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크로커스 시청 공연장 테러에 대해 러시아 측이 제기한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강력히 부인하며 ‘러시아 자작극설’로 맞받아쳤다. 140명이 넘는 민간인 희생자가 나온 가운데 러시아가 이번 테러의 배후조차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국 정부는 한목소리로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테러 행위를 강력히 규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 성명을 내고 “어제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일로 푸틴 대통령 등 악당(scoundrel)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비난하려고만 한다”며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시민을 돌보는 것 대신 이 사건과 우크라이나를 연결 지을 방법만 궁리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번 테러 사건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인이 자국 특수부대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크로커스 시청 공연장에서 조용히 죽겠다고 한다면, 푸틴은 이런 상황을 더욱 개인 권력에 유리하게 바꾸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도 “모스크바 테러는 푸틴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특수부대가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라며 자작극 의혹을 제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 올린 성명. 텔레그램 갈무리

앞서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가 이번 테러에 연관됐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3일 대국민 연설에서 “(용의자들이)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고,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고 발언했다. 레오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국제관계위원장도 텔레그램에서 “테러 공격 조사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흔적이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3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러시아 국적의 여성들이 전날 러시아 크라스노고르스크 크로커스 시청 공연장에서 일어난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자 러시아와 대립하는 서방 국가들도 한목소리로 테러범을 비난하고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테러를 규탄하며 이 끔찍한 사건으로 인한 인명 손실에 슬퍼하는 러시아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제기한 테러 배후 의혹에 모두 거리를 뒀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IS는 모든 곳에서 물리쳐야 할 공동의 적”이라며 스스로 이번 테러를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IS를 비난했다. 전날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나 우크라이나인이 (테러에) 연루된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전날 성명에서 “충격적이고 끔찍하다”라며 “EU는 민간인에 대한 모든 공격을 규탄한다. 우리는 영향을 받은 모든 러시아 국민과 함께한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IS가 배후를 자처하는 이번 테러를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희생자 가족, 부상자, 러시아 국민과 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우리는 희생자의 가족과 부상자와 함께한다”라고 말했다.

IS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탈레반 정부도 이번 테러를 강력히 규탄했다. 압둘 카하르 발키 탈레반 정부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엑스(옛 트위터)에서 IS에 대해 “이슬람 명예를 훼손하고 지역 전체에 위협을 가하려는 정보기관들의 통제를 받는” 단체라고 규정했다.

같은 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푸틴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보냈다. 중남미의 친 러시아 국가인 니카라과는 모스크바 테러 피해자를 추모하고 러시아 정부와의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오는 24일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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