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5일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선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 [사진=AFP 연합뉴스]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오는 11월 5일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별칭에 걸맞을 정도로, 미국 대통령의 선거 결과는 전 지구적 영향력을 가진다. 당연히 민주당 해리스와 공화당 트럼프 중 누가 될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거 판세가 초박빙이라 승자 예측은 어렵기만 하다. 이에 못지않게 어려운 게 또 있다. 바로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이다. 간접선거, 승자독식, 부통령 러닝메이트 등. 역시 대선을 치르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미국 대선 과정을 이해하면 미국 역사와 정치가 보인다. 판세를 예측하는 나름의 안목도 갖출 수 있다. 모두 7차례에 걸쳐 미국 대선 과정을 파악해본다. <편집자 주>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역시 간접선거제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선진국. 이런 미국 유권자들이 뭐가 모자라서 남의 손을 한 번 더 거치는 것일까.

미국은 4년마다 11월 첫째 월요일 그다음에 오는 첫째 화요일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 올해는 11월 5일이다. 그런데 이날 유권자들은 직접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을 뽑는다. 이렇게 선출된 선거인단이 12월 두 번째 수요일 그다음에 오는 첫 번째 월요일에 주별로 모여 대통령을 뽑는다. 올해는 12월 16일이다. 그리고 이 투표는 내년 1월 6일 의회에서 공식 개표돼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확정된다.

그럼 왜 이토록 복잡한 절차를 뒀을까. 대략 4가지 이유가 꼽힌다. 먼저 미국 건국 당시 역사적 배경. 미국은 영국의 오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다. 따라서 미국 건국 아버지들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민주적 선거로 뽑힌 국민의 대표가 통치하는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 대통령이라고 이름을 붙인 국민 수호자를 누가 어떻게 뽑느냐를 놓고선 의견이 갈렸다. 미국 헌법을 만든 제헌의회는 1787년 네 달간의 지루한 공방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연방의회도, 주의회도 아닌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자는데 일단 합의했다. 

문제는 당시 미국 연방을 구성한 13개 주 유권자 숫자에 큰 편차가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과 달리 유권자는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백인, 그것도 남성으로만 국한했다. 참고로 흑인에겐 남북전쟁 후인 1870년, 여성에겐 그보다 한참 뒤늦은 1920년에야 투표권이 주어졌다. 어쨌든 당시 산업이 발달한 북부주는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이 많았다, 반면 대규모 농장 경제에 의존했던 남부주는 상당수 인구가 흑인 노예들이었다. 당연히 남부주는 유권자 수에서 북부주에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남부주는 흑인 노예들 몫의 투표권을 강력히 주장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타협이 이뤄졌다. 흑인 노예 한 명을 백인 유권자 5분의 3으로 계산키로 한 것. 그런데 정작 흑인은 투표권도 없는 데다 사람을 소수점으로도 나눌 수도 없다. 자연스레 정치적 셈법에 따라 주에 할당한 선거인단 제도라는 중간 과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 유권자들의 지적 수준과 사회적 여건이다. 사실 그때만 해도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국민이 직접 통치자를 뽑는 선거개념이 아예 없었다. 특히 공교육 제도가 아예 없었던지라 다수 유권자는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다. 이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으면 정치적 선동에 쉽게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세 번째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점이 지적된다. 서로 왕래도 어렵고 정보 유통이 쉽지 않았으니 선거와 후보에 대한 정보도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기보다 정치 과정을 더 잘 아는 선거인단이 민심을 한 차례 걸러 대통령을 선출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마지막으로 13개 주가 모인 연방국가라는 점이 꼽힌다. 선거인단 방식을 택하면 인구수가 적은 주도 대통령 후보들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탓에 소수주로선 나름 독립성과 영향력을 지킬 수 있었다. 

건국 땐 그렇다 쳐도 왜 계속해서 오늘까지 간접선거 제도를 유지하고 있을까. 사실 그동안 바꾸려는 노력이 없진 않았다. 남북전쟁 후 흑인들의 투표권이 생기자 일반 국민의 직접 투표(popular vote)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부주는 ‘두둑한’ 할당을 받은 선거인단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흑인들이 온전한 1인으로 인정됨에 따라 할당된 선거인단이 더 늘어나게 됐다. 남부주를 장악한 백인 정치인들은 흑인의 투표권 행사를 다양한 방법으로 막아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었다. 이런 기득권을 포기할 리 만무했다. 

다시 세월이 흘러 1969년 선거인단 폐지를 위한 개헌안이 의회에서 제기됐다. 하원에선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하지만 상원에선 잇단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무제한 토론)에 막혀 끝내 무산됐다. 반대를 주도한 이들은 이번에도 역시 남부주 출신 의원들이었다. 그럼 앞으론 어떻게 될까. 흑백차별 등 백인 우월주의가 득세하던 남부주도 이젠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선거인단 제도는 여전히 강고할 것 같다.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 그 과정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개헌선인 상·하원의 3분의 2 의원들이 찬성해도 또 하나 남은 관문이 있다. 개별 주들의 찬성 여부다. 현재 50개 주 중 4분의 3, 그러니까 38개 주 이상이 찬성해야 개헌이 완성된다. 그러나 소수주들은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 대형주들에 밀리지 않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제도 변경을 바라지 않는다.

이렇게 앞으로도 계속될 미국 대통령 간접선거에서 그럼 주별 선거인단 할당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1788년 첫 대선 때 선거인단 수는 모두 69명. 2백36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 선거인단 수는 모두 538명이다. 주별 선거인단 수는 각 주의 연방 상하원 의원 수에 따라 결정된다. 먼저 인구비례에 따라 주별 의석수가 정해지는 하원의원은 모두 435명. 지역대표 격으로 50개 주에서 2명씩 뽑는 상원 의원 수는 100명이다. 따라서 선거인단 수는 상하원 숫자를 합친 535명이다. 여기다 주는 아니지만 수도라는 정치적 위상을 감안해 워싱턴 D.C.도 3명의 선거인단을 덤으로 배정받는다. 이를 보태면 선거인단 총합은 538명이다. 여기서 과반수는 270명. 매직넘버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각 주 선거인단 수를 보면 표의 등가성이라는 민주적 원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미국 최대주 캘리포니아는 하원 52명에 상원 2명을 더해 모두 54명의 선거인단을 가진다. 반면 와이오밍의 선거인단은 하원 1명에 상원 2명으로 3명이다. 일단 캘리포니아가 와이오밍보다 18배나 많은 선거인단을 보유한다. 하지만 인구수로 따지면 캘리포니아 유권자는 분통이 터질지 모른다. 인구 3천8백90만명의 캘리포니아는 58만6천명에 불과한 와이오밍보다 66배나 인구가 더 많다. 냉정히 따지면 캘리포니아 유권자 1표의 가치가 와이오밍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현재 선거인단이 3명에 불과한 주는 와이오밍을 비롯해 알래스카, 델라웨어 등 모두 7개 주에 달한다. 바로 이들 소형주 입장에선 대통령 선거권이 과대 대표가 된 상황이 탱큐! 이런 이유로 소형주들은 인구수가 그대로 반영되는 직접선거로의 헌법 개정을 반대한다.

이쯤에서 제기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유권자가 뽑은 선거인단이 마음을 바꿔 다른 후보를 선출하면 어떡하냐는 것. 과거 몇 차례 실제 그런 경우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인해 선거 결과가 뒤바뀐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선거인단이 유권자가 위임한 대로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충실 의무(Faithfulness Duty)’를 잘 지킨 탓이다. 현재 32개 주와 워싱턴 D.C.는 선거인단이 유권자 뜻대로 최종 투표하도록 아예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나머지 주도 불충실 선거인단 투표를 무효로 처리하고 새로운 선거인으로 대체하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방식으로 변심을 방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이번처럼 초박빙의 승부로 269대 269의 동점 경우 벌금 규제를 받는 선거인단에 대한 변심 공세가 집중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그만큼 이번 대선 판세가 초접전이라는 얘기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의 유튜브 채널 '차재원TV'에서 '2024년 미국 대선' 시리즈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차재원TV 갈무리]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 재 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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