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첨. 출처=예슝(葉雄) 화백

강유가 장익, 요화와 함께 답중을 버리고 검각으로 물러날 때, 검각은 다행히 보국대장군 동궐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강유는 검각을 지키면서 기회를 엿보기로 했습니다. 이때 위군이 제갈서가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노한 강유는 5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돌격했습니다. 제갈서는 크게 패하고 몇십리를 후퇴했습니다. 종회가 검각 인근에 영채를 세우자 제갈서가 죄를 빌었습니다. 종회는 크게 노해서 명령을 어긴 자는 등애라 해도 용서할 수 없다면서 제갈서를 끌어내어 참수토록 했습니다. 감군 위관이 간곡히 말하여 죽음만은 모면했지만, 사마소가 처결하도록 함거에 실어 낙양으로 보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등애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저와 나는 품계가 똑같다. 나는 오랫동안 변방을 지키면서 나라에 많은 공로를 세웠는데 어찌 감히 나에게 잘난 체하는 거냐?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계획을 그르친다’고 했습니다. 아버님께서 만일 그와 불목하시면 국가 대사를 그르치게 됩니다. 우선 참고 용납하소서.

등애는 아들 등충의 말을 옳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앙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등애는 10여기를 이끌고 종회를 만났습니다. 종회는 수백 명의 무사를 도열시켰습니다. 불안감을 느낀 등애가 말로 찔러 보았습니다.

장군! 한중을 얻는 것은 조정을 위해 더없이 다행한 일이오. 계책을 정해 빨리 검각을 함락하시오.

장군이 보시기에 어떻소이까?

무능한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장군도 생각이 있을 터이니 듣고 싶소이다.

내 생각에 한 무리의 군사를 이끌고 음평의 소로를 따라 덕양정으로 나가 기병(奇兵)을 써서 곧장 성도로 향하면 강유는 틀림없이 군사를 철수하여 구하러 올 것이오. 장군은 빈틈을 타고 검각을 공격하면 완승을 할 수 있으리다.

장군의 계책은 매우 훌륭하오. 즉시 군사를 이끌고 가시도록 하오. 나는 여기서 승전보를 기다리겠소이다.

종회는 등애와 헤어진 후 그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평했습니다. 뭇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종회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음평의 소로는 모두 고산준령이라 촉군 백여 명이 요충을 지키면서 퇴로를 막아도 등애의 군사는 모두 굶어 죽게 될 것이다. 나는 큰길로 당당하게 가겠다. 촉 쯤 쳐부수지 못할까 봐 걱정할 것이 뭐 있느냐?

등애는 영채로 돌아와 종회가 자신의 계책을 신통찮게 여긴 것을 보고는 기어코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밤으로 이동 명령을 내려 음평 소로를 향해 진군하여 검각으로부터 7백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종회는 등애가 공격하러 떠났다는 보고를 받고는 등애를 바보라고 비웃었습니다.

등애는 5천 명의 정예병에게 갑옷 대신 도끼와 정 등 연장을 갖추도록 하여 산을 파서 길을 뚫고 교각을 설치하며 진군했습니다. 깎아지른 골짜기를 20여 일 동안 7백여 리를 갔지만 모두가 무인지경이었습니다. 드디어 마천령 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절벽이 너무 험하여 군사들이 울기만 했습니다. 등애가 다독였습니다.

우리 군사가 이미 7백여 리나 와서 이곳에 다다랐다. 이곳만 지나면 바로 강유(江油)이다. 어찌 다시 물러설 수 있겠느냐? 호랑이굴로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겠느냐? 나와 너희들은 이곳까지 왔다. 만일 공을 이룬다면 부귀를 함께 누리겠다.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담요를 감싸고 벼랑을 굴러 내리는 등애. 출처=예슝(葉雄) 화백

등애는 무기를 밑으로 던지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산비탈을 굴러 내려갔습니다. 장수와 군사들도 모두 담요와 밧줄로 몸을 감싸고 굴러 내려갔습니다. 군사들이 무기를 정돈하고 행군하려 할 때 길가에 석비가 보였습니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화초흥(二火初興)에 이곳을 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사(二士)가 다투다가 오래지 않아 저절로 죽게 된다. 승상 제갈무후가 쓰다.’

등애는 크게 놀라 황망히 비석에 두 번 절하고 신인(神人)을 스승으로 섬기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등애는 음평을 빠져나와 강유관으로 향했습니다. 양식도 떨어져 죽기 살기로 싸울 결심이었습니다. 모종강은 등애가 온몸을 날려 음평 소로를 빠져나온 것을 두고 그의 공을 다음과 같이 칭찬했습니다.

‘위험한 곳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예는 있다. 유비가 단계를 건너뛰고, 후주가 당양에서 벗어나고, 손권이 소요진에서 도망치고, 조조가 복양성에서 패하고 동관으로 달아나고, 사마의가 상방곡에서 달아난 것 등이 모두 그러한 경우다. 그러나 이것들은 특이한 사건으로 인한 위험이었을 뿐 지역으로 인한 위험이 아니었다. 가장 위험한 계책을 세워 가장 위험한 지역을 지나 가장 위험한 화를 무릅쓰고 가장 위험한 공을 세운 것으로 말하면 등애처럼 밧줄에 묶여 절벽에 매달리거나 담요를 감싸고 굴러내리고 도끼와 정으로 7백리 무인지경에 길을 뚫고 행군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회는 등애의 계획이 위험하기 그지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등애는 스스로 그 위험을 극복하고 성공했다. 역시 모두 하늘의 뜻일 뿐 사람의 힘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편, 강유성을 지키는 촉의 장수 마막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전황을 들으면서도 태연자약했습니다. 아내 이씨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듣자니 국경의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고 하던데 장군은 걱정하는 빛이 조금도 없으니 어찌 된 일이오?

국가 대사는 강유가 알아서 처결할 터인데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상관이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군이 지키는 성마저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자가 황호의 말만 믿고 주색에 빠져 지내니 내 짐작에 화가 멀지 않을 것 같소. 만일 위군이 쳐들어온다면 항복하는 것이 상책이오. 걱정할 필요가 뭐 있소?

당신은 사내가 되어서 불충불의한 마음부터 품으면서 뻔뻔스럽게 국가의 작록을 받았다는 말이오?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 같은 더러운 인간을 다시 보겠소. 에잇 퉷!

결국 마막은 등애군이 강유관으로 쳐들어오자 허둥지둥 나와 항복했습니다. 마막의 부인 이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했습니다. 등애가 그 연유를 알고는 후하게 장사 지내도록 하고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등애군도 모두 이씨를 추모했습니다. 등애는 곧장 부성으로 진군했습니다. 부성의 관리와 군사도 모두 항복했습니다.

후주가 이 소식을 듣고 황호를 부르자 황호는 모두 거짓말이라며 무녀를 불러 다시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녀도 달아나버려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위급을 알리는 표문이 후주에게 날아왔습니다. 후주가 조회를 열고 계책을 논의했지만 눈치만 살필 뿐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작 각정이 제갈량의 아들을 불러 계책을 의논하라고 한 것이 다였습니다.

등애군에게 패배하자 자결하는 제갈첨.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첨은 세 번의 조칙을 받고 어전으로 나왔습니다. 제갈첨은 성도의 병사 7만 명을 이끌고 아들 제갈상을 선봉으로 삼아 면죽을 지켰습니다. 두 번의 전투에서 제갈첨이 대승을 거두자 등애는 기병(奇兵)을 써서 공격했습니다. 결국 제갈첨과 제갈상 부자는 진중에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등애는 부자의 충직함을 가엽게 생각하여 합장해 주었습니다. 면죽도 등애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으니 코앞에 있는 성도 입성은 이제 식은 죽 먹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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