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병원을 비롯한 전국 20여개 의대 교수들이 내일부터 주 1회 휴진에 들어간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빅5 병원을 비롯한 전국 20여개 의대 교수들이 내일부터 주 1회 휴진에 들어간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두 달 넘게 채워오며 물리적·체력적 한계에 직면한 만큼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대학에서는 사직서를 다시 제출하는 의대 교수들도 나오고 있어 집단 사직도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의대교수들의 선택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의료대란 수준의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의료계를 향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반면, 의협은 신임 지도부를 구성하고 의대증원 백지화가 대화의 조건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의정갈등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국 20개 의대 교수, 주 1회 휴진 돌입.. 원광대 의대교수, 2차 사직서 제출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주요 병원 교수들은 이달 마지막 주부터 주 1회 휴진 등을 통해 진료와 수술 일정을 추가로 줄인다.

20여개 의대 교수가 속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26일 총회 후 ▲외래 진료와 수술, 검사 일정 조정 ▲당직 후 24시간 휴식 보장을 위한 주 1회 휴진 ▲경증 환자 회송을 통한 교수 1인당 적정 환자 유지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전의비는 "교수들은 의료 공백 장기화로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주당 70~100시간의 근무를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근거없는 의대 증원을 고집해 전공의의 복귀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월이면 전공의와 학생이 돌아올 마지막 기회마저 없어질 것"이라면서 "현재의 진료 공백이 계속 지속될 것이 분명해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서 진료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빅5'로 불리는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 교수들은 당장 내일부터 휴진에 들어간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은 30일 하루 외래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했다. 고려대 안암·구로·안산병원 등 고려대의료원 산하 교수들도 이날부터 주 1회 휴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다른 '빅5'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은 내달 3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했다. 서울성모병원 등 8개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대 의대는 내부 설문 조사를 통해 서울성모병원 외에 다른 병원 교수들의 휴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빅5' 중 한 곳인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해 강북삼성병원·삼성창원병원이 참여하는 성균관대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주 52시간 근무를 준수하되, 근무시간 초과로 피로가 누적된 경우 주 1회 외래·시술·수술 등 진료 없는 날을 휴진일로 정해 휴식을 가져 달라는 권고안을 교수들에게 배포했다.

빅5 병원 외에도 충북대병원 교수들은 이미 이달 5일부터 금요일마다 개별적으로 쉬고 있다. 충남대병원과 원광대병원 교수들은 지난 26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쉬기로 했다. 건양대병원과 계명대 의대 부속병원 교수들은 일단 다음 달 3일에 하루 쉬기로 했다. 강릉아산병원 교수들은 5월 3일부터 주 1회 휴진한다.

기존 환자 예약건이 소진되면 의대 교수들의 사직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 빅5 병원 교수는 "환자 예약이 6월까지 차 있어서 그때까지만 진료를 보고 병원을 떠날 예정이라 신규환자 예약을 받지 않는 등 진료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부가 향후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확정해 증원이 사실상 확정되면 병원을 떠나가는 교수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원광대학교 의대 교수들은 29일 두 번째 사직서를 제출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원광대학교 비대위는 지난달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하지만 제출된 사직서가 병원 전산망에만 있고, 대학에는 전달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내부 회의를 통해 다시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비대위는 종이로 출력해 작성한 사직서 110여장을 의대 학장에게 직접 제출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들은 단체로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한 곳에 반납하고 강당을 빠져나갔다.

강홍제 원광대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죽어가는 대한민국 의료체계와 의대교육의 심폐 소생 방법은 정부와 대학 당국이 의대 정원 확대를 취소하고, 과학적인 근거와 토론으로 적절한 의료 정책을 실시하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강 비대위원장은 "우리 교수들은 전공의가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지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노력해왔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의대 교수들의 체력이 한계를 넘었고, 더 이상 현재 상태의 비상 의료체제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5월말 대교협에서 의대 정원이 확정 발표 후 의대학생의 휴학과 전공의 사직이 예상된다"며 "학생 휴학과 전공의 사직 수리 시 교수라는 직업을 이어나갈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때부터 교수님들의 사직은 더욱 증가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텅빈 의대 강의실 [사진=연합뉴스]

정부 "의대교수 휴진·수술 중단 권고.. 1:1 대화할 의지 있어"

의대 교수의 사직과 휴진보다 더 큰 문제는 다음 달이 되면 전공의들이 굳이 복귀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복귀 하더라도 올해 수련 일수를 채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될 수 있어서다.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환자를 받을 수 없는 병원들이 적자를 이겨낼 수 없게 되고 끝내 도산에 직면할 수도 있다.

또,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들도 대량 유급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정부는 내년도에 한해 증원 규모를 최대 절반까지 줄이기로 해 현재로선 내년도 의대 증원이 1000~2000명 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내년 한 해 4000~5000명의 신입생이 생기는데 유급 됐거나 휴학했던 의대생까지 복학하면 총 8000명 가량이 함께 1학년 수업을 듣게 돼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이처럼 의료계의 집단 행동으로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으나 정부는 "큰 혼란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9일 "교수 사직의 경우 형식과 요청을 갖춰서 제출된 사직서는 아주 적어서 실제 현장을 떠나 의료 공백이 생기는 일들은 크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건)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지, 정말 환자들을 뒤로 하고 떠나는 본심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 곁을 지켜주실 것으로 믿고 있고 의료대란 수준의 현장 혼란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부는 예의주시하면서 상황에 맞게 관련 대책들을 추진하겠다"고 부연했다.

박 차관은 사직과 휴진 등 집단행동에 따른 법적 처벌을 검토 여부를 묻자 "정부로서는 모든 부분에 대해 법적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면서도 "관계 법령 위반인지 여부를, 교수들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인력 충원을 통해 비상대응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25일 기준 100개 수련병원의 전임의 계약률은 58.7%이고 서울 주요 5대 병원은 61.4%로 소폭 증가했다. 22일 군의관, 공중보건의사는 총 63곳 의료기관에 396명이 지원 근무 중이다.

정부는 군의관 수요를 이날까지, 공중보건의사 수요를 오는 30일까지 조사 후 의대 교수 사직·휴진 등 대응 인력으로 추가할 방침이다. 의사의 의료행위 일부를 대신하는 진료보조(PA) 간호사는 현재 1만165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정부는 의사 여러분과 1:1 대화할 의지도 있다"며 "의사도 의대 증원 백지화, 1년 유예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달며 대화를 회피하기보다 정부의 진의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달라"고 촉구했다.

의협 회장 "의대 증원 백지화해야 원점에서 논의 시작"

하지만, 의료계는 의대 증원 백지화가 대화의 조건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전날 의협 제76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최전선에서 사투하고 있는 전투병의 심정으로 결연하고 강한 모습으로 대응하겠다"며 "의료를 사지로 몰아가는 정책에 대해 죽을 각오로 막아낼 것"이라고 대정부 투쟁 수위를 한층 높일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정부가 2천명 의대 증원 발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백지화한 다음에야 의료계는 원점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의료계는 어떠한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당선인의 공식 임기는 내달 1일부터지만, 의협 비대위가 업무를 종료한 데 따라 이제 의협은 임 당선인 체제로 본격적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임 차기 회장은 정부와의 대화 전제 조건으로 필수의료 패키지,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와 보건복지부 장·차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의료개혁 특위에 참여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에는 "의료개혁과 무관한 사람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의료계와 정부가 일대일로 만나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를 향한 그의 발언 수위와 언어 선택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의대 교수의 휴진과 관련해 정부가 "관계 법령을 위반하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하자, 임 차기 회장은 "복지부가 의대 교수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며 "만약 교수들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14만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총력을 다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임 당선인은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며 '행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임 당선인은 회장 선거 때부터 당선 시 '의사 총파업'을 거론한 바 있고, 전날 총회에서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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