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이미지. AP연합뉴스

인공지능(AI) 필수재로 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중국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미국의 기술 봉쇄를 뚫고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이 HBM 자립에 성공한다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장악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29일 중국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모회사 루이지반도체는 상하이시 정부로부터 푸둥신구 일대 토지를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푸둥신구는 바이오·AI·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가 집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산업단지다.

루이지반도체는 이곳에 171억위안(약 3조2000억원)을 들여 첨단 메모리 패키징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다음달 착공해 2026년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CXMT가 생산한 D램을 HBM으로 패키징(포장)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패키징 목표 물량은 한 달에 3만개 수준이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도 현지 파운드리 업체 ‘우한신신’과 손잡고 HBM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패키징 업체 통푸마이크로와 장쑤창장일렉트로닉스(JCET)가 화웨이의 HBM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HBM은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인 차세대 메모리다. 미국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에 HBM을 이어 붙여 만든 ‘AI 가속기’는 대규모언어모델(LLM) 같은 AI 모델 학습에 폭넓게 사용된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이 그 뒤를 잇는다.

중국의 HBM 개발은 AI 반도체 ‘자국산화’ 시도의 일환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철저히 막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화웨이는 자체 AI 칩 ‘어센드910B’를 중국 시장에 내놓았다. 여기에 자체 HBM 공급망까지 갖추면 AI칩(연산)-HBM(저장·전송)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HBM에서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약 10년에 달하는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 중국 메모리 기업들의 목표는 2세대 ‘HBM2’로, 한국 기업들이 이미 2016년 상용화한 기술이다. 따라서 중국산 HBM이 양산된다고 하더라도 내수용으로 활용될 뿐 SK하이닉스·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쟁력을 훼손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대신 HBM을 비롯한 중국의 ‘메모리 자립’이 현실화되면 한국 기업들의 매출 타격은 불가피하다. 중국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최대 시장이다. 그러나 화웨이가 최근 출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처음으로 중국산 D램·낸드플래시를 장착하는 등 한국산 의존도는 갈수록 낮아지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중국 업계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업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국무원은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3기 펀드’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펀드 규모는 3400억위안(약 65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 기금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는 물론 HBM과 AI 반도체에도 집중 투자될 예정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미 D램을 만들어오던 중국 기업들로선 D램을 쌓아 만드는 HBM의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다고는 볼 수 없다”며 “얼마나 투자와 집중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잠재적인 위협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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