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습으로 불타는 라파 난민촌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이스라엘이 26일(이하 현지시간) 피난민 밀집 지역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공습을 감행해 현재까지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다쳤다. 유엔 산하 최고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공격중단 명령에도 불구하고 공습이 이뤄진 것이다.

국제사회는 분노와 경악에 휩싸인 채 즉각 휴전을 촉구했다. 미국 백악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채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른바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또 다시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8일 오후 팔레스타인 문제를 의제로 긴급 비공식 협의를 열고 라파 난민촌 공습에 따른 민간인 피해 문제를 논의한다.

ICJ "라파 지역 공격 즉각 중단".. 이스라엘, 이틀 만에 인도주의 구역 공습

네타냐후 "비극적인 실수" "전쟁 끝내지는 않을 것"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 26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북서쪽에 있는 탈 알술탄 피란민촌에 공습을 가했으며 이로 인해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피란민촌은 이스라엘군에 의해 인도주의 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지난 6일 이스라엘군의 라파 동부 공격이 시작된 이후 피란한 주민 수천 명이 머물고 있었다.

이번 이스라엘의 공습은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뒤 벌어졌다.

유엔 최고법원인 ICJ는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심리에서 이스라엘에 "라파에서의 군사 공격 및 다른 모든 행위를 즉각적으로 중단하라"며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생활 여건 전체 혹은 일부에 대한 물리적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이집트와 통하는 라파 검문소를 개방하는 한편 현장 상황 조사를 위한 제한 없는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이날 명령에 따른 후속 조처 보고서를 한 달 이내에 ICJ에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이틀 만에 공습을 감행한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공습으로 수십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비극적 실수'로 규정하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일간 하레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27일 크네세트(의회) 연설에서 "우리는 라파에서 전쟁과 무관한 주민 100만명을 대피시켰다"며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제 라파에서 비극적인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정책"이라며 "전쟁과 무관한 사람들이 다치는 것은 비극"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외부의 압박에 맞설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패배의 깃발을 들지만, 나는 승리의 깃발을 게양할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모든 전쟁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는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지금 포기하면 대학살이 또 벌어지고 테러 세력(하마스), 이란이 큰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휴전 가능성을 부인했다.

국제사회 경악… 영국·프랑스·독일 "국제법 어긋나" "즉각 휴전" 촉구

이스라엘이 ICJ의 명령에도 라파 지역을 공습해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자 국제사회는 경악하며 즉각 휴전을 촉구했다.

과거 유대인 학살로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독일조차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는 이스라엘의 라파 공습은 국제법과 양립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은 적어도 난민촌 등을 폭격한 방식으로 공격을 수행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미국 다음으로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영국 외무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영 외무부는 "라파에 아직 남아있는 수십 만 시민들을 보호할 계획 없이 그곳에 주요 군사 작전을 하는 것을 지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쟁을 끝내는 가장 빠른 길은 인질들을 풀려나게 하고 가자에 전투 중지를 가져오는 협상을 합의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국제 파트너들과 함께 전투 중단을 장기적 지속적 휴전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번 공습에 "분노한다"며 "완전한 국제법 존중과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난민촌 공습 같은) 작전은 중단돼야 한다"며 "라파에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위한 안전지대는 없다"고 규탄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이날 1만여 명이 거리로 몰려나가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교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연합(EU) 회원국 외교장관들에게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 지지와 이스라엘이 라파 작전을 계속할 경우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은 엑스(X, 옛 트위터)에 "캐나다는 이스라엘의 라파 군사 작전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이 정도 수준의 인간적 고통은 끝을 내야 한다"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온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공습은 ICJ가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뒤 벌어진 '학살'이라며 이스라엘을 '테러 국가'라고 주장했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 최고 대표는 "공포를 느낀다"라며 "난민촌 피해 현장의 사진은 끔찍하고 이미 수많은 민간인이 숨진 이스라엘의 전쟁 방법과 수단에 뚜렷한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구가 밀집한 지역을 공습하면 민간인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완전히 예측 가능한데도 저질렀다는 것이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X에 "가자에 안전한 곳은 없다"며 "이 공포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토르 베네슬란 유엔 중동평화 특별조정관도 "피난처를 찾던 지역에서 수많은 여성과 아동이 사망한 데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애도했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가자가 지옥으로 변했다는 증거"라고 규탄했다. 라파 현지 팀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며, 일부 직원들도 행방불명 상태라고 전했다.

당혹스러운 백악관 "레드라인 넘었는지 평가 중".. 무기 지원 중단?

미국은 민간인 사상자가 300명에 육박한 이번 공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는지 평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라파에서 또다시 무차별 공격이 이뤄질 경우 이스라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 만큼 이번 민간인 피해로 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 정책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미국은 민간인 보호를 위해 '모든 예방 조치'를 취할 것을 이스라엘에 촉구했다.

27일 CNN,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이번 민간인 사상자 발생에 대해 "지난 밤 수십 명의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이 목숨을 잃은 IDF 라파 공습 이후의 파괴적인 이미지는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추격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이번 공습으로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주도한 하마스 고위 테러리스트 2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밝혔듯이 이스라엘은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변인은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평가하기 위해 현장에 있는 이스라엘군(IDF)과 파트너들을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으며 IDF가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라고도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액시오스도 익명의 미국 관료들을 인용해 백악관이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등 행동이 정당한지 판단하기 위해 난민촌 공격 관련 진상 파악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중 한명은 "현재 상황이 미국의 조치를 필요로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백악관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는 과정"이라면서 "이번 사건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증가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 난민촌 공습과 관련해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회의는 유엔 안보리 아랍권 비상임이사국인 알제리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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