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ABC 방송이 주최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의 대선 토론에서 발언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안보와 경제는 소프트파워와 함께 한 국가의 국력을 결정하는 3대 핵심 요소다. 소프트파워 역량은 특정 정권에 의해 큰 폭으로 성장하거나 쇠락하지 않는다. 반면 안보와 경제는 정권의 정책 방향에 의해 큰 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요소는 대선처럼 차기 정권을 결정짓는 이벤트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다.

미국 대선이 안개 속에서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중국에 대한 태도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對)중 경제와 안보 정책 방향이 묘하게 닮아있다는 점이다. 경제 분야에선 중국을 때려서 유권자의 지지를 얻고 안보에선 중국과의 대립을 잠정적으로 회피하거나 소극적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먼저 경제 분야. 트럼프는 23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농업인 행사에서 백악관 재입성 시 "첫 번째 통화를 시진핑 주석과 할 것이며, '당신이 한 합의를 존중하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이 2020년 1월 체결한 1단계 무역 합의를 이행하라는 요구다. 당시 중국은 500억 달러의 미국산 농산물을 포함, 총 2000억 달러(약 266조7000억 원)의 상품, 에너지, 서비스 등을 수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미·중 갈등 심화 등으로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고 트럼프는 2021년 1월 퇴임했다.

대선 최대 경합 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는 미시간 등과 함께 쇠락한 공업지대인 이른바 ‘러스트 벨트’에 속한다. 트럼프는 같은 날 펜실베이니아주 인디애나 유세에선 “중국, 멕시코 등이 미 자동차 노동자에게 해를 끼치는 차를 미국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관세를 통한 중국산 자동차 퇴출을 예고했다.

트럼프의 이날 발언들을 두고 재집권 시 중국과의 ‘2차 무역전쟁’을 구체화하는 수순이라는 해석들이 나온다. 그는 최근 “재집권하면 중국의 무역 최혜국 대우를 박탈하고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했다. 2018년 미국이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2020년 1월 합의로 일단락됐지만 ‘난타전’이 끝났을 뿐 미국의 중국 압박 수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합 지역을 뜻하는 ‘스윙 스테이트’ 표가 절실한 해리스도 중국 때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10일 트럼프와의 TV토론에서 “트럼프가 (집권 중) 무역전쟁을 초래해 미국을 중국에 팔아넘겼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으로 미 수입 물가가 상승했고 서민들이 고통받았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3일 미 자동차산업의 메카인 미시간주 유권자를 겨냥해 2027년부터 중국산 자동차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겠다고 밝혀 해리스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해리스는 8월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선 “인공지능(AI), 우주 분야의 21세기 경쟁에서 중국이 아닌 미국이 승리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후보의 중국 때리기는 현재 미국인의 강한 반(反)중 성향에 편승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5월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에서 미국 성인의 81%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같은 문항의 조사가 시작된 이후 올해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24년 5월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81%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면 경제에 비해 대중의 민감도가 떨어지는 안보 분야에선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9일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 새뮤얼 퍼파로가 중국 인민해방군 남부전구 사령원 우야난과 화상 통화를 했다. 미·중의 야전 사령관급 통화는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강행을 계기로 중국이 일방적으로 단절을 선언한 이후 처음이다.

4일 뒤인 13일 필리핀의 해경 함정 테레사 마구바누아호가 분쟁 해역인 사비나 암초(중국명 셴빈자오·필리핀명 에스코다 암초)에서 철수했다. 중국의 불법적인 인공섬 매립을 감시한다는 목적으로 이 해역에 파견된 지 약 5개월 만의 귀환이다. 필리핀 당국은 함정 수리와 선원들에게 휴가와 치료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미·중 양국의 사전 합의에 의한 것이란 분석들이 나왔다.

미국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맹국인 필리핀에 대한 안보 공약이 확고하다고 약속했다. 퍼파로 사령관은 지난달 미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보급선을 직접 호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개입 의지까지 피력했다. 앞서 7월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필리핀 해경 함정이 공격받을 경우 상호 방위 조약을 발동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군사적 위기를 피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를 거론하면서 곧 3차 대전이 일어날 것처럼 해리스를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판국에서 민주당 정부는 중국과의 군사적 갈등을 일단 잠재우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있다. 미·중은 대선 1년 전인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한 이후 일련의 안보 분야 실무 회담을 이어왔다.

트럼프는 지난 행정부에서 소위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을 폈다. 미국이 역외 지역에 직접 개입하는 대신 해당 지역 동맹국들에 안보 책임을 전가 또는 분산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줄곧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세계의 경찰’ 역할에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무임승차’론으로 한국과 일본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봉쇄를 떠넘기는 기조를 취했다.

바이든의 적극적 중국 포위 전략으로 고민하던 중국 입장에선 트럼프 당선을 환영할 만한 대목이다. 푸틴의 리더십이 가장 부럽다는 등 트럼프의 노골적 친러 행보도 중국에 나쁘지 않다. 트럼프는 근래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비민주적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보이고 있어 해리스에 비해 시진핑, 푸틴과 코드가 맞다.

요약하면 두 후보는 여러 분야에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대 중국 정책은 실제 내용상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와 달리 해리스가 당선되면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처럼 동맹국들과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선 국면이라는 현재의 특수한 상황이 이를 강조하지 않게 하고 있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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