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처음 떠오른 제목은 ‘핵발전이 죽어야 기후가 산다’였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점잖게 가장 쉬운 것도 못 하는 나라로 바꾸었다. 지구 행성에 닥친 기후위기를 힘겹게 살아내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 개중에는 산업화 이후 문명사의 패러다임을 근본에서 바꾸어야 하는 ‘탈성장’도 있다.

탈성장을 주장하면 경련을 일으키는 이들이 아직은 많겠으나, 자본주의 성장 시스템은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 지구 행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생산과 소비 활동이 기후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탈성장은 어찌 보면 공리(公理)에 해당한다.

뻔한 공리임에도 우리 사회가 탈성장에 동의하고 기존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고, 지구 행성이 그때까지 버텨주기를 기원할 수밖에 없는 처지 또한 우리 형편이다.

많은 기후위기 대응 수단 중에서 이런저런 핑계로 장기판에서 포 떼고 차 떼고 남은 것,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 이미 많은 나라에서 하는 것, 가장 쉬운 그것을 우리는 왜 못하고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이 글은 시작됐다. 결론은 자연스럽게 ‘핵발전이 죽어야 기후가 산다’로 귀착됐다.

가장 쉬운 것, 바로 에너지전환이다. 우리 문명을 지탱하는 에너지를 화석연료에서 태양과 바람의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가 재생에너지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을 보면, 다른 정책 수단에 비해 매우 쉽다는 방증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총아인 제국의 기업들이 자신의 상품을 100퍼센트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고 앞다투어 RE100 경쟁을 하는 것만 보아도 에너지전환이 그나마 쉬운 수단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에너지전환은 가장 어려운 정책 과제가 되어 버렸다. 핵발전소가 떡하니 길목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아닌 핵발전을 대폭 확대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괴이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15년 뒤 2038년에 핵발전소가 30기로 늘어나고 소비 전력의 35.6%를 핵발전에 의존하는 고위험 사회로 계속 남게 된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핵폭주 정책에 힘입어 대구시의 홍준표 시장은 최근 군위군에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계획까지 발표했다. 이로써 대구 시민들이 탈핵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니 윤석열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미국의 핵기술에 의존하는 대한민국과 다르게, 독자적인 핵기술을 보유한 독일이 2023년 4월 15일을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멈추고 탈핵 사회로 진입한 일을 훗날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2038년 30기의 핵발전소를 유지하기 위해서 윤석열 정부는 설계수명이 끝나는 노후핵발전소 10기의 수명연장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핵발전 도시마다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호남에서 비보가 들려왔다. 9월 1일부터 호남 지역의 새로운 재생에너지 발전 허가를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크게 반길 소식인지 모르겠으나 천재지변 같은 악재다.

호남 지역의 재생에너지 중단 이유가 송전망이 없기 때문이란다. 송전망을 둘러싼 갈등은 점점 커질 전망이다. 그래서 노후핵발전소의 빠른 폐쇄가 더 절실하다. 10기의 노후핵발전소를 수명 연장할 것이 아니라 송전망에서 노후핵발전소를 떼어내고 재생에너지를 연결해야 한다.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한빛원전의 송전망에 물리고, 장차 울산 앞바다의 해상풍력을 월성원전과 고리원전의 송전망에 연결하는 날이 빨리 와야 한다. 기후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도 못 하는 나라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의 핵폭주 정책을 멈출 때 길이 보인다.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9월 7일 기후정의행진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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