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왕푸징(王府井)거리에 소재한 한 만둣집,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만두가 가게 앞 매대에 진열되어 관광객들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만두의 원뜻은 속된 말로 '오랑캐 대가리'다. 만두 맛 떨어지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렇다. 어쨌든 이런 소리 들으면 만두 먹을 때마다 끔찍한 기분이 들 수도 있기에 원래 남만 오랑캐 만(蠻), 머리 두(頭)자를 쓰는 대신 만두 만(饅), 머리 두(頭)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가 졸지에 음식으로 둔갑해 황당해했을 남만 머리, 만두(蠻頭)의 주인공, 남만인은 누구였을까? 지금의 귀주성 서부, 사천성 남서부, 운남성과 광서성 등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한족 일부와 중국 소수민족이다.

만두를 놓고 “남만 오랑캐 운운”하는 말,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퍼트린 헛소리 같지만 나름 문헌적 근거도 있다. 명나라 때인 16세기 『칠수유고』라는 책에 나온다. 저자인 낭영(郎瑛)은 당시 수많은 책을 읽은 지식인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만두 유래설, 들어는 봤지만 먹는 음식 가지고 엽기적인 소리 한다며 불쾌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중국, 일본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이 말을 믿고 있다.

이유는 한·중·일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고전소설 삼국지 때문이다. 이 책에 제갈공명이 남만 포로 대신 밀가루로 머리 모양의 만두를 빚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이 만두의 시작이라고 나온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그렇기에 스토리를 그대로 믿는 것도 우습지만, 삼국지의 역사 이야기는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다. 때문에 내용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뜻밖의 숨겨진 진실과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만두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제갈공명이 만두를 만들었다는 삼국지 속 이야기는 엉터리다. 남만 포로의 머리 대신 만두를 빚었다는 말은 더더욱 터무니없다. 다만 역사적 사실에 근접한 부분은 하나 있다. 만두가 중국에서는 제갈공명이 살았던 삼국시대를 전후해서 생겼다는 점이다.

일단 만두라는 음식 이름이 이 무렵 문헌에 처음 보인다. 삼국시대가 끝난 후인 3세기 후반의 진(晉)나라 때, 『병부(餠賦)』에 음과 양이 교차하는 계절인 정월에 만두를 빚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다만 여기서는 끌 만(曼) 머리 두(頭)자를 써서 만두라고 표기했으니 오랑캐 머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중국 샹양(襄阳)시 제갈량 광장(諸葛亮廣場)에 설치된 제갈공명 동상. 바이두(百度)

그렇다면 제갈공명이 남만 포로의 머리를 베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대신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두를 빚었다는 이야기는 누가 처음 했을까?

소설 삼국지, 정식 이름 『삼국지통속연의』의 저자인 나관중이 제갈공명의 인간미를 강조하기 위해, 하지만 남만 사람들이 들으면 무지 기분 나빴을, 기발하면서 발칙한 스토리를 창작했을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다. 송나라 때 문헌 『사물기원』에 나오는 이야기를 슬쩍 가져다 소설 속에 풀어냈을 뿐이다.

사물기원의 만두(曼頭) 기원에 대한 설명에서는 패관소설에 따르면 제갈무후가 맹획을 정벌할 때 사람들이 사람의 머리를 베어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지만, 제갈무후가 이 말을 따르지 않고 양, 돼지고기를 밀가루로 싸서 사람 머리처럼 만들어 제사를 지낸 후 출병을 했다고 나온다.

참고로 출처로 인용한 패관소설이란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수집해 엮은 책이다. 다시 말해 당시 송나라 사회에 이런 이야기가 떠돌았다는 의미다.

여기서 핵심은 나관중이 사물기원의 스토리를 슬쩍 표절했다는 고발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송나라 사람들이 만두를 먹으며 "원래는 남만 오랑캐의 머리 대신 만든 음식이었대..."라며 낄낄거렸을 당시 사회 풍경이다.

송나라는 밀 문화권인 북방의 만두가 쌀 문화권인 양자강 이남의 강남에 퍼지며 대중화됐던 시대다. 이 과정에서 중원의 한족이 알게 모르게 남만인들에 대한 비하하는 분위기가 제갈공명의 만두 발명 이야기에 은연중 담겨 있다. 이때의 남만인들은 왜 비아냥의 대상이 됐을까?
중국 역사, 특히 송나라 전후의 시대 상황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송나라는 진(晉)과 5호16국 시대 이래로 중원의 한족이 북방민인 거란의 요, 여진의 금나라에 밀려 양자강 유역과 그 이남으로 쫓겨 내려왔다. 뒤집어 말하면 쫓겨온 한족이 세력이 더 약했던 현지의 남만인, 현재의 한족 일부와 소수민족을 밀어내고 영토를 개척했다. 이 과정에서 남만에 대한 멸시가 생겼다.

원나라까지 이어진 이른바 남인(南人)에 대한 하대는 명나라 때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원말명초 때의 인물인 나관중은 남만 오랑캐 머리 대신 만두를 빚었다는 제갈공명의 발명설을 재조명했고 심지어 명나라 후기 인물인 낭영은 칠수유고에서 만두의 원래 이름은 오랑캐 머리, 만두(蠻頭)였다며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만두 유래에 담긴 행간의 의미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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