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김포시청 공무원이 지난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정부는 내부 특별팀까지 꾸려 악성 민원에 대한 공무원 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는데, 공무원들은 현재 있는 규정조차 제대로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보통 노동자 수준의 법적 보호라도 우선 이뤄달라고 요구했다. 현장 공무원이 알아서 악성 민원을 책임져야 하는 관행과 구조 안에선 아무리 새 매뉴얼을 내놔도 ‘백약이 무효’라는 얘기다.

김포시청 공무원 이전에도 공무원이 악성 민원으로 목숨을 잃는 일은 반복됐다. 지난해 8월에는 경기 화성에서 민원인의 고성에 응대하던 공무원이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했다. 지난해 5월 고용노동부의 신입 근로감독관이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원인이 흉기로 공무원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지난달 경기 파주에서 민원인이 망치로 공무원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고, 지난해 5월에는 부산에서 민원인에게 머리와 얼굴을 맞은 공무원이 기절했다.

목숨을 위협하는 악성 민원에 대한 조처가 그간 없었던 건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2022년 7월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사무실 내 안전요원 배치, 민원처리를 방해하는 민원인 퇴거 조치 등을 의무화했다. 같은 해 개정된 행안부의 ‘공직자 민원 응대 매뉴얼’에는 특이민원에 대해 고소·고발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대응 요령 등도 담겼다.

하지만 이들 조처는 강제성이 없어 기관장 자의로 악성민원에 대한 기관의 책임이 ‘생략’ 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이해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기관장이 예산 부족, 인력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안전요원 배치나 안전장비 설치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우숙 서울노동권익센터 연구위원은 “법률에 강제조항이나 미시행에 대한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며 “악성 민원에 대한 기관 차원의 대응을 의무화하고 미이행 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제시된 ‘공직자 민원 응대 매뉴얼’ 또한 다른 감정 노동자 보호 제도에 견줘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 매뉴얼은 민원인이 폭언 등을 지속할 경우 담당 공무원은 “정확한 상담을 위해 통화내용을 녹음하겠습니다 ”라고 고지한 후에 녹음을 시작할 수 있다 .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내 문장과 함께 통화 자동녹음이 이뤄지는 금융사 , 통신사 등 일반 사업장과 다르다 . 이해준 위원장은 “이미 폭언을 듣고 녹음을 시작하는 건 의미가 없다 . 현장의 어려움이 반영된 지침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

김포시 공무원 사망 이후 행안부는 내부 특별팀(TF)을 구성하고 ‘민원인의 위법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 요령’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선 연구위원은 “매뉴얼을 추가로 만들고 배포하는 것보다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과 매뉴얼 중 현장에서 반영되고 있지 않은 사안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어떤 것을 악성 민원이라고 할 수 있는지 구별할 기준조차 없는 상황이라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선 공무원이 악성 민원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 아닌,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전담 부서 등의 설치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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