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우도의 마을신문 달그리안 창간호(왼쪽)와 4호 1면 갈무리.

평생토록 동네 소식 전하는 신문 하나 없던 지역. 물질, 땅콩 농사, 민박을 하며 살아가는 섬마을에서 ‘언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주민들이 모였다. 그렇게 ‘해녀들의 섬’ 제주시 우도면에 하나뿐인 언론 ‘달그리안’이 생겼다. 2017년 발행된 계간지 달그리안 창간호엔 바다 속에서 물질하는 해녀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담겼다.

“바다 안에서 해녀와 서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우린 해녀들이 바다에 물질 가는 걸 마중할 때 늘 해녀의 뒷모습을 보는데, 이땐 내가 바다에서 해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그리안이 주민들과 얼굴을 마주보고 공감하는 신문이 되자는 의미의 사진이었다.” (달그리안 창간호에 참여한 이성은 사진작가, 지난달 27일 우도 소라축제)

‘주민과 마주보는 신문’ 달그리안의 목표는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자’는 대부분 지역신문의 목표와는 조금 다르다. 1800명 남짓이 사는 작고 고립된 섬마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자는 사명을 품었다. 개발과 보존 사이 갈등에서 ‘우도다움’을 지켜내는 것도 신문을 발간한 이유다.

▲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6일~28일 우도 소라축제에서 달그리안 기자들을 만났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애경 편집장, 김영진 대표, 강윤희 기자, 송희정 기자. 사진=달그리안 제공.

‘달그리안’은 우도 사람들이 우도팔경 중 제1경인 주간명월을 부르는 말이다. 절벽 아래 배를 타고 가야만 볼 수 있는 해식 동굴 천장에 햇빛이 바닷물에 반사돼 밝은 달이 뜬 것 같이 보여 붙여진 이 이름엔 ‘어렵게 찾은 보물’이란 의미도 담겼다.

지난달 26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우도 소라 축제 기간, 달그리안 마을신문 기자들은 제각기 주민 활동으로 분주했다. 천진항 앞 축제 현장에 달그리안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한 부스가 차려졌다. 달그리안 창간 이래 7년간의 고군분투가 부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21개의 신문 1면에 담겨 있었다.

▲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6일~28일 우도 소라축제에서 달그리안 기자들을 만났다. 김영진 달그리안 대표. 사진=윤유경 기자.

급격한 관광 개발로 와해된 공동체…우도 주민들이 ‘신문’이 필요했던 이유

마을 주민들이 신문 제작에 뜻을 모은 건 우도에서 급격히 이뤄진 관광 개발 때문이었다. 절정이었던 2017년, 주민이 2000명도 안 되는 섬에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동네 개들이 오만 원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까지 돌던 시절이다. 성산항에서 우도로 배가 들어오는 아침에 밀물처럼 들어온 관광객들은 마지막 배와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낮엔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 찬 섬이 저녁이 되면 다시 고요해지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카페, 음식점, 숙박 시설 등 다양한 건물이 들어섰다. 해안가를 빙 둘러쌌던 해안 돌담길이 하루 아침에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졌다. 수백 년 전 쌓여진 돌담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건축물이 들어서는 풍경을 보면서 ‘저래야만 할까’ 생각했다. 가슴이 아리고 분노에 찼다.” (김영진 달그리안 대표)

▲ 우도 하우목동항 권역 어촌뉴딜 300사업을 다룬 달그리안 지면 갈무리.

적은 인구, 끈끈한 마을 공동체였던 우도는 빠르게 관광산업 중심 마을로 변했다. 외부 유입이 들어오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반복됐다. 자연경관 보전지구 1등급인 톨칸이 해안에서 대규모 개발이 추진되는 등 무리한 사업도 추진됐다. 기성 언론이 작은 섬마을인 우도 상황을 상세하게 다룰 리 없었다. 우도만의 이야기를 담아낼 언론이 필요했다.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고민했다. 우도가 삭막하게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 의미있는 활동을 해야한다는 갈증이 있었다. 마침 제주도 영상위원회에서 진행하는 마을 공동체 미디어 지원사업 공고가 나왔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김영진 대표는 강윤희 기자의 말을 듣고 망설임을 끝냈다. 강 기자는 “10명 중 1명이라도 신문을 보고 ‘우리 예전엔 이랬는데 잊고 살아가고 있구나’하고 생각이 바뀌면 변화가 있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결심의 배경을 전했다.

뜻 맞는 주민 10여 명은 신문 만들기 교육을 받았다. 시인, 사진작가 등 외지에서 온 문화예술인들과 우도 현지인들이 반반 비율로 모였다. 섬의 폐쇄성은 달그리안을 ‘비판 기능’ 있는 신문으로 내는 데에도 장벽으로 작용했다. 외지인들은 우도를 비판하면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거나 삶에 영향이 올까 부담을 느껴 문화지를 주장했다. 결국 창간호는 문화지 성격을 보였지만, 2호부터는 마을신문 달그리안이 발행됐다. 외지인들은 종종 칼럼과 사진을 기고하는 방식으로 달그리안에 참여하고 있다.

기자들은 모두 현업이 있다. 김영진 대표는 민박업을 하고, 김애경 편집장과 강윤희 기자는 1년 차 새내기 해녀다. 땅콩 농사를 짓는 강계헌 기자는 올해부터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았고 이승희 기자는 편의점을 운영한다. 연극배우 출신 송희정 기자는 학교 예술 강사와 주민들의 문화 공간 ‘작은도서관’ 사서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6명은 모두 우도가 고향이거나 우도에 정착해 창간즈음부터 꾸준히 달그리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예 멤버들이다.

▲ 지난달 27일 우도 소라축제 달그리안 부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승희 기자(왼쪽)와 송희정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7년차인 지금도 현업과 취재 병행이 쉽지 않다는 기자들은 “그래도 재밌다”고 입을 모았다. 타 지역에서 미디어 교육이 있으면 다 함께 신청하고, 건강한 지역언론을 방문해 고민을 나눈다. 김 대표는 “기사 쓰는 게 두려웠는데 이젠 재밌다”며 “새로 경험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땐 귀가 쫑긋하고 좁은 눈이 커진다. 할머니들이 (기자들과 이야기하며) 그야말로 ‘헤벌쭉’ 웃을 땐 쾌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2015년 우도에 정착한 새내기 해녀 김애경 편집장은 마을 ‘삼춘’들과 친해진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다. 김 편집장의 핵심 출입처도 단연 ‘삼춘네들 집’이다. “그전엔 수박 겉핥기로 알았다면 지금은 수박을 파내는 느낌이다. 삼춘들의 반응도 좋고, 길가다 삼춘들에게 인사할 땐 우도가 고향이신 분들도 ‘어떻게 모르는 삼춘이 없냐’고 놀란다.(웃음) 물질을 하고나면 체력적으로 엄청 지치지만, 기자 일만큼 나를 채워주는 게 없다.” 김 편집장의 눈이 반짝였다.

▲지난달 26일~28일 우도 소라축제에서 만난 김애경 달그리안 편집장. 사진=윤유경 기자.

“우리 동네 취재오지 맙서” 기자들이 마주한 폐쇄적 섬 문화

“우리 동네 취재오지 맙서.” 김영진 대표가 주민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주민이 1800명 뿐인 면 단위 섬 우도에선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이 지역 선후배 관계라 비판이 쉽지 않다. ‘지역의 좋은 이야기만 다뤄야한다’는 주민들 인식도 기자들이 마주해온 난관이다. 목소리를 내기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 탓에 신문 기고를 받기도 어렵다.

특히 지역 개발사업을 비판할 땐 날 선 반응이 돌아온다. 강윤희 기자는 바닷속에 원형 전망대를 설치하는 해중전망대 사업을 비판한 뒤 기자들 생업이 흔들렸던 때를 회상했다. 주민 제보를 받은 기자들은 이 사업에서 ‘주민의 주주 참여’ 허용 조항이 빠진 이유를 따지면서 해녀에게 가는 보상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는데, 최종 심의가 늦어지자 ‘달그리안이 우리 돈벌이 사업을 못하게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강윤희 기자는 “본래 삼춘들 몫인 것을 정작 삼춘들은 1, 누군가는 10을 가져가는 걸 지적한 건데, 삼춘들은 1도 못 받게 되니까 우리를 미워하게 됐다. 달그리안이 사용하던 역사 문화 공간에서도 쫓겨나고 당시 편집장도 계속된 민원으로 공격받다가 결국 직장을 나왔다.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공격하는 상황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영진 대표는 “(주민들에게) 탄압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주민들이 갈등으로 서로 돌아서고,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너서 결국 화해하기 힘든 지경까지 될까봐 두려운 게 있다”고 말했다.

▲ 우도의 해양 쓰레기문제를 지적한 달그리안 지면 갈무리.

관광객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와 규제 없이 발생하는 무분별한 자연환경 훼손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달그리안 기자들은 꾸준히 관련 기사를 내고 있다. 강윤희 기자는 “우도는 관광객이 몰려들기 전 최소한의 기준을 정했어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쳤다”며 “빠른 속도로 개발이 되다가 그나마 달그리안에서 조금씩이나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조금 느려진 건 맞다. 하지만 자연을 위해 ‘적어도 이곳은 개발하면 안 된다’는 확고한 주민들의 의식이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해녀 삼춘과 어른들의 지혜에서 우도의 미래를 찾다

▲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6~28일 진행된 우도 소라축제 달그리안 부스에서 달그리안 기자들을 만났다. 송희정 달그리안 기자(왼쪽)와 김애경 편집장. 사진=달그리안 제공.

달그리안은 점차 잊혀가는 우도의 자연과 역사를 기록해 보존하는 일에 주력한다. ‘해녀의 섬’인만큼 어린 나이부터 평생 물질로 가정을 이끌어왔던 우도 해녀들을 인터뷰한 ‘해녀를 기록하다’도 주요한 코너다. ‘삶의 도서관’ 코너에선 우도에서 평생을 살아 온 어른들을 만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낸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항해하는 선장을 꿈꿨던 90세 강철석씨는 “너희 아버지도 바다에서 배 타다 죽었는데 너도 바다에서 죽을래”라며 펑펑 울던 어머니 앞에서 차마 용기를 낼 수 없었던 당시를 전했다. 89세 고응옥씨는 제주 4·3사건으로 아버지를 여읜 12살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우도 삼춘들의 ‘물 길러 가는 길’ 기사는 별도 책자로도 발간했다. 우도는 지하수에 염수가 섞여 식수로 이용할 수 없었다. 기자들은 물이 늘 귀했던 우도에서 삼춘들이 매일 새벽 30kg 무게의 물허벅을 지고 하루 네 번 넘게 물을 길어온 세월에 주목했다. 이후엔 집마다 빗물을 모아서 물을 마시기 위한 물통이 설치됐다. 이젠 다 사라져 찾기 어렵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물통을 보존해 물을 마시고 있는 92세 강성호·강한승 삼춘 집을 찾아가 당시 그들의 노동을 생생하게 인터뷰했다.

▲ 지난달 26~28일 진행된 우도 소라축제 '달그리안' 부스에 놓인 달그리안 창간호와 책자들. 사진=윤유경 기자.

‘우도밥상’ 코너에선 삼춘들 집을 찾아가 우도 음식을 요리법을 배우며 이야기 나눈 내용을 담는다. ‘놀멍 배우멍 마을배움터’ 코너는 우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삼춘을 찾아가 일상에서 얻어지는 모든 내용의 배움을 기록하는 내용이다. 이승희 기자는 “윗세대 어르신들이 우리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어르신들이 손과 발로 만들어놓은 우도의 터전을 달그리안이 기록해야 우리가 지켜낸 우도를 후손들에게도 오롯이 넘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달그리안 '우도밥상' 코너 지면 갈무리.

1면에 주민들 사진이 크게 담기는 것도 이 신문을 보는 맛이다. 사진 밑엔 사진과 관련된 글이나 시를 싣는다. 주민들 인터뷰는 대부분 제주어 그대로 싣고, 제목에도 제주어를 살린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이전까진 기자들이 구역을 나눠 주민들 집 총 800호를 직접 찾아가 신문을 배포했다. 이성은 작가가 달그리안을 보며 “다른 신문은 기다려야 오는데, 달그리안은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는 신문”이라고 말한 이유다.

▲ 지난달 27일 우도 소라축제 달그리안 부스를 찾은 이성은 사진작가. 이 작가가 찍은 우도 해녀 사진이 담긴 달그리안 창간호를 들고 있다. 이 작가는 달그리안의 창간호 제작에 함께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달그리안 구독자는 1300여 명, 구독료는 무료다. 제 목소리 내지 못할까 광고도 생각해본 적 없다. 운영 비용은 모두 후원금과 지자체 지원사업으로 충당한다. 사무실은 소 외양간을 개조해 만들었다. 최근 3년은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연간 200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이전엔 대표의 사비로 충당하거나 외상으로 신문을 낸 뒤에 후원금을 모아 갚은 적도 있다. 구독료를 받아볼 생각은 없을까. 기자들은 “아직 우도에선 유료로 신문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며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 소 외양간을 개조해 마련한 달그리안 사무실. 사진=윤유경 기자.

‘섬 안에서도 누구나 목소리 낼 수 있게’ 기자들이 말하는 달그리안의 역할

달그리안 기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송희정 기자는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주민들이 주인이 되고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발언할 수 있는 장이 생기는 것이 마을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달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강윤희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해녀 삼춘들이 은퇴하고 집에서 TV만 본다. 평생 물질만 하고 밭일만 해왔던 삼춘들은 스스로 ‘해녀 그만두니까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원예 선생님을 데려와 삼춘들 10명을 모아 복지관에서 수업을 했다. 처음엔 절대 안 하겠다던 삼춘들도 4회차 되니까 내년에도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그럼 동네 동장님한테 이런 거 해달라고 요구하라고 말하는 거다. 우도 주민들이 평생 혜택을 받아보지 못해 요구를 못한다. 스스로 깨우치면 요구할 수 있다. 우도는 폐쇄적이고 외부와 단절돼있어 변화하기가 진짜 힘들다. 주민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우도의 가치를 생각하는 게 우도가 살 길이다.” 강윤희 기자의 말이다. 

무엇보다 꾸준한 신문 발행이 가장 중요하다. 달그리안을 좋지 않게 봤던 주민들도 7년의 진정성을 알아보고 있다. 강윤희 기자는 우도 소식을 전하는 뉴스 영상을 만들어 JIBS 제주방송 ‘제시카(제주시청자카메라)’ 코너에 2년간 보내기도 했다. 강계헌 기자는 제주KBS의 ‘풀뿌리K’에서 6주에 한 번씩 우도 소식을 전하는 우도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이성은 작가와 사윤수 시인, 달그리안 기자들이 함께 ‘다이내믹 우도’라는 사진전도 열었다.

관련기사

  • [전국언론자랑 ⑫] “우리 신문 안보면 군민만 손해” 2006년 유료화 진안신문의 자신감
  • [전국언론자랑 ⑫] “사람 태우지 않는 버스” 할머니 글이 전북 진안을 바꾼 사연
  • [전국언론자랑 ⑪] 지역사 초고 쓰는 거제신문 "1면 기사가 경로잔치라도 좋다"
  • [전국언론자랑 ⑩] 함양에선 기자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다
▲강윤희 기자는 우도 소식을 전하는 뉴스 영상을 만들어 JIBS 제주방송 ‘제시카(제주시청자카메라)’ 코너에 2년간 보냈다. 사진=JIBS 제주방송 '제시카' 방송화면 갈무리.

달그리안을 응원하는 독자들의 메시지는 기자들에겐 최고의 영양제다. 특히 초·중학교밖에 없는 우도를 떠나 타지에서 살고있는 출향인들에겐 달그리안이 고향 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해녀 삼춘들은 “가이 20년 동안 물질했져”라며 직접 오탈자를 잡아주기도 한다. “출향인들은 신문을 보면 고향을 안은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해주신다. 주변에서 잘봤다는 이야기 하나로 위안을 삼고 고마움을 느낀다.” 김영진 대표의 말이다. 

▲ 지난달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강계헌 달그리안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2024년 봄호인 21호까지의 지면으로 벽면을 채운 지금, 달그리안 목표는 지속가능성이다. 김애경 편집장은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달그리안을 이어가고 새로운 시선으로 전환점이 생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계헌 기자는 “월간으로 현장감 있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우도 안의 다양성을 주목해 재미나게 전달할 수 있는 신문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