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득표율 1위를 차지하면서 사상 처음 원내 다수당이 유력해졌다 [사진=AP=연합뉴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득표율 1위를 차지하면서 사상 처음 원내 다수당이 유력해졌다. 7일 2차 투표에서도 1위를 지킨다면 RN은 창당 52년 만에 총리를 배출해 권력의 중심에 입성하게 된다.

이번 극우 돌풍은 앞서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이미 예상된 바다. 고물가와 불법이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RN은 반이민·세금감면·복지확대를 내세우며 민심을 사로잡았다.

자국 우선 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극우 정권이 들어설 경우 통합을 표방해온 EU 중심의 기존 질서와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과 환경 문제 등 주요 정책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차 투표서 극우정당 33% 득표하며 1위.. 마크롱 소속 정당은 20% 그쳐

극우 정당 의석, 2년 전 89석 → 최대 270석 전망

1일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총선 1차 투표에서 RN이 이끄는 우파연대가 득표율 33%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2위(28%)에 올랐다.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 르네상스를 비롯한 범여권연합(앙상블)은 3위(20%)에 그쳤다.

프랑스는 총선 1차 투표에서 지역구 등록 유권자의 25% 이상이 참여해 1위 후보자가 총투표 수의 50% 이상을 얻으면 당선이 확정된다. 50% 이상을 얻은 후보자가 없는 경우에는 12.5% 이상 지지를 얻은 후보자끼리 2차 투표를 치른다.

이번 1차 투표 결과 당선자가 확정된 지역구는 전체 577곳 중 76곳으로 RN 39명, NFP 32명, 앙상블 2명이 각각 당선됐다. 이날 당선자를 내지 못한 지역구에서는 내달 7일 2차 투표를 치른다.

현지 매체인 일간 르피가로는 최종 득표율을 기준으로 극우 세력이 전체 의석수 577석 중 240∼270석, NFP는 180∼200석, 범여권은 60∼90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022년 총선에서 이들 세 진영은 각각 89석, 131석, 245석을 얻었는데 2년 만에 마크롱 진영은 최대 4분의 1로 줄어들고 극우는 3배로 세를 키우게 됐다.

RN의 실질적 지도자인 마린 르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가 목소리를 냈다"며 "유권자들이 마크롱 7년의 경멸적이고 부패한 권력을 끝내려는 열망을 명확한 투표로 보여줬다"고 환호했다.

이어 "아직 승리가 아니다. 2차 투표가 결정적"이라며 "폭력적인 극좌 정당 손에 프랑스가 넘어가는 걸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출처=연합뉴스]

마크롱 "2차 투표서 결집해야".. 27년만의 동거정부 가능성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성명에서 "1차 투표의 높은 투표율은 이번 선거의 중요성과 정치적 상황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프랑스인의 열망"이라며 "2차 투표에서 RN에 맞서 민주적·공화적 결집이 필요한 때가 왔다"고 호소했다.

현재로서는 RN의 1당 가능성이 높지만 변수는 NFP와 범여권 앙상블의 단일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2차 투표 결과 RN이 1당을 차지해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면 프랑스에서는 27년 만에 역대 4번째 '동거정부'(대통령과 총리의 소속당이 다른 행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동거정부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자크 시라크 총리(1986∼1988), 미테랑 대통령-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1993∼1995), 시라크 대통령-리오넬 조스팽 총리(1997∼2002) 등 3차례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총선에서 지더라도 대통령직을 사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동거정부에선 본인이 추진하려던 각종 개혁안은 무산되거나 방향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극우 돌풍 주역 28세 바르델라 RN 대표.. 최연소 총리 예약

이번 총선 투표율(66.7%)은 2022년 총선 1차 투표율(47.5%)보다 무려 19.2%나 높아 뜨거운 선거 열기를 보여줬다.

그 중심에는 1995년생으로 만 28세인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가 있다.

RN은 전통적으로 노인과 농촌지역 유권자를 지지기반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바르델라 대표가 젊은 감각과 깔끔한 외모, 단정한 옷차림과 세련된 태도, 적극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 등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오며 RN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르델라 대표는 1995년 파리 근교 드랑시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부모가 이혼한 뒤에는 서민 노동자 계층이 사는 생드니의 공동주택 단지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RN은 바르델라 대표의 이러한 성장 배경과 혈통을 '자수성가한 젊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연결하고, '반이민·반무슬림 극우 정당'이라는 대중의 인식을 완화하는 데 활용해왔다.

바르델라 대표는 17세이던 2012년 처음 대선에 도전한 르펜을 보고 RN의 전신인 FN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당 지역위원회 책임자, 청년조직 대표, 당 대변인 등 요직을 거치며 빠르게 입지를 다졌다.

2019년에는 RN 부대표에 오르며 유럽의회 선거를 이끌었고, 2022년 11월 르펜의 뒤를 이어 RN의 대표로 선출됐다.

2차 투표 결과 RN이 1당이 된다면 바르델라 대표는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정부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눠 가진다. 총리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다수당이나 다수 연정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임명한다.

최연소 총리 임명이 예상되는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 [사진=AP=연합뉴스]

극우 자국 우선주의, 유럽 전반으로 확산 전망

르피가로는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른 요인이 물가와 이민이었다고 짚었다. RN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이민 정책을 내세웠고, 감세 정책, 유럽연합에 대한 예산지원 삭감, 정년 연장 환원 등을 통해 기존 지지층은 물론 여성과 청년층의 표심을 모았다.

이처럼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시작된 극우 돌풍이 이번 조기 총선까지 이어지면서 프랑스 국내 정치를 넘어 유럽 전반에 충격파가 예고된다.

자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극우당 RN이 1당으로서 프랑스의 국정운영에 직접 참여, 새판짜기를 시도할 경우 통합을 표방해온 정치·경제공동체 유럽연합(EU) 중심의 기존 질서가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서부터 이민, 환경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제동이 걸리며 서방 내 균열이 가속할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EU를 강력히 지지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는 달리 RN은 EU와 유럽 통합에 회의적이며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더 많은 권한이 개별 국가로 돌아가야 하고 EU로 가는 프랑스 재원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EU가 'EU에 회의적인 프랑스'라는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과 함께 EU의 양대 축인 프랑스가 유럽의 통합에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서는 것은 EU에는 큰 타격이며, EU의 정책 추진 능력에 큰 제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RN은 프랑스 기업과 농업을 우선하는 법률을 제정하겠다고도 약속했으며, '프랑스를 존중하지 않는' EU 자유 무역 협정 재검토, EU 외연 확장 반대 등의 입장도 보이고 있다.

특히, 프랑스 의회는 국가 예산을 통제하는 만큼 RN이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하면 우크라이나 지원이 축소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바르델라 대표는 우크라이나에 군수품과 방어용 장비는 보내겠지만 프랑스군 파병이나 러시아 영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제공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RN의 승리가 유럽 다른 국가들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올해 주요 선거가 예정된 독일 동부나 오스트리아 등에서 EU에 회의적인 극우 정당이 세를 더욱 키울 가능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가장 우파적인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일 "극우 유권자들을 악마화하려는 시도가 힘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는 1일 이탈리아 매체인 아든크로노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차원에서 RN과 그 연대 세력이 1차 투표에서 확실한 성공을 거둔 것을 축하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멜로니 총리는 "좌파에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악마화하고 소외시키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탈리아에서도 이런 시도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전략은 서로 다른 정치적 제안이 가진 장점에 대해 본질적인 토론을 어렵게 한다"며 "그러나 (최근) 이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그 효과는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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