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는 마음이 중요해요.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게 써집니다. 

‘서예를 잘 쓰는 비결이 뭐냐’는 왕의 질문에 서예가 유공권(柳公權, 778-865)은 이렇게 대답한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었다. 혹자는 이를 필간(筆諫)으로 본다. 말에 ‘뼈’가 있기 때문이다. 왕이 듣기에 따라서 뒷수습이 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유공권은 ‘해서(楷書) 4대가’의 일원이다. 87세까지 장수하며 귀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평생 ‘뼈’ 있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벼슬길도 순조로웠다.

안진경의 필체

이번 사자성어는 안근유골(顔筋柳骨)이다. ‘명필 안진경의 글씨엔 힘줄이 있다. 필체가 탄력이 있으면서도 투박하고 강건하다’. 앞의 두 글자 ‘안근’은 대략 이런 의미의 줄임말이다. ‘명필 유공권의 글씨에는 뼈가 있다. 필체가 굳세고 골기로 가득하다’. 뒤의 두 글자 ‘유골’은 이런 의미다. 따라서 이 둘이 결합한 ‘안근유골’은 서예가에게 건네는 최고의 찬사다. 단순 병렬 구조라서 ‘유골안근’, 이렇게 앞뒤가 바뀌어도 의미는 같다.

한자와 흑백의 묘한 매력 때문일까. 탁월한 서예 작품을 마주하면 탁해진 정신이 일순간 정돈되기도 한다. 서예는 선(line)의 조합보다 면(face)의 호응에 가깝다. 붓과 먹의 재료 특성 때문에 가느다란 선의 처리가 쉽지 않다. 중국에서 서예라면 왕희지(王羲之, 303-361)와 안진경(顔眞卿, 709-785)을 으뜸으로 친다.

안진경 해서의 특징은 ‘잠두연미(蠶頭燕尾)’와 ‘횡경수중(橫輕竪重)’으로 요약된다. 즉 ‘누에 머리처럼 시작해서 제비 꼬리처럼 끝나는 획들’과 ‘가로는 가늘고 세로는 굵은 필체’가 특징이다. 언제 감상해도 그 굵은 세로획들은 뇌리에 마치 굵은 기둥처럼 안착한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란 말이 있다. ‘글씨는 쓴 사람을 닮는다’란 뜻이다. 안진경의 필체 역시 그의 굵고 대범한 삶과 꽤 닮았다. 관료 안진경의 생애는 조직 전체나 나라의 큰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미혹되기 쉬운 작은 이익들을 뒤로 미룬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당시 안진경은 황하 하류에 위치한 평원(平原)의 태수였다. 현재의 베이징 일대에 근거지를 둔 안녹산과 사사명은 무서운 기세로 당나라 수도 창안(長安)을 향해 진격했다. 현재 허베이(河北)성과 황하 일대의 대부분 도시가 순식간에 반란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안진경은 대담하게도 적진 한가운데에서 신속히 의병을 조직해 평원과 주변 성을 지켜낸다. 반란의 기미가 보일 때부터 일찌감치 대비해둔 덕분이었다. 그는 안녹산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홍수 대비 명분으로 미리 성벽을 높이고 성밖에 해자를 깊게 팠다. 성안에 은밀히 물자도 비축했다.

안진경은 문관이었다. 전투 지휘 경험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약 10만 명의 의병을 이끌며 반란군을 후방에서 성공적으로 교란했다. 무엇보다 그는 항상 대국(大局)적 안목을 견지하며 휘하 병력을 운용했다. 주변 성에서 요청이 오면 자신의 평원 지역이 잠시 위험에 빠지는 것을 각오하고 병력과 물자를 흔쾌히 지원했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는 주변 성의 의병장들과 공(功)을 다투지도 않았다.

훗날 북송(北宋) 정치가 겸 역사가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안진경의 이 의병장 시기를 비교적 상세히 소개한다. 특히 인근 도시의 의병장이었지만 그 처신에 있어 대국적 안목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소인 하란진명(賀蘭進明)을 나란히 기록해, 안진경의 대범하고 ‘선 굵은’ 처신을 잘 드러나게 했다.

안타깝게도 노년기에 안진경은 또 다른 ‘반란군’ 진영에 설득을 위해 파견되었다가 감금되고 교살당했다. 계속된 반란군의 회유를 그가 한사코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나이 이미 76세였다.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는 삶이었다.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같은 이치로, ‘국가는 무엇으로 살며, 국가의 ‘힘줄’은 뭘까’. 국가도 위험에 처했을 때 충성심의 진위와 인물들의 기국(器局)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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