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연설을 마친 뒤 청중의 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서 가자지구 전쟁의 ‘완전한 승리’를 강조하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가 미 의회에서 연설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로 세계 각국 정상들 중 가장 많이 연단에 올랐으나,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 대선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워싱턴을 찾은 네타냐후 총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향해 “자랑스러운 아일랜드계 미국인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자)”라며 그간의 이스라엘 지원에 사의를 표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고마움을 전하는 등 미국의 초당적 지지를 얻어내는 데 주력했다.

그는 52분간 연설에서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52차례 박수를 받았으나, 민주당 의원 수십명은 연설을 ‘보이콧’했고 의회 밖에서는 5000여명의 시위대가 그를 ‘학살자’라고 비판하며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대를 향해 “이란에 이용된 멍청이”라고 비판하는 등 강경 일색 발언을 쏟아냈으나, 연설의 상당 부분이 근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었던 데다 전쟁을 어떻게 끝낼지에 대해선 계획을 제시하지 않아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진보 성향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네타냐후 총리가 그의 열광적인 공화당 청중으로부터 52번의 기립 박수를 받았을진 몰라도, 그의 수사는 국내에서 이 연설을 보고 있는 이스라엘 국민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52분간의 연설에서 이스라엘이 이 비극적 교착 상태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커녕 작은 실마리조차 없었다”고 비판했다.

보수 성향 예루살렘포스트는 네타냐후 총리가 양국 관계에 대해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면서도 “이스라엘이 향후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내놓은 가자지구 전쟁 관련 핵심 주장과 사실관계를 살펴봤다.

팩트체크 1. 가자지구에 ‘식량 부족’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는 이스라엘이 고의로 가자지구 주민들을 굶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스라엘은 4만대 이상의 구호 트럭이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총 50만t의 식량이며, 가자지구 전체 인구 한 명당 3000㎈ 이상 돌아가는 양이다. 가자지구에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식량을) 막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마스가 식량을 훔치고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 연설 중)

지난달 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유엔 학교에 마련된 난민촌에 영양실조에 걸린 한 아이가 엎드려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만에 ‘가자지구 전면 봉쇄’를 선언하고 물과 식량, 연료, 의약품 등 모든 자원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후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자 가자지구 내 구호트럭 반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해 왔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자지구에 반입된 구호 트럭은 총 2만8018대로, 네타냐후 총리가 밝힌 4만대와 차이가 있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지난 5월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이후 남부지역에 구호품 공급이 크게 줄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식량 반입을 막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유엔 등 국제기구와 국제구호단체들은 이스라엘군이 구호품 반입을 의도적으로 차단할 뿐만 아니라 구호트럭과 구호요원들을 공격하는 등 구호 활동을 방해해왔다고 지속적으로 밝혀 왔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지부장 샐리 아비 칼릴은 “이스라엘 당국은 국제적 지원 노력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한 고위급 외교관은 하마스가 국제사회가 보낸 구호품을 가로채고 있다는 이스라엘 측 주장에 대해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그런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가자지구에 식량이 충분하다는 네타냐후 총리의 말과 달리 전문가들은 식량 위기가 심각하다고 지적해 왔다. 지난달 유엔은 기아 감시 시스템인 통합식량안보단계(IPC) 보고서를 통해 가자 주민 중 절반 이상은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며, 5명 중 1명은 하루종일 한 끼도 먹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또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3개월 안에 가자지구 전역에서 인구의 96%가 기근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은 식량위기 심각성을 5단계로 분류하는데 기근은 이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다.

팩트체크 2. 이스라엘 ‘민간인 보호 노력’ 충분했나

“ICC 검사는 이스라엘이 고의로 민간인을 표적 삼았다고 비판한다. 도대체 무슨 말은 하는 건가. 이스라엘군은 수백만장의 전단지를 떨어뜨리고, 수백만개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수십만건의 전화를 걸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 이스라엘에 모든 민간인 사망은 비극이지만, 하마스에는 전략이다.” (네타냐후 총리 연설 중)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ICC를 맹비난하며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충분한 민간인 보호 노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또 “이스라엘군은 역사상 어떤 군대보다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많은 예방 조치를 시행했고, 이는 국제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2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최대도시 칸유니스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식수를 구하기 위해 파괴된 거리를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는 3만9145명이며, 부상자는 9만257명으로 집계됐다. 가자지구 보건부의 사상자 집계는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으나 유엔 등 국제사회는 사상자의 3분의 2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대로 이스라엘군은 특정 지역을 공격하기 전 해당 지역에 전단을 살포하거나 주민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이를 통지하는 사전 대피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조치가 충분한가를 두고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공격처럼 대피 명령 직후 공습을 단행해 실제로 대피할 시간을 주지 않거나, 이스라엘군이 안전을 보장한 대피 경로나 ‘인도주의 구역’을 공격하는 일도 빈번했다.

주민들의 안전한 피란처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시 전체를 상대로 대피령을 내리는 것이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전쟁 발발 이후 9개월간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며 비좁은 가자지구 안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토끼몰이식 대피령·소개령을 반복해 왔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지구 총면적의 80%가 소개령 대상이 됐으며, 반복적인 군사작전과 대피 명령으로 전체 인구의 90%가 피란을 떠났고 이 가운데 일부는 많게는 10차례 이상 피란길에 올랐다.

이스라엘군이 하마스를 제거하겠다며 피란민이 밀집한 난민촌이나 병원, 학교를 공격하는 일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달 이스라엘군이 자국 인질 4명을 구출하기 위해 인구 밀도가 높은 난민촌에 공습을 가해 이곳에서 생활하던 피란민 274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밖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백기를 흔들거나 비무장 상태인 피란민을 상대로 총격을 가해 사살하는 영상이 여러 차례 공개되며 국제사회의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가족의 시신을 안고 울고 있다. AP연합뉴스

팩트체크 3. 라파 민간인 사망자는 20명?

“가자지구에서 비전투원 사상자가 가장 적은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라파다.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는가. 이스라엘군이 라파에 진군하면 수천명, 어쩌면 수만명의 민간인이 죽을 거라고 했다. 나는 지난주 라파에 갔고, 그곳 사령관에게서 테러리스트 1203명을 사살했다는 말을 들었다. 민간인 사망자를 묻자 그는 ‘총리님, 사실상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폭탄 파편이 하마스 무기고에 떨어져 의도치 않게 20명이 사망한 한 사건을 제외하곤 사실상 없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은가?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위험에서 구출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 연설 중)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20명뿐이라는 네타냐후 총리 주장에 미 CNN은 “충분히 검증 가능한 거짓말”이라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언급한 ‘한 사건’은 지난 5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라파 인근 난민촌에서 화재가 발생, 최소 45명이 죽고 200명 이상이 다친 사건을 말한다. 사상자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지난 6월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인질 구출 작전 당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다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에 위치한 알아크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CNN은 이스라엘군의 라파 공습 당시 영상과 민간인 사상자를 보고한 당국자와 구호단체 관계자 등의 인터뷰를 인용해 이곳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20명뿐이라는 네타냐후 총리 주장은 “거짓”이라고 짚었다.

이스라엘군의 라파 지상전 당시 숨진 민간인의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당 공습이 있었던 주에도 이스라엘군의 라파 일대 난민촌 공습으로 최소 29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팩트체크 4. 의사당 밖 반이스라엘 시위, 이란이 돈줄 댔나?

“이란은 지금 이 건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이스라엘 시위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 이 시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동성애자(게이)를 크레인에 매달고,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살해하는 테헤란(이란)의 폭군이 여러분을 칭찬하고, 홍보하고, 자금을 지원할 때 여러분은 공식적으로 이란의 ‘유용한 멍청이’가 된 것이다. (…) 정말 놀랍다. 시위대 중 일부는 ‘가자를 위한 게이(Gays for Gaza)’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데, 이는 ‘KFC를 위한 닭’이라는 팻말을 든 것과 마찬가지다.” (네타냐후 총리 연설 중)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 의회를 상대로 연설한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 밖에서 시위대가 전쟁 중단과 미국의 무기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의사당 건물 밖에 모인 시위대가 이란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며 이들이 “이란의 유용한 멍청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으나, 자금 지원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주장은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 국장이 최근 성명을 내고 이란이 미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해온 반이스라엘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고 밝힌 것을 반복한 것이다. 헤인스 국장은 미 대선을 앞두고 이란과 연결된 단체들이 온라인상에서 시위를 선동하고 일부 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스스로의 의지대로 시위에 참여해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미국인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도 인정했다.

이날 의사당 밖에는 약 5000명이 모여 이스라엘의 ‘가자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비판했다. 시위대 중에는 인질 석방 협상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인들과 전쟁에 반대하는 유대인 단체 역시 포함돼 있었다. 이날 의사당을 찾아 항의한 인질 가족 7명도 의회 경찰을 제지를 받고 연설장에서 강제로 쫓겨난 것으로 전해졌다. 하레츠는 “네타냐후 총리는 늘 그렇듯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질책하며 선동하고 분열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들을 하마스와 이란의 지지자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 50여명도 항의의 의미로 연설을 보이콧했고,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네타냐후 총리 연설 중 ‘제노사이드 유죄’ 등 문구가 쓰인 손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미시간주) 라시드 틀라이브가 2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의사당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 중 ‘대량학살 유죄’라고 쓰인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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