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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극우 자유당이 정부 구성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다른 주요 정당들이 모두 자유당과 협력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1950년대 나치 독일에 부역했던 인사들이 설립한 극우 정당입니다.

 

무슨 상황인데?

로이터 통신은 오스트리아 차기 정부 구성을 감독하는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이 총선 1위 자유당이 아니라, 2위를 기록한 보수 국민당의 칼 네함머 총리에게 연정 구성 임무를 맡긴다고 보도했습니다.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총선 1-3위 정당 대표들과 회담을 갖고 나서, 헤르베르트 키클 자유당 대표가 총리가 될 수 있는 연정 파트너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나치 계열의 극우 정당인 자유당은 지난달 29일 치러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29.2%를 득표해 1위에 올랐습니다. 네함머 총리가 이끄는 중도 보수 성향의 국민당은 26.5%로 2위에 올랐고,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이 21%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자유당은 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으로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해 연정을 위한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총선 2위 국민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정당들이 자유당과 협력을 거부하거나, 키클 대표를 총리로 임명하는 것에 반대해, 자유당의 정부 구성은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이런 가운데 판데어벨렌 대통령이 네함머 총리에게 자유당을 배제하고 총선 3위를 차지한 사회민주당과 연정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요구한 것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자유당을 배제한 결정에 대해, 총선 2, 3위 정당들이 모두 키클 대표와 협력하기를 거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총선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정당이 자동으로 정부를 구성하게 되는 경주가 아니다. 만약 한 정당이 혼자서 통치를 하고 싶다면 (득표율) 50%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10, 20% 혹은 30%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현재 국민당과 사회민주당이 확보한 의석수로는 과반을 1석 차로 겨우 넘기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두 당이 안정적인 연정을 구성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양당 간의 적지 않은 이념 차이를 극복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이런 우려에 대해, 네함머 총리는 제3의 파트너를 물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네함머 총리는 총선 직후에는 자유당과 연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극단적인 친러시아,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는 키클 대표의 총리 임명은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하지만 네함머 총리는 현지시간 22일 의회 연설에서 '안정적인 의회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 제3의 파트너가 필요하다'면서, '평상시와 같은 상황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네함머 총리가 현재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 대신, 진보 성향의 네오스 당과 협력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로이터 통신은 분석했습니다. 만약 세 정당이 연정 구성에 합의하게 된다면, 오스트리아에는 1955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세 개의 정당이 참여한 연정이 들어서게 됩니다.

연정 구성에서 배제된 자유당의 키클 대표는 '모욕적인' 결정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성명을 통해 판데어벨렌 대통령이 총선 1위 정당에 정부 구성 임무를 맡기지 않음으로써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정상적인 절차'를 깨뜨렸으며, '이는 많은 이들에게 모욕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약속하건대 마지막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오늘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라면서, '연정 협상 결과를 지켜보면서 다른 소수 정당들과 접촉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한 걸음 더

나치의 창시자이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총통이던 아돌프 히틀러는 원래 오스트리아 출신입니다. 히틀러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뮌헨으로 이주해 독일군에 자원 입대했고 독일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히틀러는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오스트리아는 1938년 독일에 합병되어 나치 독일이 패망하기 전까지 독일의 일부로 존재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주민들은 독일 국민으로서 독일군에 입대해 참전했고, 상당수는 나치 당원이 되었습니다. 홀로코스트 등 전쟁 범죄에 가담한 경우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 후 독일에서 분리 독립했는데요, 독일은 전범국으로 지목되었지만,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일부였으면서도 이제 다른 나라라는 이유로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독일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사회적 화두가 되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달랐습니다. 쿠르트 발트하임 오스트리아 전 대통령(1918~2007)은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복무했을 뿐 아니라 민간인 학살에도 관여했다는 정황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입니다. 발트하임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 후 오스트리아 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선거운동 중 나치 복무 경력이 폭로되며 논란이 확산됐지만 1986년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1950년대 나치 잔당들이 설립한 극우 민족주의 정당입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전신인 '독립연맹'으로, 옛 나치 당원들과 동유럽에서 추방된 독일인들의 권익을 대변하겠다며 1949년 창설되었고, 군소 정당인 자유당과 합병해 1956년 오스트리아 자유당으로 출범했습니다. 초대 당수는 2차 대전 때 나치 친위대(SS) 여단장을 지낸 안톤 라인탈러였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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