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16일 공개한 올해 외교청서에서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잇단 판결과 관련해 한국의 책임이라고 못박는 기술을 했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은 한 마디도 명시되지 않았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은 계속됐다.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은 이날 열린 각의(국무회의)에서 ‘2024년판 외교청서’를 보고했다. 일본 외무성은 매년 최근 국제정세와 일본의 외교활동을 담은 외교청서를 발표한다.

올해 외교청서를 보면, 한-일 관계 최대 쟁점인 강제동원 피해자 부분의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2018년에 이어 지난해 12월, 올해 1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피고 기업을 상대로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잇따라 판결한 것 등을 설명하며 “일본 정부는 지극히 유감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3월6일 발표에서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식 표현) 소송에서 원고가 이길 경우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한국의 재단이 지급할 예정이라고 표명했다”고 명시했다. 최근 한국에서 새로운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은 윤 정부의 양보로 일본의 손을 떠났다는 뜻을 공식 문서에 분명하게 표현한 셈이다.

윤 정부는 지난해 3월6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대해 일본 피고 기업이 아닌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원고인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한 뒤 강행하고 있다.

외교청서에는 과거사와 관련해 ‘사죄와 반성’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윤 정부의 양보안 발표 뒤, 기시다 후미오 내각에서 나온 ‘과거 담화 계승’을 설명하면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일-한 공동선언’이나 무라야마 담화(1995년) 등에 담긴 ‘사죄와 반성’을 직접 명시하지 않고 모호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는 미국을 국빈 방문한 기시다 총리가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에서 ‘사죄·반성’은 고사하고 과거 침략 전쟁과 식민지배 내용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등 퇴행적 모습을 보인 것과 맥을 같이한다.


독도와 관련해서도 억지 주장이 이어졌다. 외교청서에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은 경비대를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 없이 다케시마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은 2018년 외교청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7년째 유지됐다.

한-일 관계에 대해선 개선된 표현이 등장했다. 한국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파트너로서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언급했다. 2010년 외교청서 이후 14년 만에 한국을 ‘파트너’로 명시했다. ‘한·미·일’은 별도 항목이 새로 만들어졌다. 외교청서에는 “3국 공조는 대북 대응을 넘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필수“라며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실현을 향해서도 협력을 확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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