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 전 중국 외교부장. 27일 전인대 대표 자격 사퇴가 처리됐다. 지난해 외교부장과 국무위원 직위에서 면직된 친강은 20기 중앙위원 자격만 남게 됐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중국 외교 부장에서 물러난 후 중국 정계에서 사라졌던 친강(秦剛)의 근황이 최근 국제적인 갑론을박 대상이 됐다.

시작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였다. WP는 8일 두 명의 전직 미국 관리를 인용해 "한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가까운 최고위직이었던 친강의 직위는 매우 낮아졌다"면서 친강이 중국 외교부 산하 세계지식출판사의 낮은 직급 자리에 이름이 올라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 25일 자로 외교부장에서 물러난 후 1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던 그에 관한 뉴스였다. 또 그의 강등은 봄에 이뤄졌으며, 위상이 추락하긴 했지만 그 정도 수준에서 처벌을 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곧바로 각국 매체들의 문의가 중국 외교부에 쇄도했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보도 내용을 확인해달라는 외국 기자에게 "나는 당신이 언급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라고 답했다. 세계지식출판사 직원들도 친강의 자사 근무 여부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고 WP는 전했다.

이어 친강에 관한 뉴스가 오보라는 중국 매체들의 기사가 흘러나왔다. 홍콩 명보(明報)는 11일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해 세계지식출판사에 ‘친강’이라는 이름의 직원이 있으나, 이름만 같을 뿐 전 외교부장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중국 매체 펑파이(澎湃)의 편집장도 SNS를 통해 WP 기사에 대해 "수준이 높지 않은 미숙한 보도"라고 지적했다.

친강의 근황이 이렇게 세계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가 보여줬던 대단했던 존재감 때문이다. 마치 태양을 향해 드높이 날아오르다가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그는 화려하게 승승장구하다 급전직하 추락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1966년생인 그는 국제관계대학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외교부 산하 직속사업단위인 베이징외교인원복무국(北京外交人員服務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2005~2010년 외교부 신문사 부사장과 대변인을 거쳐 2015년 외교부 의전부서인 예빈사(禮賓司) 사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시진핑 주석의 대외활동을 챙기면서 그의 눈에 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2015년 시 주석의 벨라루스 방문을 앞두곤 새벽에 상대국 의전 책임자에게 전화해 시 주석이 올라가야 할 계단이 총 몇 개인지 세어서 알려 달라고 요청하며 완벽하게 동선을 짰다고 한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땐 그를 황제급으로 예우하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후 외교부 부부장과 주미 대사를 거쳐 2022년 12월 외교부장에 올랐다. 2023년 3월부턴 한 직급 위인 외교 담당 국무위원까지 겸직했다. 이때 한국, 일본과 서방 국가들을 맹비난하는 전랑(戰狼·늑대 전사)외교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다 그해 6월 25일을 끝으로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다. 외교부의 공식 해명은 ‘건강상 이유’였지만 베이징 외교가에선 그의 숙청설이 확산했다. 마침내 7월 25일 외교부는 친강을 해임하고 전임자인 왕이를 다시 부장에 임명했다. 반년이 안 되는 207일만 재임하면서 친강은 1950년대 이후 최단명 외교부장으로 기록됐다. 10월에는 국무위원직도 박탈됐다. 올해 2월에는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대표 자격을 공식 상실했고 7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 직후엔 당 중앙위원회에서 면직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다만 그를 '동지'라고 언급해 공산당적은 유지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친강 축출 배경에 대해 가장 유력한 설은 그가 주미 대사 시절 홍콩 봉황TV 유명 진행자 푸샤오톈과의 사이에서 혼외자식을 낳았다는 불륜설이다. 푸샤오톈은 베이징대학에서 경제학 학사, 케임브리지대 처칠 칼리지에서 철학 석사를 딴 재원이다. 그는 2022년 11월 미국에서 아들을 출산했는데 이 아이가 친강과의 혼외자라는 것이다. 푸샤오톈도 친강처럼 1년 이상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친강 불륜설 홍콩 피닉스TV 기자 사진 캡처

미국과의 내통설도 있다. 지난해 6월 중국 해커들이 미국 국무부 메일서버를 해킹했는데 여기서 친강이 개인적 친분이 있는 미국 외교관과 정보를 주고받은 것이 발견돼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WP는 시진핑의 충성파인 친강의 초고속 승진이 동료들의 질시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또 친강을 상대한 미국의 전현직 관리들은 그가 경험이 더 많은 동료에 비해 외교적 수완이 부족하고 '늑대 전사' 모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친강의 부침은 아무리 잘나가는 공직자나 기업인, 연예인도 공산당 눈 밖에 나거나 부패 혐의 등에 연루되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친강을 처벌하지 않고도 그의 행방을 철저히 감추고 낙마 경위도 비밀에 부침으로써 ‘어떤 공직자도 당의 손아귀에 있다’는 선전 효과를 거둔 셈이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공산당이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을 친강 사례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