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2월 로스앤젤레스 법원에서 재판받는 OJ 심슨.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1990년대 중반 전처 살해 의혹으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이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프로풋볼 명예의전당 회장 짐 포터는 11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심슨이 전날 사망했다고 밝혔다. 포터 회장은 심슨이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심슨은 1994년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의 연인 론 골드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오랜 재판 끝에 형사상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민사재판에서는 패소했다.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았지만, 이는 미국의 엄격한 증거주의 판단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다.

심슨은 1967년부터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 편입해 풋볼(미식축구) 스타로 큰 인기를 얻었고, 선수 생활 이후에는 스포츠 캐스터와 영화배우, 렌터카업체 허츠의 대변인·광고모델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94년 6월 전처와 그 연인이 LA에 있는 자택에서 잔인하게 흉기에 찔려 사망한 채 발견됐고, 경찰이 며칠 만에 심슨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특히 경찰과 도로 위에서 추격전을 벌이고, 도주로가 차단되자 친구가 운전하는 차량에 타고 있던 심슨이 자신의 관자놀이 총을 대고 자살하겠다고 외치는 모습이 약 2시간 동안 생중계되면서 스포츠 영웅이었던 그의 위상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결국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1개월이 걸린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무죄 평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서는 항소가 허용되지 않아 재판은 이대로 종결됐다.

재판 전에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장갑에서 심슨의 DNA가 검출되는 등 유죄 혐의가 짙었으나, 심슨은 유력 변호사들을 대거 고용해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심슨을 인종주의의 희생양으로 부각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이후 재판은 혼란에 빠져 결국 배심원단은 심슨이 유죄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후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3천350만달러(약 459억원)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산했다.

심슨 사건이 미국 사회에 남긴 후유증도 컸다. 인종차별 문제를 파고들면서 사회가 흑백으로 갈라졌다. 당시 CNN과 타임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인의 62%는 심슨이 유죄라고 믿은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66%는 심슨이 무죄라고 답했다.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인식이 강하게 남았다.

심슨은 이후에도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했으며, 2007년에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가정 하에 살인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는 ‘만일 내가 그랬다면: 살인자의 고백’(If I Did It: Confessions of The Killer)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60세이던 지난 2007년에는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카지노에 들어가 동료 5명과 함께 스포츠 기념품 중개상 2명을 총으로 위협하고 기념품을 빼앗은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이듬해 무장강도죄 등으로 최대 3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9년간 복역하다 201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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