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창간 78주년 기획

‘쓰레기산 235’, 그 5년 후

“대부분 처리했다”지만 아직도 93개 남아

“쓰레기산 발생 자체 막을 제도 갖춰야”

지난 8월29일 충남 아산시의 한 재활용업체 부지에 폐합성수지류 폐기물이 담긴 포대자루가 쌓여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10m짜리 ‘의성 쓰레기산’이 세상에 드러난 지 5년이 지났다. 한 재활용업체가 허용 보관량보다 150~200배 많은 폐기물을 쌓으면서 솟아난 거대한 쓰레기산은 외신에도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환경부는 당시 전수조사로 전국 235개 쓰레기산을 찾아냈다. 2021년 의성군은 3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이를 치웠다.

쓰레기산은 지금도 솟아나고 있다. 경향신문이 환경부에서 받은 ‘불법폐기물(쓰레기산) 발생 및 처리 현황’을 보면, 올해 7월 기준 2019년부터 누적된 쓰레기산은 493개다. 5년 전 환경부 집계(235개)보다 2배 이상 많다. 5년간 전국 약 500곳에 불법 폐기물이 쌓였다 치워지기를 반복했다는 뜻이다. 이 중 대부분은 ‘처리’됐지만 93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8월 전국의 쓰레기산 3곳을 찾았다. 폐기물이 일부만 처리되거나 미처리된 곳들이다. 길게는 10년 이상 방치된 쓰레기산에는 각종 오염 문제와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의성’은 계속된다..치워도 다시 솟는 쓰레기산

지난 8월29일 충남 아산시의 한 재활용업체 부지에 1만9000여t 폐합성수지류 폐기물이 쌓여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지난 8월29일 충남 아산의 한 재활용업체 부지에는 노랑, 주황, 초록 등 여러 색의 폐기물 포대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일부 포대는 심하게 뜯어져 내용물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언뜻 화산재처럼 보이는 폐기물들이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땅을 가득 메웠다.

포대 안에 있던 것은 곱게 갈린 플라스틱 등 조각난 폐합성수지류 폐기물이다. 건물 안팎에 쌓인 폐기물량은 1만9000t에 달한다. 아산시가 허가한 용량(696t)의 27배가 넘는 양이다. 업체는 수년간 허용량을 초과한 폐기물을 쌓으며 불법 운영했다. 본래 폐기물 보관 장소로 한정됐던 건물 안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꾸역꾸역 들어찬 쓰레기에 밀려 문의 유리창은 깨져버렸고, 철제 벽도 무게를 이기지 못해 구부러졌다.

부지 안쪽으로 갈수록 오래된 고무 냄새가 진동했다. 건물 밖 폐기물 포대들 사이로 오폐수가 고인 것 같은 물웅덩이가 보였다.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인 채 여름 햇빛을 가득 받고 있었지만, 쓰레기가 쌓인 부지는 죽은 땅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8월29일 충남 아산시의 한 재활용업체 건물 창문이 폐기물 포대 무게에 눌려 깨져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이곳은 전국에 솟아난 493개 쓰레기산 중 하나다. 환경부 설명대로 2019년부터 누적된 493곳의 쓰레기산 중 400곳은 지난 7월 기준으로 처리가 완료됐다. 그러나 93곳엔 여전히 쓰레기가 남아 있다. 아산 쓰레기산을 포함한 38곳은 손도 대지 못한 ‘미처리’ 상태다.

‘의성 쓰레기산 논란’ 5년 뒤, 쓰레기산을 대하는 책임자들의 태도는 미적지근했다. 지자체는 무심했고, 폐기물을 방치한 이들은 치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환경부는 쓰레기산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여겼다. 환경부 관계자는 “점검을 통해 새로 적발한 곳이 있었을 뿐”이라며 남은 쓰레기산도 지자체가 쓰레기를 방치한 이들을 독려하면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곁의 ‘쓰레기산’

지난 8월22일 찾은 인천 부평구의 한 쓰레기산은 대형마트 바로 옆에 있었다. 건설폐기물을 불법으로 방치한 업체 대표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1만4000t이 넘는 쓰레기가 공터에 덩그러니 남았다. 높은 임시 벽을 둘러놓아 밖에서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다. 벌어진 틈 사이로 들여다보면 무성한 잡초 더미에 방수포와 콘크리트 조각, 목판, 폐벽돌 등 건설폐기물이 뒤엉켜 있다.

지난 8월22일 인천 부평구의 한 건설폐기물 처리 업체 부지에 방치된 불법 폐기물이 쌓여 있다. 한수빈 기자

마트 앞을 지나던 주민들은 쓰레기산의 존재조차 몰랐다. 장을 보고 나오던 김인경씨(53)도 “(인근 아파트에 10년간 살았지만 벽 너머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지) 전혀 몰랐다”며 “사람들이 다니는 동네 한복판에 쓰레기를 그냥 두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다른 시민은 “공사장이라 벽을 쳐놓은 줄 알았다”며 “쓰레기가 있다면 구청이 빨리 치워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부평구는 “쓰레기가 언제 다 치워질지 모른다”고 했다. 쓰레기를 방치한 업체는 이미 폐업했고, 땅 주인은 ‘내가 버린 게 아니다’라며 구청의 행정대집행에 소송을 제기했다. 구청이 패소하면서 행정대집행을 하려고 확보해둔 예산도 다시 반납했다. 부평구 관계자는 “주민들 피해가 있거나 오염물질이 나오면 치워야 하지만, 주거지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처리가) 시급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의 쓰레기산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은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며 허가 용량을 초과한 폐기물을 치우라고 했지만 업체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현재 아산시는 주기적으로 업체를 찾아 처리를 독려하고 있을 뿐 “행정대집행 계획은 없다”고 했다. 기자와 만난 업체 관계자는 “여기 있는 것들 모두 재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2024 창간기획] 쓰레기산 235, 그 5년 후

시골에서 죽는 도시 쓰레기

대부분 쓰레기산은 개발에서 비껴난 비도심 지역에서 솟았다. 지난 5년 동안 발생한 쓰레기산 493개 중 서울에 위치한 것은 2개뿐이었다. 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쓰레기산이 176개로 가장 많았으나 대부분 도심 외곽 지역이었다. 수도권 밖에 생긴 나머지 315개 쓰레기산 중에선 경북이 83개로 가장 많았고 전남 52개, 충남 48개였다.

지금까지 방치된 쓰레기산도 비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전국 ‘미처리’ 쓰레기산 38개 중 서울에 위치한 것은 한 곳도 없다. 경기에 5개, 인천에는 2개가 있다. 충북이 8개로 가장 많고, 충남과 경북이 각각 6개로 뒤를 이었다.

사진을 클릭하면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박채움 기자

폐기물은 크게 가정에서 배출되는 생활폐기물과 기업 등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로 나뉜다. 쓰레기산은 산업폐기물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다. 생활폐기물은 ‘발생지 책임 원칙’에 따라 지자체 내에서 처리하지만, 산업폐기물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대부분 민간업체인 처리시설은 지자체 허가만 있으면 쓰레기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처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종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은 땅값이 싼 농촌과 비수도권에 몰린다. 일부 업체들은 인적이 드문 지역에 쓰레기를 쌓아놓은 뒤 폐업 신고를 하거나 사라져 버린다. 한국환경공단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산업폐기물은 전체 폐기물 중 87.6%로 생활폐기물보다 훨씬 많다.

5년 전 논란이 된 의성 쓰레기산도 ‘도시 쓰레기의 무덤’이 시골에 쌓인 경우였다. 의성군은 쓰레기산을 처리한 후 발간한 ‘방치폐기물 처리사업 백서’에서 “(20만t의 쓰레기가) 모두 의성군 내에서 배출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며 땅값이 싼 농촌 지역에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신청하는 업체가 많다고 짚었다.

‘의성 쓰레기산’으로 불리던 경북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재활용업체 사업장의 2018년 11월 모습. 경북도 제공

한곳에 몰린 쓰레기는 환경을 망가뜨린다. 지난 8월29일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책임성 확보를 위한 법 개정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유민채 전 청주 북이면 추학1리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농촌으로 서울·경기도 등 전국 각지에서 쓰레기들이 몰려온다. 소각장 인근 주민이 농사지은 배추밭에 검은 분진이 까맣게 내려앉는다. 농촌에 엄청난 쓰레기를 들이부으면서 어떻게 안전하고 건강한 생명 먹거리를 생산하라고 하나.”

‘치워진’ 쓰레기산은 어디로 갔나

전국 곳곳에 쌓였다가 처리된 쓰레기산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진 걸까. 환경부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쌓였던 불법 폐기물은 184만5000t에 달한다. 이 중 158만8000t(86.1%)은 처리가 완료됐다. 처리 방식은 크게 재활용, 소각, 매립으로 구분된다.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소각(38만2000t)과 매립(47만7000t)으로 처리된 폐기물이 85만9000t(54%)으로 재활용(72만9000t·46%) 비중을 넘는다.

의성 쓰레기산 처리 때는 20만8000t 중 70% 이상(14만7000t)이 재활용됐다. 방치된 쓰레기의 절반인 9만5000t이 시멘트 공장의 보조 연료로 재활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시멘트를 제조할 때 필요한 유연탄 대신 쓰레기 소각열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폐기물을 수출하기도 했지만, 최대 수입국이던 중국이 2018년 1월부터 폐플라스틱 등 24종 폐기물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국내에서 처리해야 할 쓰레기 용량이 늘어난 점이 골칫거리로 떠오르면서 에너지 재활용이 대안으로 조명받기도 했다.

이런 식의 재활용도 ‘차선책’일 뿐 환경에 무해하지는 않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온다. 환경오염시설로 피해를 본 농촌 지역을 지원하는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열을 회수하더라도 결국 쓰레기를 소각하는 건 마찬가지”라며 “분류상 재활용이긴 하지만 대기를 오염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22일 인천 부평구의 한 건설 폐기물 처리 업체에 방치 폐기물이 쌓여 쓰레기산을 이루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일부에서는 사람이 없는 땅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것이 매립이나 소각보다 환경오염이 덜하다고 주장한다. 방치된 쓰레기도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 홍수열 자원순환연구소 소장은 “쓰레기가 야외에 오랜 시간 방치되면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미세 플라스틱이 날리는 등 환경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발견된 쓰레기산은 정부 예산을 들여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가 모이면 화재에 취약하다. 경향신문이 소방청에서 확보한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폐기물·재활용시설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631건이다. 화재로 4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72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의성군은 2018년 12월 쓰레기산에서 일어난 화재가 다음해 1월까지 계속되며 곤란을 겪었다. 쓰레기 자체 압력으로 만들어진 열과 가스가 화재로 이어졌다. 아산 쓰레기산에서도 지난해 3월 용접 작업 중 불씨가 폐기물로 튀면서 큰불이 났다. 쓰레기 사이에 남은 불씨를 제거하느라 진압에 꼬박 이틀이 걸렸다.

쓰레기산, ‘0’이 될 수 있을까

남아 있는 쓰레기산은 ‘주민 피해가 적다’거나 ‘예산 집행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29일 찾은 인천 서구의 택지개발 공사장에 쌓인 쓰레기산도 그런 이유로 10년째 남아 있다. 이곳에는 폐전선 6700t이 머리카락처럼 뒤엉킨 채 쌓여 있다.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어 땅 주인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처리를 떠맡았지만,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땅이라 처리 속도는 더디다. 구청은 처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폐전선이 그 자체로 대단히 오염을 일으키는 물질은 아니고, 아직 빈 땅이라 관련 민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29일 인천 서구 택지개발 공사장 부지에 폐전선 약 6700t이 쌓여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환경부도 남은 쓰레기산에 행정대집행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예산을 써도 이익을 환수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환경부는 “의성 논란 이후 발생을 막기 위한 입법이 충분히 이뤄진 상태”라고 했다. 2020년 5월 시행된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은 불법 폐기물 발생과 관련한 민간업체들의 책임 및 처벌 강화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한번 솟아나면 처리가 복잡하고 환경을 망가뜨리는 쓰레기산은 발생 자체를 막는 게 핵심이지만, 예방을 위한 제도 변화는 지지부진하다.

쓰레기 발생량이 처리 능력에 비해 과도한 점도 쓰레기산 발생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환경공단 자료를 보면, 하루 평균 폐기물 발생량은 2017년 42만9531t에서 2022년 51만842t으로 16% 증가했다. 늘어나는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안전성을 갖춘 시설이 필요하다. 산업폐기물의 이동을 제한해 쓰레기의 발생지 처리 원칙을 세울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을 개정하는 등 입법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 변호사는 “불법 폐기물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으면, 남은 93개 쓰레기산이 모두 치워져도 또 다른 93개 쓰레기산이 생길 것”이라며 “생활폐기물처럼 지역 내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지역 내에서 책임지도록 하고, 최소한의 공공성을 갖춘 처리시설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불법 폐기물을 막으려면 폐기물 처리시장이 안정화돼야 한다”면서도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게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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