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 주중국대사는 11.4(금) Michael Hart 재중미국상회 회장과의 오찬 면담을 했으며, 최근 중국 내 외국인 투자기업 동향 및 중국 경제 전망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갑질 신고’를 당한 정재호 주중국 대사가 대외보안 유지가 필요한 활동에 쓰는 예산(외교네트워크 구축비)을 사용해 외국 인사와 만난 뒤 사진과 함께 대략적인 내용을 대사관 누리집에 공개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주중 대사관의 보안의식과 예산 사용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 것으로 보인다.

7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 협조를 받아 주중 대사관과 외교부를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정 대사는 2022년 8월 취임 이후 지난해 6월까지 총 10개월 동안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를 사용해 20차례 활동을 했고, 이 가운데 최소 3차례의 활동을 주중 대사관 누리집의 ‘공관장 활동’ 난에 공개했다.

정 대사는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를 사용해 2022년 11월4일 마이클 하트 재중 미국상공회의소 회장과 오찬을 했고, 지난해 2월1일에는 런리보 중국 궈관싱크탱크 총재 외 2명과 만찬을, 4월6일에는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과 만찬을 했다. 대사관은 활동 2~3일 뒤 대사관 누리집에 정 대사가 이들 인사와 찍은 사진과 함께 “대사관저에서 만찬을 가지며 면담을 진행했다”, “외국인 투자 동향 및 중국 경제 전망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만난 상대와 장소, 대략적인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는 재외공관의 활동 중 보안 유지가 필요한 사업에 쓰는 예산으로, 취지상 활동 내용을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 일반 활동의 경우 ‘재외공관 주요 행사비’가 따로 책정돼 있어, 이를 쓰면 된다. 대사관과 외교부는 해당 활동을 누리집에 공개한 게 적절한지 묻는 한겨레 질문에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로 집행한 행사의 개최 사실 자체를 대외 공개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보안 위규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외교부가 해당 예산의 비밀성을 강조하는 것과 배치된다. 외교부는 국회가 관련 자료를 요구해도 구체적인 자료를 주지 않고, 의원 보좌진이 직접 외교부에 와서 대략적인 내용만 열람하도록 하고 있다. 주중 대사관 내부에서도 일종의 비밀 활동에 쓰는 예산인데, 이를 누리집에 공개하는 것은 예산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으로는, 누리집에 대략적인 내용을 공개할 정도의 활동에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를 쓰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일반 예산을 쓰면 되는 활동에 취지가 맞지 않는 예산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동기 동창인 정 대사는 대사관 직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가 지난달 초 외교부에 갑질 신고를 당했고, 현재 외교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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