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정당의 돌풍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부터 9일까지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정당의 돌풍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 의석수에서는 중도우파가 1위를 사수했으나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극우정당이 1위를 차지했고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도 극우정당이 2위를 차지하며 유럽 전체에서 극우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됐다.

이에 따라 기존 중도우파가 주도하던 이민 문제나 환경 문제 등 유럽연합의 각종 정책들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극우 세력간에도 의견 일치를 보이지 못하는 문제가 많아 오히려 극우가 분열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투표율 51%,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

중도우파 EPP 720석 중 191석으로 1위 전망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실시된 유럽 의회 선거가 모두 마무리됐다. 올해 선거 투표율은 다수의 회원국에서 증가함에 따라 51%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9년 투표율인 50.66%보다 조금 높고,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유럽의회가 10일 오전 0시께 발표한 잠정 예측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제1당 격인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은 전체 720석 중 191석(26.53%)을 얻어 유럽의회 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기존 의석수(705석 중 176석, 25.0%)보다 비중이 다소 늘어난 것이다.

유럽의회는 개표 결과를 반영한 최종 결과를 10일 오전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 개표 결과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으나 제1당 자리는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됐다.

EPP의 대표 후보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9일 선거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의 당 본부에서 "우리는 가장 강력한 정당이다. 우리는 안정적인 닻이며, 유권자들은 지난 5년 동안 우리의 리더십을 인정했다"라면서 "EPP가 없이는 과반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의 국가에서 강경우파와 극우 성향 정치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속한 집권 정당 르네상스당은 15% 득표에 그치며 31.5%를 득표한 마린 르펜의 극우 국민연합(RN)에 참패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네오파시스트당이라는 비판을 받는 집권 이탈리아형제들(FdI)이 2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조르자 멜로니 총리에게 힘을 실어줬으며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 정당인 자유당이 25.7%를 득표해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독일에서는 집권당이 3위로 밀려났다.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30%를 득표한 가운데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5.6%로 2위를, 올라프 숄츠 총리의 집권 SPD가 14%로 3위를 차지할 것이란 잠정치가 나왔다.

극우 정치그룹 약 10석 늘어난 130석.. 제2당 지위도 가능

이로 인해 강경우파와 극우세력은 이번 유럽의회에서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교섭단체를 의미하는 '정치그룹'을 구성하는데 기존 의회는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 176석과 제2당인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진보동맹'(S&D) 139석이 가장 큰 그룹으로 꼽힌다.

그 뒤를 자유주의와 중도를 표방하는 '리뉴 유럽'(RE) 102석, 녹색 정치와 지역주의 성향을 가치로 한 정치그룹인 '녹색당-유럽 자유동맹'(Greens-EFA)이 72석을 차지했다.

의회 내 양대 극우 정치그룹으로 대표되는 '유럽 보수와 개혁'(ECR) 69석, '정체성과 민주주의'(ID)이 49석, 7곳 중 마지막 1개 그룹은 급진좌파 성향의 유럽의회 좌파(GUE/NGL) 37석이다. 무소속은 61석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 ECR은 72석, ID는 58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된다.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ECR과 마린 르펜이 주축인 ID 의석 총합이 제2당인 S&D의 예상 의석(135석)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이밖에 제3당인 중도 자유당그룹(Renew Europe)은 현재 102석(14.5%)에서 크게 줄어든 83석(11.53%)에 그칠 것으로 점쳐졌고, 친환경 기후정책 추진에 앞장섰던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현재 71석(10.1%)에서 크게 줄어든 53석(7.36%)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출처=연합뉴스]

마크롱, 유럽 선거 참패에 전격 의회 해산…30일 조기총선

더크로 벨기에 총리 사퇴 "선거 패배 책임질 것"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로 유럽 내 정치 지형에도 격변이 일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9일 선거 참패를 인정하고 의회 해산 후 오는 30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나는 투표를 통해 여러분에게 우리 의회의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돌려드리기로 결정했다"며 "오늘 저녁 국회를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달 30일 1차 투표, 내달 7일 2차 투표를 알리는 법령에 곧 서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지난 2022년 6월 총선을 치른 지 2년 만에 다시 의회를 구성하게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선거 결과에 대해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의 진보에 반대해 온 극우 정당들이 대륙 전역에서 진전을 보인다"고 유감을 표한 뒤 "국수주의자와 선동가의 부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그리고 유럽과 세계 내 프랑스의 입지에 대한 위험"이라고 우려했다.

전국·지방 선거를 함께 치른 벨기에도 집권당이 크게 패하며 알렉산더르 더크로 총리는 사임을 선언했다.

유로뉴스와 CNN 등에 따르면 더크로 총리는 이날 연설을 통해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패배했다. 나는 이번 선거 운동의 얼굴이었다"라며 "이건 우리가 바랐던 결과가 아니고, 나는 완전히 책임을 질 것"이라며 사퇴를 선언했다.

벨기에에서는 이날 유럽의회 선거와 전국·지방 선거가 동시에 열렸다. AP에 따르면 이른바 '슈퍼 선데이'로 불리는 이날 선거에서 더크로 총리의 열린자유민주당(Open VLD)은 전국 기준 7%대 득표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더크로 총리는 "오늘은 우리에게 매우 힘든 밤"이라며 "내일부터 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유주의 세력은 강하다"라며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도 야당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오르반 총리의 피데스당은 직전 2019년보단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약 43%를 득표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치적 경쟁자인 페테르 머저르가 지난 2월 당과 결별한 뒤 세운 신당 '존중과 자유'(TISZA)가 약 31%를 득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피데스당 정치인들의 스캔들로 가족 가치와 기독교 보수주의를 중시하는 지지층이 이탈했다는 분석이다.

멜로니 총리 [사진=AP=연합뉴스]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 최대 승자… EU 킹메이커 부상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라는 분석이다. 그의 향후 행보에 따라 EU 권력 지형이 달라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은 득표율 28.3%로 이탈리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야당인 중도좌파 민주당(PD)과 제2야당인 오성운동(M5S)이 각각 23.7%, 10.5%로 뒤를 이었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창당한 '포르자 이탈리아'(Forza Italia·전진이탈리아)의 득표율은 10%였다.

이번 승리로 멜로니 총리는 EU의 킹메이커 지위를 갖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8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멜로니 총리가 유럽의회 선거 국면에서 극우파와 중도파의 구애를 동시에 받고 있다면서 그가 차기 EU 지도부를 결정하는 킹메이커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과 중도 우파 진영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현 집행위원장이 동시에 멜로니 총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어 멜로니 총리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르펜은 지난달 멜로니 총리를 향해 "지금이 바로 단결해야 할 때"라며 "유럽의회에서 두 번째로 큰 정치그룹이 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극우 세력을 통합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재앙적 정책'을 끝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만일, 르펜이 멜로니 총리와 손을 잡는 데 성공하면 EU 의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그룹을 구성하게 된다. 또 2027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르펜이 원했던 RN의 대중 정당화도 가능해질 수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멜로니 총리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친EU, 친우크라이나·반푸틴, 친법치주의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함께 일할 것"이라며 멜로니 총리와 협력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멜로니 총리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손을 잡는다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연임을 위한 확실한 동력을 얻게 되고, 이탈리아로서는 EU 집행부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멜로니 총리는 양측의 연대 제안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멜로니 총리가 2022년 강력한 반이민 극우 공약으로 권력을 잡은 뒤 주류 보수로 입장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도우파와의 협력을 선택할 것으로 보는 쪽도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도 멜로니 총리가 라이벌 진영의 정치인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그간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다고 짚었다.

선데이타임스는 "이탈리아가 EU 코로나19 복구 기금에서 나온 1천944억 유로(약 29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계속 받기를 원하는 상황에서, 멜로니 총리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계속 협력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의회, 우향우.. 이민·환경 등 EU 정책 변화 가능성

이번 선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미중 경쟁으로 촉발된 무역 긴장 △기후변화 대응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여러 복잡한 사안을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았다.

이런 가운데 예상대로 극우 세력이 약진하면서 유럽 27개국의 정치·경제 연합체인 유럽연합(EU)의 주요 정책에도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 CNBC 방송은 극우와 포퓰리즘 세력의 입김이 커지면서 향후 유럽의회의 '우향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뜨거운 감자'인 이민 문제에서부터 환경,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방 정책은 물론 산업과 EU 몸집 확대 등에 이르기까지 EU 주요 정책 전반에 극우 진영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이야기다.

이 매체는 특히 국경 통제 강화, 역외 이민자 강경 단속 등을 추구하는 우파가 득세함으로써 차기 유럽의회가 활동하게 될 향후 5년 동안에도 이 문제가 EU 의제의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역외 이민자들의 유입을 단속해야 한다는 데에는 폭넓게 공감하면서도, 단속 방식을 놓고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역외 이민자들의 관문 역할을 하는 EU 남부 국가들과 독일, 북유럽 등 북부 국가들 사이에 뚜렷한 이견이 있는 만큼 이주민 단속을 어떻게 이행할지가 향후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물가 등급과 지지부진한 경제 성장으로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이번 선거로 추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친러시아, 친중 성향인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 차원의 공동 지원 기조가 불투명해지고, EU 공동 방위비 부담 확대에 대한 이견이 분출될 소지도 있다고 CNBC는 예상했다.

하지만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유럽이 중요한 사안에서 단합된 목소리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파 세력들 사이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민, 역사 문제에 대한 입장차가 커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와 독일 AfD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반대하지만 프랑스 국민연합과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

이민 문제조차 우파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이민자 제한 완화를 주도하자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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