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부기술교육원에 마련된 한남동 제3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압수한 휴대전화 정보를 통째 보관하며 이를 재활용해 별건 수사를 벌이는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재차 나왔다. 야권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영장 범위를 벗어난 휴대전화 정보까지 복제(이미징)해 보관한다며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2022년부터 일관되게 견지 중인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6일 휴대전화 정보를 통째로 압수한 뒤 여기서 우연히 발견한 통화 녹음 파일로 검찰 직원의 범죄 혐의를 확인해 재판으로 넘긴 사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휴대전화에서 탐색·복제·출력된 녹음 파일과 이에 터 잡아 수집된 2차적 증거들은 위법수집증거로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2018년 12월 원주시청 국장급 간부 A씨의 국토계획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며 A씨 휴대전화 전체 정보를 대검찰청 서버인 ‘디넷(D-NET)’에 보관했다. 검찰은 이 가운데 검찰 서기관 B씨와의 통화 녹음 파일을 우연히 재생하다가 B씨가 A씨로부터 수사와 관련한 부정청탁을 받거나, B씨가 A씨에게 수사 상황을 누설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3개월 동안 추가 영장 발부 없이 이 녹음파일을 대검찰청 서버에 그대로 저장해 둔 채 B씨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수집했다. 검찰은 이듬해인 2019년 3월 새로 발부받은 영장으로 대검찰청 서버에 저장된 이 녹음파일 등을 확보한 후 두 달 뒤 B씨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했다.

쟁점은 휴대전화 정보 압수 수색 과정에서 별개의 범죄 혐의를 우연히 발견해 이에 대한 새 압수수색 영장을 받았을 때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1심은 증거능력을 인정해 B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2심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의도적으로 영장주의 취지를 회피하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추가 영장 집행 과정에서 B씨에게 참여권을 고지하는 등 관련 절차를 준수했고, 추가 영장이 집행된 2019년 3월 이후 수집 증거들은 적법 절차를 따르지 않은 1차적 증거수집과 인과관계가 희석되거나 단절됐기에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반면 대법원은 “A씨 혐의와 관련 영장 집행 종료 후 무관한 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지 않고 계속 보관하면서 이를 탐색·복제·출력한 일련의 수사상 조치는 모두 위법함이 명백하다”며 “이후 (A씨 휴대폰) 복제본이 저장된 대검 서버의 전자 정보를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어도 당연히 삭제‧폐기됐어야 할 전자 정보를 대상으로 (압수 집행) 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 위법하고, 사후에 영장을 받았다고 해서 위법성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은 “수사기관이 유관정보를 선별하여 압수한 후에도 무관 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지 아니한 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면 전자정보를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여 취득한 것이어서 위법”(2022년 1월), “첫 번째 영장 집행이 끝났을 때 당연히 삭제·폐기됐어야 할 전자정보를 대상으로 한 압수 수색은 그 자체로 위법”(2023년 10월)이라고 선고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태도다.

4·10 총선 비례대표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의 김의겸(왼쪽 세번째)·용혜인(왼쪽 두번째)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비례대표 후보들이 3월 25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에 검찰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은 검찰의 휴대전화 정보 보관 관행에 대해 ‘민간인 불법사찰’, ‘위법 압수 수색’이라는 논란을 불지피고 있다. 조국혁신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지난달 25일 검찰이 최소 2016년부터 사건 연루자의 휴대전화 등을 디지털 포렌식(전자 감식) 하면서 취득한 개인 정보를 ‘디넷’에 불법 수집하고 관리·활용해왔다며 윤석열 대통령 등 전·현직 검찰총장을 공수처에 각각 고발했다.

검찰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건은 선별 절차를 완료한 후 디넷에 저장된 전부 이미지(무관 정보 포함)를 재탐색해 별건 혐의 정보를 수집한 게 아니라 기존 혐의와 관련된 정보 탐색·선별 작업 중 별건 혐의 정보를 발견한 것”이라며 “당시엔 디넷에 보관된 전부 이미지 등에 관한 등록·폐기 절차가 구체적으로 규정돼있지 않았다. 현재는 디넷 보관 전부 이미지는 ‘증거의 무결성, 동일성, 진정성 등 증거능력 입증’을 위한 경우 외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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