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결선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개혁파 후보인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당선됐다 [사진=AFP=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5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이란 대선 결선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개혁파 후보인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당선됐다. 이에 따라 이란에 3년 만에 다시 개혁 성향 행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개혁파이면서 온건파인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과 핵합의 복원 및 중동 긴장 완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주요 결정권을 가진 이란 체제를 고려할 때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명의 정치인 깜짝 승리.. 히잡 착용 단속 완화·핵합의 복원 등 공약

2021년 취임한 강경 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며 치러진 이란 대선 결과 3년 만에 다시 개혁 성향 행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6일 오전 이란 내무부와 국영 매체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결선투표 개표가 잠정 완료된 결과 온건 개혁파 페제시키안 후보가 유효 투표 중 1천638만4천여표(54.8%)를 얻어 당선됐다.

맞대결한 강경 보수 성향의 '하메네이 충성파' 사이드 잘릴리 후보는 1천353만8천여표(45.2%)를 득표했다.

지난달 28일 1차 투표에서 대선후보 4명 중 유일한 개혁 성향으로 예상을 깨고 '깜짝' 1위를 차지했던 그는 결선에서도 잘릴리 후보를 약 285만표 차이로 누르고 최종 당선자가 됐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새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 라이시 전 대통령의 잔여 임기 1년이 아닌 온전한 임기인 4년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2028년까지 대통령직을 맡게 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국영 IRIB 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이란 국민에 손길을 뻗겠다"며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심장 전문의 출신으로 1997년 개혁 성향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정부에서 보건부 차관에 임명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보건부 장관을 지냈고 2008년 총선에 출마한 뒤부터 5선을 했다. 하지만, 정치적 위상은 '무명'에 가까웠다.

그는 2022년 9월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 뒤 이란 사회를 들끓게 했던 히잡 반대 시위와 관련해 히잡 착용 단속 완화를 주장하며 청년·여성층 표심을 끌었다. 대외적으로는 경제 제재 완화를 통해 민생고를 해결해야 한다며 핵합의 복원과 서방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으로 다른 보수 후보들과 차별화했다.

개혁파로 분류되지만 이란의 이슬람 신정체제에는 순응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력서열 1위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게 공개적으로 충성을 맹세했고 이란 혁명수비대(IRGC)를 지지한다는 발언도 수차례 내놨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이날 축하 성명에서 "당선자가 신에 대한 믿음과 함께 라이시 순교자의 길을 이어가는 밝은 지평을 기대할 것을 조언한다"며 기존 정부와 큰 차이가 없을 것임을 암시했다.

이란 민심, 민생고에 개혁파 대통령 선택… 사회적 자유 변화 기대

이번 이란 대선은 만성적인 경제난과 민생고가 정부를 향한 불만으로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은 천연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지만 50여년에 걸친 미국과 유럽의 제재를 받으며 경제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서방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타결로 돌파구를 찾는 듯했으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전례없는 고강도 제재를 부활하자 이란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을 2년 넘게 겪으면서 민생고는 더 악화했다.

최근 10년간 달러 대비 환율이 20배로 뛰었고 연 50% 안팎의 물가 상승, 약 20%에 달하는 젊은층 실업률은 서민층 일상을 짓눌렀다.

또, 2021년 집권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강경 보수 일변도 정책은 큰 반감을 불렀다. 2022년 전국적으로 확산한 '히잡 시위'로 팽배한 반정부 여론이 분출했으나 정부가 이를 유혈진압하고 대거 사법처리해 강제 봉합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번 대선은 역대 최저 투표율 속에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는 분석이다.

다만, 국방, 안보, 외교와 같은 국가 주요 정책은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가 결정권을 갖고 있어 실질적인 대내외 정책의 변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강경 보수 정책에 대한 이란 민심의 제동이 확인된 만큼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완화된 사회 분야 정책은 기대해볼 만하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전문가 사남 바킬은 CNN에 "페제시키안의 당선이 즉각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지만, 그는 덜 억압적인 환경을 위해 시스템 안에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사회적 자유 차원에서 변화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이란 전문가 알리 바에즈는 WP에 "페제시키안의 유연성은 다른 이들이 대선 출마가 금지됐을 때 살아남아 경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라면서 "이란 지배층 입장에서도 국가와 사회의 격차가 덮고 넘어갈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관계회복 시도 전망.. 중동 긴장도 완화 가능성

美 "근본적 변화 기대 안해"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경제난 해소를 위해 미국과 관계 회복을 위해 핵합의 복원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 미국의 핵합의는 지난 2018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바 있다. 이후 핵합의 복원을 위해 서방과 이란의 협상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까지 진행되었다.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협상은 중단된 상태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중동 평화를 앞세워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명분은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가자지구 전쟁이 10개월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국지전이 아니라 '이스라엘 대 이란'의 정면대결로 확대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보니 이란 내 군부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더 커진 상황이다.

이스라엘, 미국과 군사적인 긴장이 계속된다면 서방과 대화, 제재 해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AP통신 등에 "이란 대선 후보들이 말한 대로 이란 정책은 최고지도자가 결정한다"며 "우리는 이번 선거로 이란이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자국민의 인권을 더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파 대통령의 의미가 분명히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나데르 셰미 미 조지워싱턴대 중동학 교수는 NYT에 "개혁 지향적인 (이란) 대통령이 이슬람공화국의 권위주의에 어느 정도 제약을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CNN은 전문가들이 이번 선거로 서방과 이란과의 관계가 바뀔 것으로 보진 않지만 강경파 당선 땐 긴장이 더 고조될 것이므로 페제시키안이 서방이 선호한 후보임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시진핑·푸틴, 이란 대통령 당선인 축하… 우리 정부도 축전 "우호증진 기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페제시키안 당선인에게 당선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관계 강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6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페제시키안 당선인에게 보낸 축전을 통해 중국과 이란은 오랜 기간 우호 관계를 다져왔으며 양국 관계는 수교 이후 반세기 넘게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해왔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그러면서 복잡한 지역 및 국제 정세 속에서 갖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중국과 이란은 항상 서로를 지지해왔으며 지속적으로 전략적 신뢰 관계를 공고히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왔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역 및 국제 문제에 있어서 이처럼 원활하게 소통하며 보조를 맞추는 것은 양국 국민에게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지역적 안정과 세계 평화에도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자신은 중국과 이란의 관계 발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양국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기 위해 페제시키안 당선인과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도 페제시키안 당선인에게 축전을 보내 "귀하의 대통령 재임 기간이 건설적인 양자 협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이 서방의 경제제재 대상이라는 점과 관련해 "국제적인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양국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축전을 보냈다.

사우디 국영뉴스통신사 SPA 보도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페제시키안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양국과 두 나라 국민 사이의 관계가 발전하고 상호 이익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이슬람 종파 갈등 등으로 반복했던 사우디와 이란은 2016년 국교를 단절했다가 작년 3월 중국의 중재로 갈등을 접고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축하를 보냈다.

AFP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양국 관계 강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적었다. 인도는 이란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 남동부 차바하르항을 개발하기로 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우리 정부도 6일 이란 대선 결과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내고 "이란이 신정부 하에서 역내 안정에 건설적으로 기여하면서 번영과 발전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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