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인권법 제정 60주년을 맞아 텍사스 주 오스틴의 린든 B. 존슨 대통령 도서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연방대법관 임기를 18년으로 제한하는 사법 개혁안을 내놓은 배경에는 연방대법관 종신제가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오랜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선출직도 아닌 대법관의 임기를 무제한 보장하다 보니 민주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진 데다, 사법부를 정쟁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부작용까지 심해졌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은 연방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 9명의 임기를 따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법을 지키는 한 계속 재 임할 수 있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탄핵당하지 않는 한 종신직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연방대법원이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자리매김하고, 사법부 독립을 뒷받침하는 데 기여하는 제도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여러 폐해가 드러나자 1990년대 후반쯤 헌법학자와 언론을 중심으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늙어가는 연방대법원, 정쟁의 중심에 서다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들. | AFP연합뉴스

대법원의 ‘고인 물’ 심화 현상이 대표적인 문제로 꼽혔다. 기대수명이 늘자 연방대법관 임기가 갈수록 길어졌다. 1970년대 말 15년이던 대법관 평균 재임 기간은 최근 26년으로 늘었다. 당장 20~30년 전 임명된 대법관이 빠르게 변하는 사회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무엇보다 연방대법관들이 더 오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자,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어떤 민주적 견제 장치도 없다는 우려가 더 커졌다.

선거로 선출된 공직자는 유권자에게 직접 정치적 책임을 지지만 연방대법관의 경우 한 번 임명되고 나면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헌법에 마련돼있는 탄핵 제도는 한 번도 제대로 기능한 적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미국 사회에 연방대법원이 미치는 영향이 특히 큰 만큼 책임의 무게 역시 무거워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종신제는 연방대법관 자리를 정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대법관 교체 시점을 예상할 수 없다 보니 ‘어떤 성향의 대법관이 임명되느냐’가 어느 정권 때 공석이 나느냐에 달리게 됐다. 공화당은 진보 성향의 대법관 후보를, 민주당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 후보를 어떻게든 낙마시키려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졌다.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는 적합한 후보를 가려내는 대신 공방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가 바꿔놓은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의 독주

오랜 논의가 이어졌지만 연방대법관 종신제 개혁에 불이 붙은 건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브렛 캐버노,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등 무려 세 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을 지명할 기회를 얻었다. 이에 따라 보수 6명, 진보 3명의 보수 ‘절대 우위’ 구조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 진영에 남기고 간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보수화된 대법원은 2022년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무효로 하는 등 보수 쪽으로 기우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대법관 종신제가 특정 정당의 ‘알박기’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같은 해 사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일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1·6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선동 등 혐의에 대해 면책특권을 일부 인정하자 민주당 진영에서도 종신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2025년 6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여성의 임신중단권리를 옹호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18년 교차임기제’는 기존 종신제의 폐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 중 가장 설득력 있는 방안으로 여겨져 왔다. 대통령이 2년에 한 번씩 18년 임기의 대법관을 1명씩 임명하도록 하면 공정성과 균형성을 꾀할 수 있다는 이유다.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동시에 대법원 구성을 더 젊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이번 개혁안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대법관 임기제는 개헌이 필요한데 공화당이 하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 통과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대선을 100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꾀하려는 ‘선거용 제스처’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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