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최소 139명의 희생자를 낸 ‘모스크바 테러’ 를 저지른 혐의로 법정에 선 4명이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확인된 뒤, 러시아에서 경범죄만 저질러도 외국인은 추방해야 한다는 국회 의원 주장이 나오는 등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하원 부의장은 모스크바 테러 이틀 뒤인 24일 텔레그램에 “양심적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악을 원하는 사람들도 러시아에 오기가 너무 쉽다”며 “경범죄를 저질러도 추방하는 등 모든 범위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미하일 셰레메트 하원의원도 최근 서방 정보기관이 이주자를 이용해 러시아 국내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이주를 규제해 국내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행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러시아 노동·사회보장부는 이주 노동자들이 사전에 등록한 근무지와 다른 장소나 회사에서 근무할 경우, 15일 안에 강제 출국시키는 법안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전했다. 키르기스스탄 언론 ‘타임 오브 센트럴 아시아’는 “러시아 경찰이 이주민을 포함한 외국인 검문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 조직을 만들었다”며 “이들은 여행용 호스텔, 일부 사업체 등 이주민이 주로 모이는 장소를 집중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평범한 이주민들의 일상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러시아인들이 이주민 소유라는 이유로 건물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타지키스탄 출신 이주민들을 무차별 구타하는 일도 발생했다. 타지키스탄 출신 이주자 한 명은 “이제 그들(러시아인들)은 우리를 저주받은 사람처럼 본다”며 “거리를 걸을 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고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소식을 주로 전하는 인터넷 매체 유라시아넷이 전했다.

이고르 크라스노프 러시아 연방 검찰총장은 26일 “지난해 러시아 내 이민자 범죄가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며 “시민의 안전 확보와 외국인 노동력 활용에 따른 경제적 합리성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러시아 정부가 대형 테러 방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의 제노포비아 확산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노동력 부족이 480만여명에 이른다. 전시 동원령으로 노동인구 30만 명 이상이 소집됐고, 동원령을 피하려고 러시아를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는 이들이 옛 소련 구성 공화국들이었던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들이다. 타지키스탄 출신 이주 노동자만 러시아에 15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주로 건설, 제조, 물류 분야 등에서 일하며 러시아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는 저임금으로 노동하고 차별에 노출된 중앙아시아 출신 무슬림 이민자들을 조직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이번에 붙잡힌 타지키스탄인 4명은 19살에서 32살 사이 남성이었다. 이 중 19살 남성은 모스크바 외곽 이발소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청년이었으며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다고 이발소 소유자 말을 인용해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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