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의 마음극장은?

어떤 영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가 왜 저기 들어 있나 싶은,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드러낸 것 같은, 친구에게 꼭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그런 장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영화 칼럼니스트 ‘동그란’이 격주로 마음 속에서 재편집되는 대사, 기억의 영사기에서 반복되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며칠 전 아침, 외출을 하려고 가방을 메고 나서면서 에어팟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을 때였습니다. 아, 이런! 어디서 흘렸지? 에어팟 한쪽이 사라져버린 거예요. 오른쪽만 외로이 남아 있고 왼쪽은 어디서 흘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왼쪽을 잃어버려서 애플센터에 가서 한쪽만 구입한 게 불과 2주 전인데. 이제 에어팟을 다시 살 일은 없을 거 같아요. 잃어버린 에어팟들을 추모하며 줄이어폰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해요.

가끔 상상하곤 해요. 내가 잃어버리고 다시 찾지 못한 것들-머리끈, 우산, 이어폰, 머플러와 스카프, 장갑-이 우주 어딘가 작은 별 하나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모임을 열고 있을 거라고. 흑.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물건들의 리셉션이라니 가슴이 찡하네요.

요즘 개봉관에서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니션 영화 ‘로봇 드림’(파블로 베르헤르 감독·2023)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들의 쇼케이스라고 할 만해요. 영화의 줄거리는 뉴욕의 이스트엔드에 혼자 사는 ‘도그’. 극내향의 외톨이 도그가 ‘로봇’ 친구를 택배 주문하면서 타인과 관계 맺기를 배워나간다는 이야기예요. 대사 한 마디 없는데도, 도그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어요.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자기 방에 있지만 혼자라서 외로운 마음, 놓고 온 무언가를 다시 찾으러 가는 마음, 새로 친구를 사귈 때의 설레는 마음, 울리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마음, 잠들기 전 읽던 책의 갈피에 친구의 연락처를 소중히 끼워두는 마음….


우리가 다 아는 감정들이에요. 한때는 우리를 온통 사로잡았던 감정이지만 이제는 기억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그런 마음들이 주인공 ‘도그’의 마음으로 그려져요. 그리고 ‘로봇’은 내가 어딘가 두고 온, 이제는 더이상 내게 속하지 않은 어떤 존재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로봇’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도그는 택배 상자 속의 철물 조각에 불과했던 그를 조립하여 친구로 삼음으로써 모든 걸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방에 대해 잘 몰랐어요. 바닷물에 닿으면 녹이 슬기 쉽다는 것도, 연료가 떨어지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어요. 결국 로봇은 도그와 함께 갔던 코니아일랜드의 모래밭에 홀로 누운 채로 하염없이 도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죠. 도그는 로봇을 다시 데려오려고 갖은 애를 다 쓰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하지만 로봇은 도그를 원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아요. 철 지난 해변에 홀로 남겨진 로봇의 마음을 어찌나 아름답게 그려놓았는지, 내가 잃어버린 물건들에 대한 죄책감까지 다 씻어주는 것 같았어요.


로봇은 혼자 남겨진 시간 동안 그리움이라는 꿈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어요.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여정처럼 환상이 가득한 그 장면은 우리가 꿈꾸는 행복은 다른 장소나 먼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있다는 걸 말해줘요. 그리고 겉만 보면 깡통일 뿐인 로봇에게도 그와 함께하는 이의 마음이 깃들면서 자기 서사를 지닌 존재로 성장해나간다고 이야기해요. 바닷가에 누운 채 꼼짝할 수 없는 채로도 로봇은 다른 존재들과의 만남으로 세상을 경험하지요. 누군가는 와서 다리 한쪽을 떼어가고, 느닷없이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가 떠나기도 해요. 새가 알을 품고, 알에서 새끼 새가 깨어나고, 나는 법을 배운 새끼들이 어미새와 함께 떠나갈 때, 로봇은 눈물을 흘리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았지만 내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어요. 그렇게 이별의 의미를 배운 로봇은 여러번의 우연과 곡절 끝에 ‘너구리’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나는데요. 너구리의 로봇이 된 그는 ‘도그’와의 경험이 있기에 새로운 친구의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너구리도 로봇에게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로봇은 이제 너구리가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춥니다. 하지만 도그가 좋아했던 노래도 잊지 않았어요. 가끔 그를 생각하며 그가 좋아했던 노래를 틀어요.


어느 시절, 어떤 존재와의 시간은 소리로 감각돼요. 과거의 한때 우리가 지나다니던 거리의 소음과 누군가와 즐겼던 음악들은 그 시공간을 기억에서 불러내 줘요. 우리는 언제든 그 소리를 머릿속에서 재생해내서 그 시간을 음미할 수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그렇게 좋은 것들과 함께 있는 행복한 순간에 슬며시 상대의 손을 잡는 감각. 그런 마음과 그런 감각이 살아 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렇게 서로 행복을 나누고 마음을 표현하는 감각을 우리는 어디에다 놓아두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가끔은 모르는 사람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통해 흘러들어가는 소리가 무언지 궁금해져요. 어떤 시절에는 그냥 거리를 지나다니기만 해도 그 시대의 소리들이 내 속으로 흘러들어왔는데 지금은 자기 귀에 꽂힐 소리를 매번 선택하고 있어요. 아, 당신의 리스트를 공유해놓았다고요? 그래요. 한번 방문할게요. 좋아요도 남길게요.

그런데 난 그 리스트에 담길 수 없는 어떤 노래를 찾고 있어요. 어딘가에 놓아두고 왔는데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는 노래예요. 흥얼흥얼 불러보아도 어렴풋이 느낌만 남아 있고, 멜로디도 가사도 분명치 않아요. 제목마저 까맣게 잊었어요. 이렇게 봄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가 한곡 한곡 녹음해서 선물해준 테이프 속에 있던 노래였다는 것만 기억이 나요. 그 노래는 지금 어디서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상상해봐요.



영화 칼럼니스트 동그란 ha0282@naver.com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