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월 ‘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 등이 정부의 기후 대응 미흡으로 건강권 등을 침해당했다며 청구한 헌법소원의 첫 공개변론이 오는 23일 열린다. 뉴스1

이틀 뒤인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우리나라 첫 ‘기후소송’ 공개변론이 열린다. 2020년 3월 사건이 처음 제기된 지 4년만이다. 255명이 낸 4개 사건을 병합해 심리하는데, ‘법에서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정부의 노력이 기후위기 대응에 충분치 않아 환경권‧생명권‧건강권 등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소송들이다.

현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 (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로 정하고 있다. 그간 누적된 과학적 연구와 유럽연합(EU),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등의 협의 사항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2050년엔 100% 감축해 궁극적으로는 ‘0’이 되도록 하는 ‘넷제로’를 목표로 한다.

청구인들은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자의적으로 설정토록 법을 개정해 감축 계획을 미루고, 최종적으로 만든 법과 계획에서 정한 감축 목표도 턱없이 낮아 모두 위헌이라고 지적한다. 기후재난에서 국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불충분해 기본권을 침해하고, 미래세대의 기본권도 과하게 침해하는 차별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계획이 충분하고 국가의 재량 내에서 정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현재 계획에서 정해둔 ‘2018년 수치에서 40%를 줄이는 게 충분한지’ ‘지금 국가의 대응이 국민과 미래세대 기본권 침해인지’를 놓고 다투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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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기후변화 대응은 국가 의무, 부족하면 인권 침해”

2015년 10월 9일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25%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고 승소한 뒤 기뻐하는 우르헨다(Urgenda) 재단 변호사들과 지지자들.[AP=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선 이제 첫 발을 떼는 소송이지만, 이미 해외에선 5년 전부터 기후 관련 소송에서 굵직한 결론을 낸 사건이 여럿이다. 그 중 기후 소송의 시초로 불리는 네덜란드 ‘우르헨다(Urgenda)’ 소송은 환경단체 우르헨다 재단과 시민 886명이 2013년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소홀히 해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제기한 민사소송이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12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의 25%까지 감축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전 세계에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법적으로 물은 첫 판결이기도 하다.

우르헨다 소송은 2015년 1심 법원의 판결 내용이 거의 그대로 2심, 대법원까지 인정됐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0% 감축'을 목표로 내세웠는데, 법원은 그간 누적된 과학적 연구와 유럽연합(EU),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등의 협의 사항을 모두 인정하며 “최소 25% 또는 그 이상 감축이 필요한데, 네덜란드 정부가 불충분한 목표로 유럽인권협약 2조(국민 생명 보호 의무) 및 8조(가정생활과 사생활 보호 의무)에 따른 주의의무를 불이행했다”고 판단했다. 기후변화는 진짜 위협이고, 국가는 이에 맞서 국민을 보호해야한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네덜란드 대법원은 “기후변화는 인권을 위협하고, 각국은 그에 대응해 자기 몫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국제적으로 감축을 합의하는 것은 정부의 권한인데 이를 하지 않을 경우 국가 의무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감축 결정에 필요한 정치적 고려는 법원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라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정부와 국회의 정치적 재량은 위법하지 않을 때에 한하는데, (대응을 하지 않아) 국민 인권이 침해된다면 민주주의 국가로서 법으로 인권을 보호해야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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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래의 기본권 침해 가능성도 보호의무 위반”

독일 헌법재판소는 2021년 "현행 온실가스 감축안이 미래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면, 그것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이며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연합뉴스

2021년 3월 독일은 더 나아간 결론을 내놨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미래 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조치도 국가의 의무”라며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떠넘겨, 과도한 기본권 제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현재 법령은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 위반으로 위헌”이라고 밝혔다.

당시 독일의 연방기후보호법에는 ‘2030년까지 1990년 배출량의 55% 감축’ 목표가 적혀있었고, 독일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 0’ 목표를 밝힌 상태였지만 2031~2050년에 해당하는 목표나 규정은 없었다. 독일 헌재는 2031~2050년 감축목표를 정하지 않아, 기술 등을 준비하기 위해 방향이 될 요건을 법으로 정해두지 않은 것은 국가의 의무 위반이고,  2030년 감축목표는 그 자체로 기본권 침해는 아니지만 현행 규정대로라면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심해져 청구인들의 기본권 및 자유가 심각하게 위험해질 수 있어,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미래 기본권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면,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취지다.

2030년까지 감축책임을 회피하는 만큼, 뒤로 갈수록 더 급격한 감축을 하느라 개인의 자유가 더 심각하게 제한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독일 헌재는 “현재의 행동이 돌이킬 수 없게 미래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기본권이 침해된 뒤의 헌법소원은 헛된 일일 수 있어, 현재 헌법소원을 제기할 적격이 있다”고도 했다.

미국 몬타나주를 상대로 소송에서 승리한 청소년들. 몬타나주 법원은 "주 에너지 정책을 결정할때 기후변화 대응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주정부 책임"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AP=연합뉴스

미국도 변했다… 유럽은 ‘기후 대응 국가책임’ 주류

미국에서는 2020년 연방항소법원이 ‘기후변화 대응은 입법부·행정부 권한의 정치적 문제’라며 청소년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각하한 적이 있었지만, 지난해 8월 몬타나주 법원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는 안정적 기후도 포함되는데, 주 정부가 에너지 사업 허가를 내주면서 기후 영향을 고려하지 않도록 한 조항은 위헌”이라고 정부의 기후대응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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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권재판소, 유럽연합사법재판소 등에서도 기후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달아 나오는 중이다. 지난해 UN총회에서 국제사법재판소 의견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각국의 책임을 국제법에 명시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할 만큼, 기후변화 대응 의무를 국가의 책임으로 보는 논리가 확산하고있다. 지난 14일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정책이 충분하지 않아, 2000명이 넘는 스위스 여성 노인들의 인권을 명백히 침해했다”며 8만유로(약 1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노인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에 특히 취약한데,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책임을 물은 것이다. 프랑스 정부도 2021년 기후변화 대응 미흡 책임을 지고 1유로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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