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초연구 ‘3~5년’ 투자

R&D 시스템 기본 단계 없애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한국은 2000년 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포함해 노벨상 2명을 배출한 국가가 됐다.

그런데 전체 노벨상 부문의 절반은 과학상(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이다. 여기에서 한국은 수상자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시아 경쟁국인 중국은 3명, 일본은 무려 25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인도(2명)와 파키스탄(1명)에서도 수상자가 나왔다.

한국은 현재 선진국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나라다. 그런데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 ‘0’이라는 성적표를 매년 받아드는 이유는 뭘까. 노벨 과학상은 기존 개념을 완전히 뒤바꿀 발견에 시상된다. 2019년 사상 처음으로 태양계 밖에서 행성을 찾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과학계는 태양계 밖에도 행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발견 덕에 인류는 외계 생명체 탐구로 천문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됐다. 이런 발견은 쉽고 빠르게 할 수 없다. 시행착오를 감수하며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투자가 오래 이뤄져야 한다.

2021년 한국연구재단이 펴낸 자료 ‘노벨 과학상의 핵심 연구와 수상 연령’을 보면 2011~2020년 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수상자가 탐구에 착수해 결과물을 얻기까지 평균 19.1년이 걸렸다. 결과물을 내고 과학계에서 각종 검증이 이뤄지는 데 다시 12.7년이 소요됐다. 수상까지 총 31.8년이 필요했다. 그동안 꾸준한 연구 지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30여년 전 한국은 기초과학을 등한시하는 개발도상국이었다. 기초과학보다는 제품 개발에 필요한 응용 기술에 투자했다. 모내기하지 않은 논에서 풍작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다. 정부는 국내 기초연구를 보통 3~5년 동안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길어도 10년 안쪽이다. 긴 호흡의 연구를 하기에는 불리한 환경이다. 여기에 더해 국내 과학계에서는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이 줄어드는 와중에 젊은 기초과학 연구자를 키우기 위한 시스템이 손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벨 과학상에 접근하기 위한 환경이 더 악화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초과학 지원은 생애 첫 연구, 기본 연구, 신진 연구, 중견 연구, 리더 연구 순으로 정부의 지원 기간과 액수가 늘어나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 R&D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1·2단계에 해당하는 생애 첫 연구와 기본 연구 사업을 없앴다.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은 “일본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다수 나오는 이유는 젊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년도 문제다. 나노 과학의 세계 석학으로, 노벨 화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는 “연구 결과를 검증받아 수상자로 선정된 이들은 대개 70대 현역 연구자”라며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의 경우) 만 65세가 되면 정년 퇴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 정년은 더 짧은 만 61세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적절한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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