈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함께 일하는 모자(母子)지만, 어머니의 눈엔 아들이 여전히 부족한 점투성이다. 아들에게 변함없는 손맛과 인정을 가르치고 싶은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가 행여나 어디 아프진 않을까 걱정인 아들. 서로가 있어 든든한 어머니와 아들의 동행을 따라가 본다. 

▶주민들의 산책로, 대왕암공원에서 만난 축구공 할아버지

울산의 대표 관광 명소이자 동구 주민들의 산책로로 유명한 대왕암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해송 숲이다. 만 오천 그루에 달하는 해송 숲에 감탄하며 걷다 맞닥뜨린 축구공의 귀재! 이마에 축구공을 올린 채로 몇 시간이고 대왕암공원을 걷는다는 이용선(70) 씨다. 울창한 송림 사이로 축구공을 이마에 올린 채 요리조리 걷는 모습은 신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를 따라 동네 지기도 도전! 그 결과는?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짧은 인연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바다 위로 이어진 303m의 출렁다리. 대왕암공원의 출렁다리는 울산 최초의 출렁다리로, 울산 12경 중 하나인 대왕암공원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출렁다리 위에서 해송 숲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대왕암공원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만끽한다. 

▶바닷길 따라 곳곳이 숨은 비경, 고늘 지구의 터줏대감 77세 최성분 어머니

대왕암공원의 출렁다리 건너편에도 숨은 풍경 맛집, 고늘 지구가 있다. 동구의 주민들도 잘 모른다는 그곳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최성분(77) 할머니를 만난다. 오로지 자식들을 잘 키워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남편과 함께 고향인 충주를 떠나 울산 동구에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는 어머니. 남편이 조선소에 취직해 회사를 다니는 동안 그녀는 무작정 횟집을 차렸다.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다 보니 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던 게 그 이유였다. 내륙지방에서 살다 와 바다를 본 것도, 생선을 잡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생선을 사다 놓고 밤낮없이 손질 공부부터 했다는 어머니. 노력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그 후 횟집은 35년 넘게 조선소 사람들의 맛집이 되었다. 이제는 힘에 부쳐 3년 전 장사를 접었다는 어머니는 요즘 바닷가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서 몰랐을까. 먼저 떠나보낸 남편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진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성분 어머니가 바닷가의 작은 집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울산 동구의 숨겨진 비경과 함께 따뜻한 정이 넘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빽빽하게 들어선 공업 단지 속 숨은 따스함이 있는 동네. 드넓은 바다가 다정하게 저마다의 삶을 감싸주는 울산 동구의 이야기는 6월 15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동네 한 바퀴> [275회 천천히 걷다 바닷길 – 울산광역시 동구] 편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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