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처음 대면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이에는 100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ABC주최로 열린 토론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당신은 불명예이고 미국인들은 더 나은 대통령을 원한다”(해리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부통령이자 최악의 협상가”(트럼프)라며 날카롭게 공격했다. 미 대선의 처음이자 마지막 토론이 유력한 이날 자리는 양당 후보의 건설적인 정책 논쟁보다는 기싸움으로 점철됐다.

AP토론

밤 9시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 마련된 토론장에 들어선 둘은 짧은 악수를 나눴다. 이어 첫 질문인 경제·물가문제부터 공방을 벌였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자 감세, 관세 공약 등이 중산층의 부담을 키우고 재정적자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이 “최악의 인플레이션, 끔찍한 경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 문제 답변 도중 돌연 “그와 바이든이 미국에 들여보낸 이들이 우리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면서 이민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임신중지권 이슈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는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폐기 이후 “미국 20개주에서 ‘트럼프 임신중지 금지법’(Trump abortion ban)이 시행 중이라”며 강간 등 범죄피해자의 임신중지까지 금지하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 입장은 각 주가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했지만, 전국적인 임신중지 금지법안의 의회 통과 시 거부권을 행사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했다.

두 후보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등 외교 문제, 2021년 1월6일 의회 폭동,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리스크 등 대부분의 사안에서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는 독재자들을 존경한다. 그는 김정은과 러브레터를 주고받았다”고 말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인용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나를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발언 시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소 길었지만 전체적인 토론 분위기는 해리스 부통령이 주도했다. 검사 이력으로 단련된 직설적인 화법과 집요한 추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는 게 민주당 진영의 평가다. “해리스가 던진 미끼를 트럼프가 계속 물었”(CNN) 등의 촌평이 나왔다.

“오늘 여러분은 많은 낡고 오래된 플레이북, 거짓말, 불평, 네임콜링(별명 부르기)을 보게 될 것”이라며 선제적 기선 제압에 나선 해리스 부통령은 거듭 “이제 페이지를 넘기자.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계속해서 바이든 대통령과 연관지어 공격하자 “당신이 경쟁하는 상대는 바이든이 아니라 나”라며 직접적으로 바이든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반면 경제·이민 등 최대 쟁점에서 ‘해리스 책임론’을 제기하려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대의 공세에 평정심을 잃은 듯한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인들은 똑같은 낡은 플레이북에 지쳤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 도중 사람들이 떠나버린다고 하자 얼굴을 붉히며 횡설수설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선방했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토론이 실제 경합주 유권자나 부동층 표심에 미칠 영향은 향후 여론조사 등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CNN은 조사기관 SSRS의 토론 직후 등록유권자 대상으로 ‘누가 더 토론을 잘했는지’를 물은 결과 해리스 부통령은 63%로 트럼프 전 대통령(37%)을 제쳤다. 다만 두 후보 모두 구체적인 국정 비전이나 정책 구상을 제시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쪽은 모두 자신이 ‘승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토론 뒤 기자들이 모여있는 스핀룸에 직접 들어서 “내가 했던 역대 토론 중 최고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ABC 측 토론 진행자들이 해리스 부통령에 유리했다고 시사하며 “3대1의 싸움이었다”고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지지자들의 토론 시청 파티에 참석해 “우리는 여전히 언더독(약자)이고, 선거는 매우 접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에서 토론을 지켜본 바이든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해리스는 이 나라를 앞으로 이끌어가기에 최고의 선택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우리는 뒤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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