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푸젠)볶음밥. 바이두바이커

볶음 요리가 발달한 중국인만큼 볶음밥도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양주(揚州, 양저우)와 복건(福建, 푸젠), 양대 볶음밥이 유명하다. 중국에서, 특히 북경의 음식점에서 볶음밥을 주문하면 많은 경우 "양주 볶음밥이냐 복건 볶음밥이냐?"고 묻는다. 볶음밥이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데 양주와 복건 볶음밥은 확실히 같지 않다. 어떻게 다르며 역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양주 볶음밥은 강소성 양주에서 발달했고 복건 볶음밥 역시 중국 남부 복건성에서 생겨나 퍼진 볶음밥일 것으로 짐작한다. 어쨌거나 우리한테는 둘 다 낯선 음식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양주 볶음밥은 계란 볶음밥이다. 한국의 중국음식점에서 흔히 먹는 그 볶음밥이고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계란볶음밥도 양주 볶음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양주 볶음밥은 예전 이 칼럼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역사가 깊은 음식이다. 7세기 초, 수나라 양제가 대운하를 완공한 후 양주에 와서 먹어보고는 그 맛에 반했다고 하니 사실이라면 역사가 무려 1400년이나 된다.

양주(양저우)볶음밥. 게티이미지코리아

뿌리는 깊어도 지금은 흔해 빠진 게 계란 볶음밥이지만 옛날 양주볶음밥은 대단한 요리였었다. 중국 상류층 요리, 특히 황실요리의 바탕이 되는 회양요리, 그중에서도 양주에서 발달했던 만큼 고대에는 최고급 음식이었다. 별명이 금가루를 뿌린 밥 같다고 쇄금반(碎金飯)이었는데 계란 노른자가 기름과 섞여 반짝반짝 빛나기도 했지만 실제 금가루 뿌린 밥처럼 사치스러웠기 때문이었다.

7세기 초는 아무리 벼농사가 발달한 양주라지만 쌀도 귀했고 기름도 계란도 흔치 않았을 때이니 당시 계란 볶음밥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러면 복건 볶음밥은 어떤 음식일까?

대부분 한국인은 먹어보기는커녕 듣도 보도 못한 볶음밥일텐데 중국의 양대 볶음밥이라면서 우리한테는 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일까?

일단 복건 볶음밥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볶음밥과는 많이 다르다. 계란 등으로 밥을 볶았지만 그 위에다 버섯과 채소, 새우와 조개, 관자 등의 각종 해산물로 걸쭉한 소스를 만들어 얹어 마치 죽처럼 질척하게 먹는 볶음밥이다.

처음 먹을 때는 분명 이름을 보고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실제 나온 음식은 죽도 아닌, 볶음밥도 아닌 애매모호한 음식이 나와 당황할 수도 있다. 한데 실제 먹어 보면 계란 볶음밥에 더해 해산물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소스가 어우러져 계란 볶음밥과는 확실하게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중국이 요리천국이라더니 복건 사람들, 평범한 볶음밥을 응용해 희한하고 특별한 요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복건 사람들은 정작 복건 볶음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먹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이게 왜 복건 볶음밥이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복건 볶음밥은 어떻게 생겨난 음식일까? 게다가 왜 관계도 없는 한국인이 복건 볶음밥의 유래까지 궁금해해야 하는 것일까? 이유는 역시 복건 볶음밥을 통해 알지 못했던 중국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먼저 복건 사람이 복건 볶음밥을 모르는 이유, 고향 음식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까닭은 실제 복건 볶음밥은 홍콩에서 생겨난 볶음밥이기 때문이다.

홍콩 대학가에서 계란 볶음밥에 해산물 소스를 부어 먹은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지만 알려진 것은 1980년대 홍콩의 한 호텔에서 요리로 개발해 메뉴에 올리면서 퍼졌다고 한다. 그러다 2000년을 전후해 북경에 전해지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양주 볶음밥이냐 복건 볶음밥이냐 물을 정도로 볶음밥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면 복건성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왜 복건 볶음밥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홍콩과 중국 신문 내지는 인터넷에 떠도는 속설에조차 관련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추측컨대 계란 볶음밥인 양주 볶음밥이 청나라 건륭제 때 복건성 출신으로 양주 태수를 지낸 이병수라는 인물을 통해 복건성에 퍼졌고 청나라 말 이곳을 경유해 다시 광동성 광주로 퍼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1980년대 홍콩에서 계란 볶음밥에 해산물 소스를 얹은 새로운 볶음밥을 개발하면서 그 경유지가 된 '복건'이라는 지명을 붙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리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당시 홍콩을 포함한 광동과 중앙인 북경과의 이질감도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 80년대 홍콩에서 생겨난 복건 볶음밥이 2000년 북경에서 유행한 배경 역시 당시 중국 사회와 관련 있다. 이 무렵 북경은 개혁개방의 성과로 이제 막 먹고 살만하다는 샤오캉(小康) 사회로 들어설 때였다. 그러면서 해산물 등 비교적 값비싼 음식, 새로운 외식에 대한 욕구가 강해질 때와 맞물려 복건 볶음밥이 널리 퍼지고 자리를 잡게 됐다는 것이다. 격변했던 중국의 모습이 한낱 볶음밥에도 투영되어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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