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9일(현지시간) 실시한 유럽의회 선거에서 확인된 극우 돌풍의 배경에 ‘러시아발(發) 가짜뉴스’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극우의 압승으로 의회 해산, 조기 총선이라는 극단적 조치가 이어진 프랑스에선 러시아가 ‘빈대 뉴스’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켰다는 주장이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가 약진한 가운데, 일각에선 '빈대 가짜뉴스'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무너뜨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AFP=연합뉴스

"빈대 가짜뉴스→반 우크라 →반 마크롱"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빈대가 어떻게 마크롱을 무너뜨렸나’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지난해부터 러시아가 소셜미디어의 가짜 계정을 활용해 ‘빈대 히스테리’를 유발했고, 이를 도화선 삼아 반(反) 이민, 반 우크라이나, 반 마크롱 정서를 촉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빈대 히스테리'는 지난해 9월 시작됐다. 텔레그래프는 프랑스 수도 파리의 교외 지역인 베르시에 사는 여성 나왈이 지역 영화관에서 빈대에 물렸다는 불평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시작이라고 짚었다. 영화관 관계자는 나왈에게 즉시 사과하고 빈대 퇴치를 위한 긴급 조치를 했지만 이와 별개로 나왈의 게시물은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공유됐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빈대에 물렸던 자신의 경험담을 덧붙이면서 공포감이 눈덩이처럼 부풀렸다. 텔레그래프는 “프랑스의 집과 대중교통, 공공시설 등 나라 전체가 빈대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고, 이러한 괴소문은 국외로까지 삽시간에 번져나갔다”고 전했다.

프랑스와 영국·독일·네덜란드 등을 잇는 서유럽 고속열차인 유로스타는 승객들의 빈대 공포에 대한 해결책으로 객실 청소와 방역을 최고 수준까지 높였고, 일부 항공사는 객실 내 빈대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지상 착륙을 허가하지 않기도 했다.

최근 빈대 히스테리가 잦아들면서, 프랑스에선 “모두가 느낀 공포와, 실상은 전혀 달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영국 런던 지하철에서는 빈대로 추정되는 곤충을 촬영한 영상이 공개된 뒤, 30건의 추가 목격담이 이어진 바 있다. 프랑스 파리 지하철에선 승객들이 좌석에 달라붙어 휴대폰으로 좌석을 촬영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양국 전문가들의 면밀한 조사에도 살아있는 빈대는커녕 죽은 빈대조차 단 한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프랑스 곤충통제연합회의소에 따르면, 빈대는 2017~2022년 발견 빈도가 증가해 10가구 중 1가구 꼴로 발견됐다. 하지만 지난해 빈대 히스테리가 확산되면서 빈대가 아닌 다른 곤충을 빈대로 착각해 신고한 경우가 대폭 늘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빈대에 대한 ‘과장된 공포’의 이면엔 러시아의 가짜 소셜미디어 계정이 숨어있다고 밝혔다. 영국 노팅엄대 국제문제 및 국가기밀학 전문 교수인 로리 코맥은 “그들은 단지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빈대처럼 보이는 곤충을 촬영해 ‘사실을 가장한 허위’를 퍼뜨린다”면서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입소문’이 아니며, 특정 계정 그룹을 통해 인위적으로 확대 재생산의 과정을 거쳐 일반에게 퍼져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충 방제 기술자가 수도 파리의 한 아파트 침대를 스팀으로 살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빈대 공포증은 반 이민, 반 난민 여론을 들끓게 한 도화선 역할도 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러시아 연구교수인 스티븐 허칭스는 “소셜미디어에는 빈대가 이민자,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의해 유발됐다는 생각을 품도록 유도하는 영상들이 다수 유포됐다”면서 “빈대 공포가 난민이 질병과 오물을 가져온다는 생각을 키웠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마크롱 정부에 대한 반감을 키워냈다”고 설명했다.

"佛 디지털 감시기구 비지눔, 러 선동 증거 확보"

허칭스 교수는 장기간에 걸친 러시아 ‘빈대 계략’의 궁극적 목표가 이번 유럽의회 선거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극우 세력의 대약진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당이 극우 국민연합(RN)에 완패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정치적 도박에 나선 상태다.

이 같은 분석은 프랑스의 국영 디지털 감시 기구인 비지눔(Viginum)이 지난 4월 러시아 연계 계정들에 의한 빈대 관련 선동 증거를 찾아내면서 구체화됐다. 허칭스 교수는 비지눔이 파리 올림픽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가 소셜미디어에서 빈대 문제를 선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다수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는 “빈대 문제까지 러시아의 탓으로 돌리는 유럽의 정신병”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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