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추석 케이블SO의 커머스 방송화면. 일반 홈쇼핑과 큰 차이가 없다. 사진=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정부가 LG헬로비전 등 케이블SO(System Operator, 유료방송 사업자)에 홈쇼핑과 유사한 커머스(상품판매 방송)를 상시 허용해주는 정책 방향을 정했다. 홈쇼핑과와 케이블SO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정부가 시청자에 대한 고려 없이 규제 완화에 나서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케이블SO 상품판매 방송을 상시 허용해주는 방향의 정부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국무총리 직속 자문기구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는 지난 3월 케이블SO의 상품판매방송을 제도화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과기정통부는 지난 6월부터 ‘지역채널 커머스 방송 태스크포스’를 운영해 전문가·업계 관계자와 논의를 했다. 케이블SO의 상품판매 방송은 2021년 한시적으로 허용됐으며, 허용 기간은 내년 6~10월까지다. 법안이 통과되면 케이블SO의 상품판매 방송이 상시화된다.

이번 조치는 케이블SO 산업 활성화 대책의 일환이다. 케이블SO는 IPTV와 함께 유료방송 시장을 이끄는 축이지만, 경영악화가 이어졌다. 통신사 결합할인을 필두로 한 IPTV가 2009년 등장하면서 가입자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상품판매 방송이 상시화된다면 케이블SO는 수익 다각화를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상품판매 방송은 홈쇼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케이블SO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채널을 송출하는 홈쇼핑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케이블 “경계 잘 지킨다면 윈윈”… 홈쇼핑 “건물주가 가게 차린 것”

케이블SO 관계자 A씨는 “상품판매 방송으로 얻는 수익은 미미할 것이고, 케이블SO가 지역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며 “취급하는 분야가 다르므로 서로 경계만 잘 지킨다면 윈윈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케이블SO 관계자 B씨는 “물건을 판매하는 사업자는 지역의 작은 기업들”이라며 “유사한 방송을 하는 홈쇼핑 사업자들이 타격을 입을 정도도 아니고, 지역을 대상으로 하기에 지역성도 갖췄다”고 밝혔다.

하지만 홈쇼핑 관계자 C씨는 “빌딩에서 햄버거 장사를 하고 있는데, 건물주가 바로 옆에 햄버거 가게를 차리는 상황과 뭐가 다른가”라면서 “지금은 여러 제약조건을 두고 커머스 사업을 하겠다고 하지만, 향후 규제 완화를 요구할 수 있다. 당장 홈쇼핑에 위협이 안 될 순 있으나, 문턱을 넘으면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홈쇼핑 관계자 D씨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이는 방송이 아닌 유통 정책으로 해결할 일”이라며 “상품판매 방송을 위해선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예외적인 상황을 만드는 게 아니라 차라리 홈쇼핑에 대한 체계 자체를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전문가·이해관계자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고, 유료방송 산업 발전과 상생을 위해 필요한 내용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케이블SO 장기 로드맵 없이 규제 완화… 불필요한 소모전만”

케이블SO의 위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상품판매 방송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지며, 케이블SO가 직접 운영하는 채널에서 상품판매 방송이 강화될 경우 일반 프로그램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석현 한국YMCA 시민중계실장은 “정부가 케이블SO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관련 규제를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특정 규제만 완화한다면 불필요한 소모전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홈쇼핑 시장이 좋은 것도 아닌데, 이번 조치가 케이블SO의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케이블SO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건 맞지만, 수익성뿐 아니라 지역성 구현이라는 책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상품판매 방송을 허용하고, 이를 통해 얻는 수익은 지역 관련 콘텐츠 투자에 투입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방송 규제완화 기조 “시청자 피해 함께 고려해야”

최근 윤석열 정부는 방송 관련 규제 완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유료방송 재허가·재승인제 폐지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 유효기간 확대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규제 폐지 △대기업의 방송소유 기준 완화 등 방안을 내놨다. 이들 규제는 모두 사업자와 관련된 것으로, 시청자를 위한 규제 및 정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석현 실장은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정책 중 시청자를 위한 정책은 없다”며 “지금까지의 규제 완화 대책은 사업자 민원을 해소한다는 측면이 있는데, 시청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코드커팅(‘선을 끊는다’는 의미로, 유료 방송 가입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OTT 등으로 옮겨가는 현상)으로 시청자가 점차 방송에서 멀어지고 있는데 단기적인 정책을 남발하면 시청자를 다시 되돌릴 순 없다”고 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규제 조정이 필요하다. 매체 환경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규제를 유지할 순 없겠지만, 이에 따른 시청자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며 “공공성을 위해 남겨둬야 할 규제는 무엇인지 선별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익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일방적인 규제 완화 정책만 나온다면 반발이 나올 것이고, 결국 산업 경쟁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용어 설명]

관련기사

  • 홈쇼핑 경영위기, 방송계 ‘도미노 위기’로 이어진다
  • KBS 광고 매출,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1000억 대 추락
  • 尹정부 총선 앞두고 방송사 대대적 지원·규제완화 발표
  • 정부의 ‘티커머스 생방송 검토’에 홈쇼핑 업계 화들짝

△유료방송= 돈을 내고 보는 방송 플랫폼을 뜻하는 표현. 방송사업자들의 채널을 모아 틀어주기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라고도 한다. 유료방송에는 IPTV, 케이블 SO, 위성방송 등이 있다. 인터넷 기반 IPTV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케이블 SO는 사양 산업이 됐다.

△케이블SO= 종합유선방송사업자 계약된 방송 채널을 편성해 유선 방식으로 가정에 공급하는 케이블TV사업자. SK브로드밴드, LG헬로비전, 딜라이브 등이 있다. 한때 유료방송 대명사였지만 현재는 IPTV에 밀려 사양산업이 되고 있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