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의정 갈등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로 촉발된 의정갈등이 장기화 되는 가운데 지난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들의 사직 효력이 발생하고 30일부터는 20여개 대학병원이 주1회 휴진이 돌입했다.

반면, 정부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에서도 여야가 '의대 증원'에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의사단체의 반발을 정면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마감되는 전국 32개 대학의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인원도 150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새 집행부를 꾸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으며, 내달 의대 교수들의 사직과 휴진이 잇따르면 의정갈등은 더욱 심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내년 의대 모집인원 30일 확정.. 국립대만 50% 감축해 1500~1600명 이를 듯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전날 130분간 영수회담을 가졌다. 거의 모든 현안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지만 의대 증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이 같은 인식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앞서 이 대표가 적정 증원 규모로 400∼500명을 제시한 것을 감안하면 증원 규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큰 틀에서 정부의 '증원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2025학년도 의대 모집인원도 오늘(30일) 확정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내년도 의대 정원은 사실상 30일이면 확정된다"며 "현장에서 (이날까지) 확정하지 못하더라도 대교협의 심의 전까지 정한다면 (증원) 절차를 진행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 19일 의료계의 반발을 감안해 내년 의대 증원분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대학들이 모집 인원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허용하면서 30일까지 증원 규모를 확정하도록 했다.

이에 지방 국립대는 대부분 기존에 정부가 배분한 증원분에서 50%가량을 줄여 모집하기로 했으나 사립대는 대부분 증원분을 100% 모집인원에 반영하기로 하면서 증원 폭은 1천500명대 후반∼1천600명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9개 비수도권 국립대 가운데 전남대·부산대를 제외한 7개 국립대는 모두 증원분의 50%가량만 모집하기로 했다.

강원대는 42명을 늘려(당초 증원분 83명) 91명을, 충북대는 76명(당초 증원분 151명)을 늘려 125명을 모집한다. 경북대와 충남대는 각각 45명(당초 증원분 각각 90명)을 늘려 155명씩 모집한다.

경상국립대는 62명(당초 증원분 124명) 증가한 138명, 전북대는 29명(당초 증원분 58명) 늘어난 171명, 제주대는 30명(당초 증원분 60명) 늘어난 70명을 선발한다.

전남대와 부산대의 경우 모두 기존 정원이 125명이며, 당초 증원분은 75명이다.

9개 국립대가 모두 증원분을 50% 줄여 모집할 경우 비수도권 국립대 모집인원은 당초 증원할 예정이었던 806명에서 405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들게 된다.

의료계에 따르면 아직 증원을 확정 짓지 않은 사립대들도 대부분 정부의 증원 규모와 비슷한 모집 인원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남은 사립대들이 증원분 100%를 모집한다고 가정하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1500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5학년도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학들의 의대 모집인원이 확정되면 대교협은 이를 심의·의결하는 데 속도를 낼 전망이다.

대교협과 각 대학은 이러한 절차를 거쳐 지난해 발표됐던 2025학년도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수정하고, 대학들은 다음 달 말 '신입생 모집요강'에 이를 최종 반영하게 된다.

의협 "영수회담, 십상시들 의견 반영" "끝까지 저항할 것"

정부가 의대 증원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으나 의료계의 반발은 여전한 상황이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은 감감 무소식이며 의대생들도 수업 거부를 지속하고 있다. 전공의를 가르쳐온 의대 교수들은 집단 사직에 이어 이날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는 '휴진'을 통해 의대 증원에 맞서고 있다.

서울 시내 주요 대형병원 '빅5'에 속하는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 속한 일부 교수들이 이날 휴진에 들어갔고, 일부 다른 병원도 이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교수들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확정·발표하면 휴진 기간을 더 늘리는 방안마저 검토할 계획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6일 총회를 열고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할 경우 휴진 기간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주 1회인 휴진을 확대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현장의 의료공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협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새 집행부를 진두지휘할 임현택 회장 당선인은 의사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힌다.

임 당선인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의대 증원이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을 모두 백지화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영수회담 결과는 십상시들의 의견만 반영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십상시'는 국정을 농락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이들을 비난할 때 쓰이는 비유적 표현이다.

그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의료문제를 이해하는 데 주변의 잘못된 목소리에 경도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임 당선인은 최근 의협 정기 대의원총회에서도 "정부가 우선적으로 2천명 의대 증원 발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백지화한 다음에야 의료계는 원점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강조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이번 영수회담을 '법조인들의 권력 만능주의' 발현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회장은 전날 늦은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사 출신의 대통령이 '의대 증원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변호사 출신의 거대 야당의 대표가 '우리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며 "이 생각은 권력을 손에 쥔 법조인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인드다. 그들의 사고체계에서는 법 만능주의, 권력 만능주의가 작동한다"고 비난했다.

이어 "두 사람은 '의사들이 별수 있겠어?'라고 착각하겠지만,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며 "의료를 무너뜨릴 정책을 막기 위해 의사들이 취하는 행동(휴진·사직)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들이 취하는 행동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들의 예상대로 의사들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다면 어쩔 수가 없네'라며 돌아올까, 아니면 끝까지 저항할까. 그들의 예상과 달리 나의 예상은 '끝까지 가는 저항'"이라며 의사들이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관계자도 영수회담에 대해 "의대 교수 사이에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 실망스러웠다는 반응이 다수"라고 말했다.

의사단체의 반응을 감안하면 각 대학이 신입생 모집요강에 증원분을 최종 반영하는 다음 달 말까지도 의정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부 대학병원 의대 교수들이 주 1회 휴진을 예고한 30일 병원 진료에 큰 혼란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차관은 "오늘 일부 의료기관에서 외래 진료, 수술에 대해 주 1회 휴진을 예고한 상황이지만 이는 일부 교수 차원의 휴진"이라며 "전면적으로 진료를 중단하는 병원은 없어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정부는 중증·응급환자 등 진료 차질이 최소화되도록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의대 증원 1년 유예해야" "진짜 의료 대란 임박"

의사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의정 갈등이 장기화 될 경우 진짜 의료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며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현재 사태를 수습하려면 올해는 의대 정원 규모를 현행(3천58명)대로 선발하고, 내년부터 과학적·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증원 규모와 시기를 정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그래야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복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이대로 의정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진짜 의료 대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수련(대학)병원의 경우 의사 부족으로 교수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진료가 축소돼 환자 피해가 커질 것"이라며 "병원은 경영난이 악화일로로 치달아 결국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제약, 의료기기 등 병원 관련 산업이 재앙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의대 교수 사직에 따라 의대의 국제경쟁력도 약화할 것이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유급 내지 휴학 승인과 함께 내년에 1천500명을 증원한다면 예과 1학년은 7천500명 정도가 될 것이고, 향후 6년간 거대 '학년 층'이 발생한다"며 "교육·실습 공간, 교육자 수의 절대 부족으로 의대 교육의 질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의대 교육은 소규모 실험실습, 그룹토론, 사례학습, 환자체험 등이 필수로, 대규모의 일방적인 지식전달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따라서 의대 교수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병원 실습이 부실해질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께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필수의료 전공의들의 미복귀로 신규 전문의 배출이 급격하게 줄고 대학 병원 교수직에 대한 지원 동기가 약해질 것"이라며 "당장 내년에 공중보건의사로 갈 의사도 없어져 지역 의료 기반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 의원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의대 증원은 1년 유예하고 협의체를 구성해 점진적인, 그리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단계적 증원 규모와 시기를 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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