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학생들. ⓒ 연합뉴스

‘팝콘 브레인’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해 뇌가 튀어오르는 팝콘처럼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고 일상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포털에 ‘팝콘 브레인’으로 검색하면 <‘스마트폰에 빠진 우리 아이 뇌는 ‘팝콘 브레인’>, <‘팝콘 브레인’에서 벗어나라”> 등 보도가 줄을 잇는다. ‘팝콘 브레인’ 이론이 과장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기성세대의 걱정에 부응하면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 태어났을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쥔 세대가 기성세대로부터 듣는 말이다. 스마트폰을 두고 부모와 자녀가 갈등하는 가정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무엇을 보는지 궁금해 하지만 관심을 가질수록 아이는 감추려 한다. 뺏으려 하면? ‘스마트폰을 부수는 것은 나를 부수는 것’으로 여겨 반발한다. 

기성세대의 걱정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에서 책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아이들의 삶 속의 자리 잡은 ‘화면’의 ‘입체성’에 주목한다. 저자인 김지윤 작가(32)는 IT매체 기자와 영상 제작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특히 영상 제작을 하며 10대 이용자를 들여다본 일이 집필의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어린 세대를 ‘온라인이 기본값이 됐다’는 의미의 “온라인 디폴트”로 명명한다. 이들에게 ‘연결’이 끊어진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김지윤 작가는 “스마트폰을 부순다면 사회와 연결된 관문을 부수는 일이고, 일종의 기억상실 같은 느낌일 거예요. 단순히 기억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워지게 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이어 <맘카페의 세계>의 한 대목을 전했다. 결혼을 통해 물리적으로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맘카페라는 관문을 찾아 빠져들게 됐다는 얘기다. 

쓸데없는 짓의 끝판왕은 게임?

기성세대 입장에서 자녀가 스마트폰을 하는 것이 ‘쓸데없는 짓’이라면 게임은 ‘끝판왕’ 격이다. 2003년 KBS ‘아침마당’에서 임요환 프로게이머를 초청해 놓고선 “게임을 하다 보면 누군가 나를 헤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사이버머니 1억은 우습죠?”와 같은 질문 세례를 받아내야 했다. PC방 전원을 차단해 게임의 문제를 조명하려 한 MBC의 무리수 보도는 아직도 회자된다. 게임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시선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 PC방 전원을 차단해 논란이 됐던 2011년 MBC '뉴스데스크' 보도 갈무리

책에선 게임의 여러 면모를 소개한다. “게임은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데 빠질 수 없는 요소”이며 “흡사 게임은 인생을, 인생은 게임을 닮아간다”고 한다. 나아가 게임을 “하나의 체계이자 문화 체험의 도구로서 인정하고 미래로 연결하는 것이 훨씬 실질적‧효율적인 방향”이라는 제언으로 이어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정작 게임에 과몰입하는 문제 이용군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다수가 일반 이용군이었고, 게임을 긍정적으로 승화해서 사용하고 스스로 조율하는 적극 이용군도 있었다.

“총으로 사람 쏴 죽이고, 과금 유도하고 시간 낭비인 것만 게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올웨이즈라는 커머스앱에선 양파를 키우면 실제로 양파를 줘요. 토스에선 고양이 키우기 게임을 많이 해요. 게임의 속성은 이미 우리 삶 곳곳에 들어왔는데 게임 자체를 너무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는 문제의식이 들었어요. 보는 게임도 있고, 하는 게임도 있고, 낚시하는 게임처럼 잔잔한 게임도 있고, 무언가를 키우는 게임도 있고, 체험의 극치에 다다르는 게임도 있어요.”

수동적인 10대? 줄타기하는 입체적인 존재

역설적으로 이런 세상을 만든 건 기성세대다. 소셜미디어의 독점적 권력, 알고리즘 의존 등 ‘화면’이 만들어 낸 각종 소란과 부침은 결국 화면을 만들어 낸 어른들에게서 비롯됐다. 김지윤 작가는 “기성세대가 화면의 명암을 만들었다면 그들의 자식들은 그 명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지난달 20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김지윤 작가를 만났다. 사진=정철운 기자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입체적 존재’다. 어린 세대는 기성세대의 걱정과 우려를 받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책은 아이들을 가리켜 “누구보다 빨리 적응과 저항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한 정체성에 대해 규정할 때 스테레오타입이 강하잖아요. 저부터도 ‘여자인데 왜 머리가 짧아?’ ‘서울대 나왔는데 왜 그래?’ 이런 질문을 받으면 왜 하나로만 보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아이들의 화면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김지윤 작가는 10대 오픈채팅방에 참여한 적 있다. 당시 한 아이가 장문의 작별 인사를 쓰고 떠난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오픈채팅방 친구들에게 너무 시간과 마음을 많이 써서 부모님과 의논해 본 결과 오픈채팅방 활동을 쉬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걸 보면서 편견을 갖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너무 여기에만 시간 쓰는 것이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껴서 조절해 보고 싶은 의지도 있는 것이죠. 이 상황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과 가까운 열린 꼰대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꼰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삶 속에 빠르게 파고드는 인공지능 문제와 관련해 10대들은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서 벌어진, 그리고 벌어질 일에 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우려하고 충돌하고 있다. 2023년 부안여고 학생 130명을 대상으로 한 인공지능 인식 조사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육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에 관해 묻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어서’였다. 반면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상반된 시각도 공존했다. ‘인공지능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청소년의 노력으로 필요한 일’을 묻자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인공지능이 준 답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분석하기’였다. 

“제가 뉴즈(영상 제작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 네이버가 채색을 자동으로 해주는 인공지능 기술 연구논문을 발표해서 소개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10대 반응을 보면 ‘웹툰 작가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제 준비해선 안 되는 거냐’는 우려가 있었고 대댓글에 ‘이제 웹툰 작가는 스토리 일을 하라는 거다 멍청아’라며 싸우기도 했어요. 취미로 채색을 그리는 친구들은 ‘개꿀’이라고 했고요. 그 세대 안에서도 복합적인 반응이 나오는 거죠. 생성형 AI가 화제가 되기 전부터 기술 관련 영상의 댓글은 늘 ‘불판’이었어요.”

어른이 만든 현실, 그리고 어른의 진짜 역할

책은 ‘온라인 디폴트’ 세대를 마냥 긍정하거나 예찬하지만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대표적인 역기능은 ‘격차’다. 

“아무리 인공지능의 접근성이 커져도 인터넷이 없으면 못 써요. 한국에선 격차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원격수업 때를 떠올려 보면 그렇지 않았어요. 영화 ‘기생충’에 나올 것 같은 반지하 집과, 부유한 집이 와이파이가 연결돼 있다고 해서 동일한 환경이 아닌 거죠. 어떤 아이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최신 정보를 쉽게 접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환경에서 주체적인 사용을 할 수 있고요. 반면 부모님이 바빠서, 방치돼서 화면을 가난하게 쓰는 아이들도 있어요.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도구라고 하는데, 모두에게 공평한가에 관해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또 다른 역기능은 ‘무력감’을 준다는 점이다. 물리적 장벽을 너머 손쉽게 폭넓은 소통을 하게 되면서 많은 정보를 어릴 때부터 접하게 되는데, 부정적인 면이 각인되곤 한다. 예컨대 자신이 성인이 됐을 때의 학력과 재력 등을 예상할 수 있으니 쉽게 무력감에 빠져드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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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제는 무력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인생에서 뭐라도 하고 싶어야 화면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데, 그런 마음 자체가 안 생기는 상황에선 화면이 의욕을 줄 수 없어요.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힘,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힘, 원하는 걸 계속 원하는 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소음’을 무시하는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몰입과 중독은 한 끗 차이인 거 같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어요. 순간순간 몰입하면서 삶을 좀 더 나답게 의욕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 반면에 낮은 강도 몰입에 젖어서 그리 즐겁지 않으면서 중독된 채 살아갈 수도 있는 거 같아요. 개인이 의욕을 짜냈다고 해도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서포트 해주는 기반이 없으면 지치고, 효능감이 꺾일 수 있어요.” 불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지하고 격려해 주기 위한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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