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시간) 시에라리온 출신의 여성들이 레바논 베이루트 외곽 하즈미에의 임시 피란민 보호소에 머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향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레바논에 있는 일부 이주 노동자들이 현지의 열악한 노동 제도로 인해 피란마저 못 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2일(현지시간) 레바논 공중보건부는 전날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으로 26명이 사망하고, 14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스라엘군이 지난해 10월8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충돌을 시작한 이래 누적 사망자는 2255명, 부상자는 1만524명으로 늘어났다.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외신들은 레바논 현지 이주 노동자들이 레바논 밖으로 피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고용주에게 휴대전화와 여권을 압수당한 시에라리온 출신의 파지마 카마라(28)의 사례를 지난 5일 보도했다. 카마라는 3년 전 헤즈볼라의 거점인 레바논 동부 바알베크로 이주해 가사도우미로 일해왔다. 그러다가 지난달 이스라엘 전투기가 마을에 공습을 가했고, 고용주 가족은 카마라를 두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떠났다.

고용주는 자신이 피란 가 있는 동안 카마라에게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강요했다. 머물 곳이 없었던 카마라는 이주민 보호소로 향했지만 입소를 거부당했고, 현재 노숙 생활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고용주가 피란 직전 가사도우미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집 안에 가둬둔 경우도 있었다. 지난 8개월간 레바논 남부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해온 한 케냐인은 “고용주들이 나를 집에 가두고 며칠간 피란길에 나섰다”면서 “집으로 되돌아와서 임금을 안 주고 나를 내쫓았다”고 BBC방송에 말했다.

CNN 등 외신은 레바논의 이주 노동자들이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카팔라 고용제로 인해 피란 가기 더욱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카팔라 제도는 고용주가 이주 노동자의 근로 비자 발급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 제도를 빌미 삼아 일부 고용주는 이주 노동자의 여권을 압수해 보관하거나,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

조 로리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대변인은 “카팔라 시스템 하에 (노동자를)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부족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많은 노동자는 착취 환경에 갇히고 있다”며 “이주민에게 집 안의 재산을 돌보라며 그들을 집에 가둔 레바논 피란민도 있다”고 BBC에 말했다.

여권을 빼앗기거나, 피란 갈 자금이 없는 이주 노동자들은 레바논의 이주민 보호소로 몰려들고 있다. IOM는 레바논 정부가 운영하는 전국 약 900개 보호소 대부분이 가득 찼으며,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피란민이 많아졌다고 지난 4일 밝혔다.

마티유 루시아노 IOM 레바논 사무소장은 기자회견에서 “레바논 고용주가 이주 가사도우미를 거리나 집에 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미등록 이주민일 경우) 체포되거나 추방될까 봐 인도적 지원을 꺼리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IOM는 레바논에 17만 명의 이주 노동자가 사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중 다수는 케냐, 에티오피아, 수단,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국가 출신이다. 유엔여성기구는 2021년 레바논 전체 이주 노동자의76%, 가사도우미의 99%가 여성인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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