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군 파병에 대해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사실상 파병 사실을 인정한 발언이다. 푸틴의 발언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北파병 부인 않고 북러조약 언급

타스통신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회의 기자회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정황을 뒷받침하는 위성 사진에 대한 미국 기자에 질문에 "위성 사진은 진지한 것이고, 만약 사진들이 있다면, 사진에는 무엇인가 반영된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지만, (북한군 파병에 대한) 주장을 부인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푸틴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사실상 확인한 것"이라며 "이번 파병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초의 외국군 투입"이라고 전했다. 그간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에 대한 서방의 보도에 "가짜 뉴스, 허위 보도"라며 반박해왔다.

북한 군인의 이미지l. 사진=셔터스톡

푸틴은 이날 북한과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같은날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이 조약을 비준했다.

푸틴 대통령은 "방금 북·러 조약이 비준됐고, 거기에는 4조가 있다"면서 "우리가 이 조항으로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북·러 조약의 제4 조는 두 나라 중 어느 한 나라가 공격을 받을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는 군사원조에 대한 내용이다. 이어 푸틴은 "북한 지도부가 우리의 합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푸틴은 열흘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과 관련된 발언도 이어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분쟁 종식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참석했다. 이날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푸틴도 함께 참석한 행사에 "유엔 헌장, 국제법, 유엔 총회 결의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정의로운 평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연설했다.

이에 푸틴은 웃으며 "불행히도 실제 가정에서는 종종 다툼과 소란, 재산 분할, 싸움이 일어난다"며 전쟁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4월 이후 처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24일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났다. AFP=연합뉴스

우크라 "북한군, 쿠르스크 배치"

이날 우크라이나 정보총국은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은 북한군의 첫 병력이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를 포함한 전장에 배치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우크라이나군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군 병사 약 2000명이 훈련을 마치고 우크라이나 국경과 가까운 러시아 서부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8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습 이후 세임 강의 다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당국은 현재 러시아 영토에 들어온 북한군이 장성 3명과 장교 500명을 포함해 약 1만2000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우스리스크와 울란우데·카테리노슬랍스카·크냐제볼콘스코예·세르게이옙카 등 러시아 동부 5곳에서 훈련 중이라고 전했다.

또 북한군 장병들이 탄약과 침구류·방한복·위생용품 등을 지급받았고 러시아군 규정에 따라 한 달에 휴지 50m, 비누 300g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북한군의 훈련과 통제 책임자로는 유누스베크 옙쿠로프 국방차관이 임명됐다고도 전했다.

러시아 본토를 기습 공격한 우크라이나는 지난 8월 쿠르스크에서 서울시 면적(605㎢)의 배가 넘는 1250㎢를 장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 이후 러시아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조금씩 점령지를 내주며 밀려나고 있는 것으로 서방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푸틴도 이날 브릭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이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 2000명을 포위했으며 제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김영옥 기자

군사전문가들은 북한군 병력이 러시아에 보충되면서 우크라이나가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 우려했다. 잭 와틀링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지상전 선임연구원은 "북한군은 꽤 양호한 응집력과 합리적인 사기를 갖췄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러시아 병력을 수적으로 보충하면서 러시아는 현재 병력 운영에서 겪는 어려움이 다소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러시아는 북한군의 지휘와 통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병력 및 민병대와 함께 작전을 이끈 경험을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가 파병국인 북한에 재정이나 무기 기술 이전 등으로 보상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카네기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드르 가부예프 연구원은 러시아가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재정·식량·연료를 제공하거나 첨단 무기 설계와 미사일 기술 이전 또는 해저 전쟁에 관한 과학자의 협력 등의 방식을 보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인 유럽연합(EU)은 이날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유럽과 세계의 평화·안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독단적 적대 행위라고 비판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이번 파병은) 유엔 헌장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포함해 다수의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며 "북·러간 군사협력과 무기 거래가 심화되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사진 우크라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캡처

북, 러와 군사협력 비난에 "근거없는 소문" 발뺌

한편 북한은 이날도 자국군의 러시아 파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24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1 위원회(군축·국제안보 담당) 회의에서 주유엔 한국 대표부의 권성혁 서기관은 "북·러간 모든 불법적인 군사 협력은 명백히 규탄돼야 하며, 북한과 러시아는 국제 의무 위반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북한을 대표해 나온 임무성 북한 외무성 국장은 "근거없는 소문"이라며 발뺌했다.

한국 대표부의 김성훈 참사관은 푸틴이 북한군 파병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보낸 사람(북한)은 부인하는 데, 받은 사람(러시아)은 부인하지 않는 현 상황이 이상하지 않냐"고 꼬집었다. 이에 림 국장은 제대로 된 반박 없이 "근거 없는 역설"이란 주장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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