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원이 미국에서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52)의 미국 송환 결정을 연기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26일(현지시각) 어산지가 영국 정부의 미국 송환을 막아달라며 낸 소송에서 “어산지가 미국에 넘겨질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미국 당국의 추가 소명이 3주 이내에 오지 않으면 어산지에게 한 번 더 항소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어산지는 최근 5년 동안 갇혀있던 영국의 벨마쉬 교도소에 당분간 더 머물게 됐다.

법원은 이날 “미국 당국은 오스트레일리아인인 어산지가 미국 시민과 똑같이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게 되며 사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정헌법 1조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사형제를 폐지한 영국은 사형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나라에만 용의자를 인도하도록 규정한 유럽인권협약 서명국이다.

법원은 “미국이 이를 보장하는 문서를 제출하면 우리는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양쪽에 추가적인 입장 개진의 기회를 줄 것”이라며 미국에서 문서가 도착하면 다음 공판은 5월 20일 열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국 법무부는 즉각 입장을 내놓진 않았다.

어산지는 2010년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설립해 미국의 외교·군사 기밀 문서를 공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사법당국은 그가 미군 정보분석관 첼시 매닝 일병과 공모해 국방부 컴퓨터를 해킹해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과 관련한 비밀 외교전문과 군사 기밀을 빼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산지의 지지자들은 그의 활동이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언론 출판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들은 또 그가 폭로한 기밀문서는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잘못에 관한 내용으로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산지의 부인 스텔라 어산지는 “어산지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의 진짜 비용을 폭로했기 때문에 박해받고 있다”고 말했다. 어산지의 변호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는 “미국 당국이 고문과 살해 등 전례없는 규모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위키리크스가 폭로했기 때문에 그를 벌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어산지가 정부 기밀문서를 몰래 빼낸 뒤 무차별적으로 공개해 미군을 돕던 이라크인과 아프간인 등 많은 이들을 위태롭게 했다”며 “이는 언론활동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어산지를 둘러싼 긴 법정 다툼은 그가 스웨덴 당국의 요구로 런던에서 체포된 2010년 시작했다. 당시 스웨덴은 그가 두 여성으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고발되었다며 영국에 그의 신변 인도를 요청했다. 어산지는 그러나 2012년 영국 법원의 보석 조건을 어기고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그는 2019년 4월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보호를 철회한 뒤 영국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됐으나, 스웨덴은 그해 11월 어산지의 인도 요구를 철회했다.

영국 지방법원은 지난 2021년 미국의 어산지 인도 요구에 대해 “그가 미국 교도소의 가혹한 조건에 수감되면 자살할 가능성이 있다”며 기각한 바 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어산지의 대우와 처분과 관련한 미국 당국의 소명을 받아들인 뒤 이를 뒤집었고, 영국 정부는 2022년 어산지의 추방 명령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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