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 폐막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발언하고 있다. CC-TV 캡처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이란 링컨 대통령의 말은 흔히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요체로 평가된다. 그럼 이 셋 중 어느 것이 가장 핵심적인 요체일까.

서구 정치에서 핵심은 ‘국민에 의한’일 것이다. 국민이 주체가 되어 지도자를 뽑고 주권자인 국민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사실 역사상 최악의 악당 중 하나로 꼽히는 히틀러도 국민투표로 권력을 잡았다.

예전 공산주의처럼 서구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의 대안을 구축하겠다는 중국은 어떤가. 왕샤오광(王紹光) 홍콩중문대 교수는 서구 민주주의를 형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의형 민주(representative democracy)’라고 칭했고, 중국식 민주는 인민 군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중시하는 ‘대표형 민주(representational democracy)’라고 했다. 서구와 달리 중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한’을 핵심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선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중국 논리다.

양광빈(楊光斌) 런민대 교수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의 소위 민주집중제가 ‘세계 정치 선수권 대회’를 벌이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1억 이상 인구를 보유한 12개국 중 9개국이 개발도상국인데 이중 중국만이 민주집중제로 발전을 이뤘고 나머지는 대의민주제”라며 “이런 중국의 우월함은 정책 결정자들이 사회구조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의지를 정책화하고 과감히 실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거로 뽑힌 지도자보다 능력 있는 지도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 정치를 비난해 왔다. 가장 큰 장이 미 대선이다. 대선의 해인 올해도 변함이 없다. 관영 신화통신 산하 주간지 랴오왕은 지난달 27일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의 대결은 분열된 ‘두 미국’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신화통신 산하 매체인 참고소식(參考消息)은 16일 ‘서방 정치체제 실패의 근본 원인 분석’이란 기사에서 “서방 사회 엘리트들은 내부 투쟁에 몰두하고 있어 사회 붕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21일 바이든이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하고 해리스가 사실상 민주당 후보로 나서게 되자 중국 매체 자커(ZAKER)는 “미국 대선에서 결국 겨루는 것은 지명도이고, 누가 나오는지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선거유세를 재개했다. 지난 13일 발생한 총격 사건 이후 첫 공개 유세다. [AFP=연합뉴스]

이런 저주 섞인 비판은 시진핑 체제 들어 심해졌다. 대부분 중국을 대표하는 관영 매체들에 의해서다. 트럼프-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2016년 미 대선 때 인민일보는 ‘실망, 좌절, 신뢰 상실로 얼룩진 선거’라고 평했고, 2020년 바이든-트럼프 때는 신화통신이 ‘미국 역사상 가장 분열된 선거’라고 했다. 6월 27일 벌어진 바이든과 트럼프의 1차 토론 때 신화통신은 “미국 대선 토론을 보느니 축구 경기를 보겠다”고 했다. 중국 SNS 웨이보에선 “관짝에 들어가야 하는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 “서구 정치가 종말을 맞았다”는 글이 당일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시진핑은 중국인 입장에서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는 미 대선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바이든-트럼프의 토론회 날 시진핑은 베이징에서 열린 ‘평화 공존 5원칙 발표 70주년 기념대회’ 연설에서 “중국의 힘이 한 뼘 커질수록, 세계 평화의 희망은 한 뼘 더 커진다”고 역설했다.

중국의 미국 정치, 서구 정치 때리기는 중국이 소위 G2로 부상하면서 시작됐다. 1980년대에 본격화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미국의 정치와 선거 제도에 대해 중립적 또는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현재 중국 권력서열 4위인 왕후닝(王滬寧)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푸단(復旦)대 교수 시절이던 1988년 방문교수 자격으로 미국에서 본 대선 토론에 대해 “이 절차는 매우 흥미롭고 개방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중국 조야에선 ‘좋든 싫든 우리도 결국 선거제를 도입하는 등 서구식 민주주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지방의 소규모 단위에서 치러진 선거들이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며 선거 제도가 점차 상급 단위서도 채택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중국이 ‘세계의 채권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부터 중국의 권위주의는 더욱 강화되어갔고 2013년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이후론 미국 등 서구와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들어갔다. 미국이 현재의 국제정세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로 규정하면서 대결 구도는 고착화의 길로 들어섰다.

올해 중국의 대선 때리기는 민주·공화 양당 후보 모두 중국 입장에서 비관적이란 점도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해리스는 공공연히 바이든 정부의 대(對)중 봉쇄·억제 정책을 ‘일관되게’ 이어갈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트럼프는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 두려운 점이다. 트럼프 집권기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켜 중국 경제를 휘청이게 만든 것처럼 트럼프는 지지자들이 환호할 일이면 뭐든 할 것이다.

외부로부터 시련이 예상될수록 내부 결속을 다져야 기존 세력을 유지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의 미 대선 때리기는 그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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