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요즘 대형 쇼핑몰 등에 입점해 있는 일부 차이니즈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에서 낯설고 어색한 중국 음식을 발견할 수 있다. 낯선 이유는 한국인 상당수가 듣도 보도 못했던 이름의 음식이고 어색한 까닭은 분명 중국 음식점의 중국 요리인데 이름은 완전 영어이기 때문이다. 바로 제네랄 쏘 치킨(General Tso' chicken)이라는 요리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쏘 장군의 닭고기가 된다.

음식 이름은 낯설고 어색함을 넘어 장군의 닭고기니까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음식 자체는 크게 독특할 것도 없다. 우리가 익숙한 중국 닭고기 요리와 비교하자면 라조기 혹은 깐풍기의 중간 어디쯤 되는 것 같고 궁보계정(宮保鷄丁)과도 살짝 닮았다. 물론 새콤달콤한 데다 느껴질 듯 말 듯 매콤한 소스가 가미된 경우도 있으니 그것이 차이라면 또 차이다.
 
  
제네랄 쏘 치킨이라는 중국 음식, 알고 보면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먼저 차이니즈 레스토랑의 메뉴에 올라있으니까 당연히 중국 음식일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아니다. 미국식 중국 요리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중국 음식이 됐건 미국식 중국 음식이건 그게 그것 아니냐, 어쨌든 중국 음식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중국 사람은 전혀 모르는 중국 음식이라는 점이다. 중국식으로 말하면 "그게 뭣 하는 물건이야(什么东西)?"라는 반응이다.

미국화된 중국 음식이라지만 한국화된 중국 음식 짜장면과도 또 다르다. 우리 짜장면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중국에도 짜장면은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짜장면의 뿌리에 대한 흔적은 찾을 수 있다. 반면 제네랄 쏘 치킨은 그 뿌리가 오리무중이다.

제네랄 쏘 치킨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음식일까? 일단 그 유래는 제네랄 쏘, 그러니까 쏘 장군이 즐겨 먹었던 닭고기 요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러면 제네랄 쏘가 도대체 누구일까 싶은데 실은 청나라 말의 장군이자 정치인이었던 좌종당(左宗棠)이 그 주인공이다. 중국어로는 쭤종탕(ZuoZhongTang)이다.
 
 
쭤 장군이 왜 졸지에 쏘 장군으로 둔갑했을까? 중국어 발음 표기법 때문인데 중국에서는 좌 씨를 쭤(Zuo)라고 표기하지만 대만에서는 쭤(Tso)라고 적는다. 미국에서는 대만식을 따라 표기했지만 쭤 대신 조라고 읽었는데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쏘가 됐다. 좌종당이 돌연 쏘 씨가 된 이유다.

좌종당은 어떤 인물일까? 1812년 중국 호남성(湖南省)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청나라 말 장군이자 고위 관료를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로 특히 청나라 말 혼란기의 각종 민란을 진압하면서 유명해졌다. 대표적으로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했지만 중국에서는 신강 위구르 지역의 회족(回族) 봉기를 막아 청나라로부터의 위구르 독립을 막은 것을 더 평가한다.

이런 쭤 장군, 아니 쏘 장군이 즐겨 먹었던 닭고기 요리가 제네랄 쏘 치킨의 뿌리라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전혀 사실무근이다. 일단 좌종당이 닭고기 요리를 먹었다는 기록도 없고 미국 작가가 호남성의 좌종당 집안을 취재했는데 좌 씨 집안은 물론 호남성에도 비슷한 음식은 찾을 수 없었다고.

그러면 제네랄 쏘 치킨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미국에서 유명해졌는지, 그리고 미국 밖 여러 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됐는가 궁금해지는데 꽤나 복잡한 사연이 있다.
 
 
먼저 제네랄 쏘 치킨은 펑(Peng) 씨라는 호남성 장사(長沙) 출신의 요리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중국이 국공내전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싸울 때 펑씨는 호남성 성장을 비롯해 국민당 고위 관리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다. 그러다 1949년 국민당이 패주해 대만으로 정부를 옮길 때 펑 씨도 대만 총통부에서 전속 요리사로 일하며 주요 인사들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대접한 연회 요리를 지휘했다고 한다.

제네랄 쏘 치킨은 이때 만들어졌는데 1953년 미국 해군 제독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초청 만찬에 처음 선보였다고 한다. 제독이 맛있게 먹으며 요리 이름을 묻자 청나라 좌종당 장군이 먹었던 닭고기라며 제네랄 쏘 치킨이라고 대답한 것이 이름이 됐다.

이후 펑 씨는 미국으로 이민가 뉴욕의 UN 본부 옆에 차이니즈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마침 1973년 모택동과 미중 화해를 이끌어 낸 헨리 키신저 박사가 단골손님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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