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하원이 지난 22일 이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필리핀 하원 홈페이지 갈무리

이혼을 금지하는 필리핀에서 이혼 합법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여성·인권 단체는 상원 문턱까지 넘기를 촉구하고 있으나 보수적 종교계가 반대하고 나서, 상원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26일 필리핀 매체 래플러에 따르면, 필리핀 하원은 지난 22일 부부가 완전한 이혼을 통해 결혼을 종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찬성 126표, 반대 109표로 통과시켰다. 기권은 20표였다.

이제 이 법안은 상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필리핀에서 이혼 합법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건 이번이 두번째다. 2018년 하원에서 이혼 합법화 법안이 찬성 134표, 반대 57표, 기권 2표로 통과한 적 있으나 상원에서 좌절된 바 있다. 이번에는 당시보다 근소한 표차로 안건이 통과됐다.

바티칸을 제외하면 필리핀은 법적 이혼을 합법화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 필리핀은 국교는 없으나 가톨릭 신자가 약 80%를 차지한다. 가족·성 문화에 보수적인 가톨릭의 영향 탓에, 임신중지와 피임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혼을 금지한다. 필리핀에서 합법적으로 이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개인법을 적용받는 무슬림 국민뿐이다.

그 외에 부부가 법적으로 갈라설 방법은 혼인무효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결혼이 처음부터 유효하지 않았음을 법원에서 인정받아야 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혼인무효 절차에 드는 비용은 15만페소(약 353만원)에서 30만페소(약 706만원)로, 필리핀 월 평균 임금보다 최대 16배 이상 높다. 또한 혼인무효 요건은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한 경우, 성적지향을 속인 경우, 결혼 동의서의 허위 진술이나 허위 제공 등 극히 제한적이다.

그동안 필리핀 여성·인권계는 배우자의 학대를 겪어도 이혼이 어렵고, 사실상 혼인이 종료된 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간음죄로 고소당한다고 비판해왔다. 이번 이혼 합법화 법안을 공동발의한 가브리엘라여성당 소속 아를린 브로사스 의원은 “여성이 학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밝혔다. 로비단체 ‘오늘날 필리핀을 위한 이혼’은 “우리는 축하할 준비가 됐다. 이혼법은 불행한 결혼에 갇힌 다른 필리핀인들에겐 자유를 의미한다. 다음 단계는 8월에 있을 상원 청문회”라고 밝혔다.

이번에 하원을 통과한 법안도 여전히 보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초안을 작성한 에드셀 라그만 의원은 “이혼 사유는 제한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당사자의 남용과 공모를 방지하기 위해 (이혼 청원은) 사법 조사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무과실 이혼, 긴급 이혼 등 간소한 절차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보수 성향의 의원과 종교 단체의 반발로 상원 통과를 낙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의 알베르토 위 주교는 “의원들이 이혼 법안을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대신 결혼을 지지하고 가족제도를 강화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의 복지를 보호하는 정책·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데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혼을 조장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의 결속력을 무너뜨리고 도덕적 가치를 약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혼 합법화 대신 혼인무효 소송 비용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필리핀에서 이혼에 대한 인식은 나아지는 추세다. 여론조사 기관 ‘소셜웨더스테이션스’가 필리핀인을 대상으로 2005년 실시한 조사에서 이혼 찬성은 43%, 반대는 45%였다. 같은 기관이 2017년 실시한 조사에서 이 비율은 찬성 53%, 반대 32%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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